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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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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호-청보호-금성호…멈추지 않는 ‘과적의 비극’

‘과적-침몰-구조 실패' 8년간 악순환 속 대책 마련 하세월
등록 2024-11-15 20:32 수정 2024-11-16 16:26
제주 해상에서 침몰한 부산 선적 금성호 선원들이 한림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제주 해상에서 침몰한 부산 선적 금성호 선원들이 한림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제공


가족들은 하염없이 기다렸다. 2024년 11월7일 고등어잡이어선 ‘금성 135호’를 타고 나간 선장과 선원을 애타게 찾았다. 129t 크기 어선이 순식간에 뒤집혀 가라앉았다. 선원 27명 중 15명만이 땅에 닿았고 12명은 실종됐다. 해양경찰 수색 끝에 2명을 찾았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남은 10명은 여전히 바다에 있다. 만선의 기쁨은 어쩌다 비극이 됐을까. 한겨레21이 사고 상황을 자세히 정리했다.

 

과도한 어획량·구명조끼도 없이 야간조업

 

통 안 보이던 고등어가 다시 나타났다. 11월4일 하루 18상자로 극히 저조했던 고등어 어획량은 11월5~6일 이틀간 1만 상자로 훌쩍 뛰었다(부산공동어시장 통계). 만선의 기쁨이 코앞에 있었다. 금성호는 11월7일 오전 11시49분께 고등어를 잡으러 제주 서귀포항을 나섰다.

금성호는 ‘대형선망 어선’의 본선이다. 본선과 등선이 공조를 이뤄 물고기떼를 한쪽에 가두고 대형 그물을 쳐서 잡는다. 잡은 물고기는 운반선이 수시로 옮긴다.

그날은 유달리 고등어가 많았다. 11월8일 새벽 4시께 “평소 3~5차례 작업해야 할 양이 한 번에 잡혔다”(김대철 제주해양경찰서 수사과장 브리핑)고 한다. 하루 만에 1만 상자(200t) 이상 포획한 것으로 추정된다. 운반선에 넘긴 것만 그 정도 양이고 그물 안에도 상당량의 고등어가 남아 있었다.

금성호는 운반선으로 고등어를 넘긴 뒤 2차 작업을 하려 했다. 그때 배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순식간에, 20~30초 만에 배가 전복됐다.”(구조자 언론 인터뷰) 배 오른편에 걸어둔 그물 무게를 못 이겼을 수 있다. 해경은 배의 복원성(배가 파도 등 외력에 의해 기울어졌을 때 원위치로 되돌아오려는 성질)과 어획량의 상관관계를 파악 중이다.

배가 쓰러지며 선원들도 바다에 빠졌다. 상당수가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 직전까지 갑판 위에서 고등어를 나르던 중이었다. 평소 구명조끼 착용 훈련이나 갑판 작업 위험 교육을 선원들에게 했는지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작업도 새벽 4시께 이뤄졌다. 야간작업은 미끄러짐, 빠짐, 부딪힘 위험이 크다.

 

선사, 재해 예방 충분했나

 

금성호는 법인 소유 선박이어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임직원 170명 규모의 수산물 유통 기업 금성수산·금아수산 소유다. 선원들도 금아수산에 고용돼 있다. 선망 작업을 일상적으로 하는 만큼 재해 예방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사업주는 사업의 고유한 유해·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개선해야 한다. 배의 복원성을 해치지 않도록 배마다 적정 어획량을 정하고 작업 동선도 면밀하게 정하는 등의 조처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는 광주지방노동청 제주산재예방지도팀이 하고 있다.

2016년 명태잡이 어선 ‘501오룡호’(27명 사망·26명 실종)도 그물 무게에 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선사 사조산업은 명태 어획량을 대폭 늘리면서도 위기 대피 훈련은 거의 안 했다. 선장이 실적 압박을 받아 무리하게 조업하다 사달이 났다. 2023년 3월엔 꽃게잡이 어선 청보호가 전복돼 5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 평상시 통발 적재량의 30%를 더 싣고 무리하게 운항하다 사고가 났다고 중앙해양안전심판원(해심원)은 판단했다. 해심원 보고서를 보면 갑판장이 ‘이렇게 많은 통발을 실어본 적이 없다’고 우려했지만 선장은 ‘이렇게 안 하면 어장 오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날씨 좋으니 그냥 싣고 가자’고 답한 대목이 나온다.

 

‘1시간 후 신고' 규정이 삼킨 골든타임

 

‘금성호가 침몰한다’는 신고는 11월8일 새벽 4시31분께 해경에 접수됐다. 그러나 전산상 위기 신호는 그보다 훨씬 앞섰다. 11월8일 새벽 4시8분께 수협 제주어선안전조업국 시스템에 잡히던 금성호 위치 신호 3개 중 1개가 사라졌다. 이후 4시12분께 나머지 2개 신호가 함께 꺼졌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한 시점으로 추정된다.

