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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여러분, 모두 자산시장에 입장했습니까?

‘동학개미운동’의 주역 밀레니얼, 저금리 시대 희망, 불안, 욕망, 두려움 그리고 돈에 대한 세계관
등록 2020-07-04 15:43 수정 2020-07-14 17:02
서울 서초구 반포지구의 한 아파트에 선 30대. 한겨레 김명진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지구의 한 아파트에 선 30대. 한겨레 김명진 기자

1985년생부터 1996년생까지. 6명의 밀레니얼 세대, 자산시장에 입장했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서.

물려받을 것 없는 내 인생에도 한 방은 필요해서.

일자리는 없고 임금은 초라한데 손에 쥔 스마트폰 하나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그로 인한 불균형이 못내 불편하지만 이미 그 흐름에 발을 담갔다. 따르고 싶고 벗어나고 싶다.

세계적인 투자 구루(스승)들의 한마디 한마디 새겨본다. 내 처지를 생각하니 물색없다.

몇몇은 못 견디고 퇴장했다.

그냥 수다 떨 듯 가볍게 때로 진솔하게. 동학개미운동의 주역이라고 불린 이들 밀레니얼과 희망, 불안, 욕망,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재산상태 등 예민한 정보가 있어 실명은 밝히지 않습니다. 인터뷰 대상의 발언은 낮춤말로 정리했습니다.)

자산시장에 뛰어든 밀레니얼들

자산시장에 뛰어든 밀레니얼들


<em>투자의 변 1 혼자 뒤처질 수는 없어서</em>

<em>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 앙드레 코스톨라니</em>

“냉정하게 아끼고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돼야겠어.” L(35)의 반성과 다짐이 다시 시작됐다. 2년 전 10평(33.1㎡) 남짓한 자취방 탈출 계획을 세웠을 때랑 비슷하다. 그때 L은 정보를 구해야 한다며 부동산 전문가 빠숑의 팟캐스트와 아임해피의 유튜브를 끼고 종종거렸다. 냉혹한 ‘소비 통제’와 열정적인 ‘학구열’은 얼마 가지 않았다. “1억원도 없는 내 얘기가 아니더라고.” 그렇게 한동안 L은 “무념무상의 상태로 살았다”. 아침에 카페라테 한 잔씩 마셨고, 마트에서 유기농 식품을 골랐다. “어차피 부동산은 못 가질 거, 먹는 거라도 잘 먹자 싶었어.”

올해 3월 코스피 지수가 1800 밑으로 떨어지는 걸 봤다. “오를 일만 남았다”고들 했다. 맞는 말 같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펀드에 돈을 넣었는데 한 1년 지나니까 오르더라고. 그 기억이 났어.” 조급증이 고개 들었다. 마침 수중에 만기 된 적금 700만원이 있었다. 주식 계좌로 옮겼다. 백화점 주, 화장품 주, 항공 주 따위를 담았다. “코로나 때문에 가장 많이 떨어진 데들을 골라봤어. 사실 뭘 알고 한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익숙한 회사들로만.”

뭔지는 잘 몰라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욕망을 북돋우고 반성을 촉구하는 말들이 있었다. “친구의 친구 중에는 벌써 다주택자인 애들도 있대. 나보다 그래 봐야 두세 살 많은데. 어떤 애들은 주식 수익만큼만 소비하고 월급은 전부 투자금으로 쟁여둔대. 나는 너무 늦었지.” 한편 들뜨고 한편 조바심치며 L은 뜨거울 것과 냉정할 것의 목록을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뜨거울 것, 공부와 정보. 냉정할 것, 유기농 식품과 스타벅스. 남들에 견줘 보잘것없긴 했대도 4월까지 0.97% 수익이 났다. 마음가짐을 다시 조였다. “물론 이런다고 집을 살 수는 없지.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돈을 까먹는 것 같아.”

월급에는 인플레이션이 없다

2020년 4월 말 기준 주식 활동 계좌(최근 6개월 사용된 잔고 10만원 이상의 주식 계좌)는 3125만 개로, 올 초보다 190만 개 늘었고 20~30대 투자 비중이 50%를 넘어섰다.(금융투자협회) “정말 의외의 일이다. 기관과 외국인이 빠져나가는 시장에서 개인, 특히 밀레니얼 세대가 들어왔고 실제로 그들이 수익을 얻어갔다.”(홍춘욱 EAR리서치 대표) 전문가들조차 경제위기의 길이와 깊이를 확신하지 못한 올해 상반기(1월2일~6월25일), 외국인과 기관이 40조원어치 주식을 파는(순매도) 동안 개인은 39조원 가까이 주식을 사들였다(순매수).