다만 수협은 이를 바로 해경에 신고하지는 않았다. 평소 어선 신호 끊김 현상이 워낙 잦아, 곧바로 대응하진 않는다고 했다. 관련 업무 규정도 ‘신호가 끊기고 1시간 이후’부터 어선 침몰을 신고하게 돼 있다. 브이패스(V-PASS)를 통한 에스오에스(SOS) 신고도 안 됐다. ‘바다의 하이패스’라 불리는 브이패스는 선박의 실시간 위치를 해수부 종합상황실 등에 알려주고 위기가 발생하면 SOS 신고도 전달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신호 오류가 잦고 아예 브이패스를 꺼놓고 운항하는 어선도 많다. 위기에 대비해 만들어둔 각종 조기 경보 체계가 무용지물인 셈이다.

해경은 선박의 침몰 신고를 받고서야 사고를 최초 인지했다. 4시47분께 현장에 도착했을 땐 배꼬리만 겨우 보였다. 배는 5시13분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2024년 11월8일 제주 비양도 인근에서 침몰한 129t 어선 ‘금성 135호’. 금성수산 홈페이지 갈무리

2024년 11월8일 제주 비양도 인근에서 침몰한 129t 어선 ‘금성 135호’. 금성수산 홈페이지 갈무리


금성호는 35년 된 노후선박이다. 1989년 일본에서 건조해 2004년 중고선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2024년 6월 선박검사에선 합격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소형 어선의 복원성 규제 자체가 느슨하다는 지적도 있다. 배 길이 40m 미만 어선은 배 기울기에 따른 복원력을 별도로 계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침몰한 금성 135호는 배 길이 36.7m 어선이다.

배의 복원성을 확인하는 지표는 두 가지다. 먼저 배가 기우는 각도에 따른 배의 무게중심 변화를 보는 ‘복원정'(배 무게 작용선에서 물 부력 작용선까지의 거리)이 있다. 복원정이 길수록 배가 바람과 파도에 쉽게 기울어지지 않고 기울더라도 빨리 일어난다. 그 거리가 너무 짧으면 바람 등에 배가 쉽게 기울고 바닷물이 유입돼 배가 전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복원정값은 배 각도에 따라 값이 다르고 계산도 복잡하다. 이 때문에 보조지표로 지엠(GM)값을 활용한다. 배의 무게중심에서 메타센터(물의 부력 작용선-배의 중심선의 교차점)까지의 거리다. GM값이 클수록 복원성이 좋다. 배의 복원성을 제대로 담보하려면 복원정값과 GM값을 모두 봐야 한다.

8일 오전 4시 33분께 제주 비양도 북서쪽 약 24㎞ 해상에서 부산 선적 선망 어선 금성호(129t)가 침몰 중이라는 신고가 해경에 접수됐다. 승선원 가운데 인근 선박에 구조된 이들이 한림항에서 병원 이송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4시 33분께 제주 비양도 북서쪽 약 24㎞ 해상에서 부산 선적 선망 어선 금성호(129t)가 침몰 중이라는 신고가 해경에 접수됐다. 승선원 가운데 인근 선박에 구조된 이들이 한림항에서 병원 이송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 시행규칙을 보면 배 길이 24~40m 미만 어선은 GM값에다 평형수 등 물의 영향을 보정한 지오엠(GoM)값만 구하면 되고 복원정값은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어선 복원성 및 만재흘수선 기준’). 40m 이상 어선에 대해 △GoM값이 0.35m 이상일 것 △복원정의 최댓값이 배 기울기 25도 이상일 때 발생할 것 △해수가 유입되는 각도보다 배가 기울어지는 각도를 낮출 것 등을 세세하게 요구하는 것과 대비된다. 임남균 목포해양대 교수는 “소형 어선에도 동일한 규정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현행대로면 그물 작업이나 바람 등 외력에 의해 배의 복원력이 급격히 낮아져 전복되는 사고가 언제든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40m 미만 어선에 대한 느슨한 복원성 규제

 

연평균 91명(2017~2021년 기준)이 어선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정부는 2026년까지 그 숫자를 64명으로 30% 감축하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대책은 한없이 더디다. 예를 들어 선주의 산업재해 예방 의무를 구체화한 ‘선내 안전·보건 및 사고예방 기준’은 2025년 1월25일에야 시행된다. 선원법에 관련 규정을 만들라고 정한 지 12년 만이다. 어선원을 위한 별도 규정인 ‘어선원 안전·보건 및 재해예방 기준’도 2025년 1월3일 시행된다. 해상 노동의 특수성을 반영한 기준을 만들자는 취지였으나, 입법이 늦어지면서 금성호 사고 수사에 적용하기 어렵게 됐다.

조류에 휩쓸린 선원의 위치를 알려주는 휴대용 지피에스(GPS) 장치(‘어선원 조난위치발신장치’)도 2018년부터 6년째 ‘도입 중’이다. 연구·수정·보완을 반복 중이다. 해수부는 2025년 상반기에야 신청자 위주로 장치를 도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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