주식시장에 입장하는 데 세계의 모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C(35)가 말한다. “뻔하지. 금리는 낮고, 돈은 풀었는데 그래도 성장은 안 될 거고. 그럼 그 돈이 갈 데는 자산시장, 그중에서도 성장성 있는 몇몇 종목뿐이니까. (이런 흐름이) 돌아설 것 같지 않아.” 전문가들이 ‘구조적 장기불황’(Secular Stagnation, 로런스 서머스), ‘전환형 복합 불황’(홍성국)이라고 표현하는 저성장·저금리(상자기사 참조)는 C에게 한동안 되돌릴 수 없는 당연한 조건처럼 느껴진다.

조바심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저금리로 돈의 가치는 낮아졌다. 경제학 원리대로라면 당연히 나타나야 할 인플레이션은 자산, 그 가운데서도 “일부 지역 아파트나 일부 성장주에만 나타난다.”(B(34)) 물가에도 내 월급에도 인플레이션은 없다. 이런 마당에 월급 받아 은행에 고이 모셔두는 건? “뒤처지는 거다.”(L)

이런 세상의 모습을 올해 들어 모두가 확신하게 된 것 같다. 그들 사무실 안의 풍경, “주식 올랐다고 커피를 사서 돌리고”(C), “공해라고 느껴질 정도로 모두가 주식 얘기뿐이다”(B). 역시 이전부터 투자를 좀 해온 S(34)에게는 의외의 전화도 걸려온다. “대학 때 운동권이고 이런 건 관심도 없던 애들한테 주식 계좌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연락이 온다니까. ‘자본주의 타도하자’고 했던 애들이.” 경제 전반이 훅 뒷걸음질한 3월 이후 요란법석을 보며 세계관은 한층 더 굳었다. 세계경제는 -6% 역성장(경제협력개발기구 5월 전망)을 내다보는데 미국 기술·성장주 중심 시장인 나스닥은 역사상 처음 1만을 넘었다.(6월10일, 10020.35포인트) 이제 ‘만스닥’이라고 부른다. 1400선(3월19일)까지 떨어졌던 코스피도 6월 2100을 회복했다. 투자자 예탁금(증권투자 대기 자금)은 6월26일 사상 처음 50조원을 돌파했다. 1월 말에 견줘 불과 5개월여 사이 두 배 가깝게 불어 있다.

예금·대출 금리,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추이. 단위: %, 자료: 한국은행

예금·대출 금리,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추이. 단위: %, 자료: 한국은행


미안하다, 호캉스 했다

다시 L과의 수다, 저금리·저성장 시대의 생존법을 깨닫고 있긴 한데 역시 어딘지 어설프다. “일단 식료품을 사다가 집에서 밥을 해먹었어. 일주일 동안 몇만원 아꼈어. 그런데 주말에 집에 있는 동안 너무 더웠고, 이래 봐야 내가 푼돈 투자해서 얼마 벌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부끄러운 듯 잇는다. “그래서 호캉스(호텔에서 휴가를 보냄)로 10만원을 써버린 거야. 미안하다, 호캉스 했다.”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는 모르겠다. 일관되지 못한, 자신을 향한 사과인 것 같다.

경제 규모가 줄어들고, 그나마 양극화하는 세상에서 L의 분열하는 마음이 실은 자연스럽다. 또래의 모습을 따라 돈 되는 투자를 분주하게 모색하고 초조하게 동참하지만 사실 이 모든 일의 끝에 약속된 것은 불투명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졸라매다가도 성공 가능성은 너무 좁고 아득해 ‘플렉스’(돈을 많이 씀) 하고 만다. “(축소하는 경제에서) 중간지대 소비가 없다는 것은 중산층과 사회 하층민이 상류층 소비 방식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 소비는 중간층 소비 없이 최고급이든지 아니면 가장 싼 제품만 팔리게 된다.”(홍성국, <세계가 일본 된다>)

<em>투자의 변 2 부모님이 부자가 아니라서</em><em>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 로버트 기요사키</em>

S는 승리를 향해 진취적으로 나아갔다.

한때 승자의 자리에 섰다고 생각했다. 2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 분위기도 좋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어.” 3년쯤 일하고 꿈꾸던 회사의 노동자로 사는 일에 회의를 느꼈다. 결혼을 생각했다. “자격지심일지 몰라도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났는데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을 것 같은 스스로가 초라해진 거야. 내 월급은 200만원 남짓이고.” 무엇보다, “우리 부모님이 집 해줄 형편도 아니었어”. 결혼을 바라고 처지를 돌아보니 패자였다. S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한다. “불안감도 있었지만 승부를 봐야 할 때라고 생각했지.” 친구와 동업해 스타트업을 차렸다. 가망 없는 노동자의 자리를 벗어나 사업가가 됐다. 사업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남북관계 안 좋아져 “떨어져 죽을 생각”

그러다 지난해 “눈이 돌아갔다”. 결혼 날짜가 잡혔다. 집과 결혼은 묶여 있는 계획이었다. 집을 사기에 돈이 좀 모자랐다. 비교적 안전한 우량주 위주로 해오던 투자를 좀더 공격적으로 돌려보기로 했다. “시간은 없는데 우량주 투자로 수익을 보는 데는 너무 오래 걸렸거든.” 남북관계가 진전할 거라는 정보를 들었다. “돌아보니 나만 아는 정보도 아니었을 텐데” 어떤 종목에 관한 구체적인 얘기를 들었고, 무척 대단한 정보로 여겨졌다. 그동안 모아온 돈, 우량주에 넣어놨던 돈을 그 대북 주에 몰아넣었다. 2019년 6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 나란히 섰을 때 승리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제야 내 인생 펴는구나.”

이후는 모두 예상하다시피. 지난해 말부터 남북관계는 얼어붙었고 S는 세상 그 누구보다 열심히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좇고 곱씹었다. “‘체어맨 김’(김정은) 얘기했나 안 했나. 안 좋은 얘기 나오면 온종일 아무 일도 못했지.”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물타기(평균 매수 단가를 낮추려 추가로 주식을 매입하는 행위)를 하다보니 어느덧 대북 주에 넣은 돈이 1억원을 넘어섰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다. 주가가 연이어 급락하던 3월 중순, 손절매(손실을 보고 매도)했다. 따져보니 투자금의 절반 정도가 사라져 있었다. “떨어져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심각한 경험담, 어투까지 심각해서 무얼 하랴. S의 말투는 괜스레 장난스러운데 또 한편 철렁하다. 투자거래 애플리케이션(앱) 로빈후드로 풋옵션에 투자했다가 73만달러 손실을 보았다고 생각해 자살한 미국 스무 살 청년의 이야기가 바다 건너 전해진 터다.

투자에 실패한 S의 마음, 가장 큰 건 자책이다. “사실 그 주식의 가치는 지금 이 정도가 딱 맞아. 말도 안 되는 상상력으로 부풀려진 거지.” 주식 얘기를 하는 건데, 꼭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좀 억울하기는 하다. “잘사는 친구들이 좀 있어. 걔들은 20대 후반에 부모님한테 아파트를 받았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따라잡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주식이잖아. 그래서 주식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근데 지금 보니 부동산 물려받는 게 답이야. 도저히 못 따라가.” 조귀동은 책 <세습 중산층 사회>에 적었다. “부동산 자산이 상속되면서 20~30대의 불평등을 키운다는 것이다. …부모의 근로소득, 교육받은 기간 등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S는 결국 결혼 계획을 미뤘다. “그놈의 대북 주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코로나19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대물림받을 자산 없이 홀로 서야 하는 처지”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회사를 박차고,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꿈꾸고, 다시 투자 대박을 꿈꿨던 S의 목적은 하나, 이미 어떤 친구들은 가지고 있던 삶의 조건을 비슷하게나마 누려보는 것이었다. 돈을 잃고 자신을 돌아본다. “뭔가 아등바등해보려다 망한 케인스인 거지, 나는. 결국 맨바닥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지게 돼 있는 게임인 것 같아. 슬픈 얘기지.”

올해 4월과 6월, L의 주식투자 내역. -11.95%까지 수익률이 떨어졌다. L 제공

올해 4월과 6월, L의 주식투자 내역. -11.95%까지 수익률이 떨어졌다. L 제공

<em>투자의 변 3 일자리는 없지만 스마트폰과 시간이 있으니까</em><em>똑똑하고 가난한 젊은이들은 투자에 매료되기 쉽다. - 벤저민 그레이엄 </em>

일하는 것과 투자하는 것의 관계를 생각한다. P(24) 때문이다. P는 10월부터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지방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이 넉 달 앞으로 다가왔다. 고민이 많은 성격은 아니고, 아직 어린 편이라고도 생각한다. 보건학을 전공했다. 유망하다는 직종이다. 그래도 마음 한쪽 불안을 떨칠 수는 없다. “보건 인력마저 상반기에는 뽑는 데가 거의 없었어. 10월이면 나아지겠지?” 알 수 없다. 마이너스 성장이 유력한 세상에 고용부터 삐걱댄다. 1년 전에 견준 취업자 수 증가폭은 3월부터 5월까지 내리 감소했다.(3월 -19만5천 명, 4월 -47만6천 명, 5월 -39만2천 명, 경제활동인구조사 기준)

조교 월급은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씩은 떼어 착실하게 저금했다. 모아보니 200만원이 됐다. 이 돈을 쥐고 P가 향한 곳은 취업 준비 학원이나 도서관은 아니다. 5월부터 주식을 시작했다. “친구가 수익을 내는 걸 봤다”는 단순한 이유, 그리고 또 하나 이유가 있다. “친구들은 취업했는데 나는 멈춰 있다는 생각이 들잖아. 그러니까 이거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일하는 나’ vs ‘투자하는 나’

P에게는 종잣돈이 많지 않다. 그래도 스마트폰과 시간이 있다. “시간이 있으니까 종일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 MTS(모바일 주식거래 시스템)에 뉴스가 올라오잖아. 호재가 뜨는 종목이 있으면 바로 들어가고, 다른 게 나오면 빠지고. 단타를 치지. 어떤 종목은 두 시간 만에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어.” 그래서 지금 어떤 종목을 투자하는지는 앱을 확인해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조선 주 두 개, 바이오 주 한 개를 보유한다.

어쩌면 C에게는 P의 시간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다. C는 “약간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장성은 보이는데 가치가 저평가된 주식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C는 종목을 정해 들어갈 시간, 나갈 시간을 짚어주는 주식 리딩방에 들어가본 적도 있단다.(35~37쪽 참조) “그런데 일해야 하니까 계속 그것만 보고 매달려 있을 수는 없지. MTS는 알람을 설정해놓고 울릴 때만 확인하려고 해.” 노동자 정체성과 투자자 정체성 사이에 적절히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이기도 투자자이기도 한 밀레니얼들, 적절한 균형 잡기는 대개 쉽지 않다. 특히 주변에서 주가든 부동산이든 자산 가격이 오르는 속도를 체감한 뒤에 더 그렇다. 이제 갓 투자를 시작한 L은 혼란스럽다. “월급 300만원이 안 될 때가 많아. 이 돈 모아서 어떻게 집을 사겠어. 한창 일할 나이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 나도 아는데,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지 좀 됐어.” 씁쓸하게 저금리와 맞붙은 저성장을 떠올린다. 최근 8년 임금상승률은 2018년(5.3%) 한 해를 제외하면 2~3%였다. 코로나19로 상황은 더 암담하다. 올해 들어 4월까지 임금상승률은 0.4%에 그친다. 반면 최근 3년 서울 강남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50% 가까이 치솟았고, 대표적인 미국의 성장주 테슬라 주가는 3월 저점 대비 3배 가까이 올랐다.

아이러니하다. 강남 아파트니 테슬라 같은 미국 기술주가 일자리와 임금 인상을 통한 실물경제 성장을 이끌기는 어려워 보인다. P도, C도, L도 욕망이 향하는 곳은 그런 자산들이다. ‘일하는 내’가 싫어지는 불균형한 성장을 ‘투자하는 내’가 만드는 건지도 몰랐다. 실물과 자산, 임금과 수익, 간격이 벌어질수록 마음은 슬그머니 한 걸음 더 자산 쪽으로 향한다.

<em>투자의 변 4 이미 이 게임에 발을 들였으니까</em><em>대중이 일단 마음을 정하고 나면 그 방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em><em>-찰스 다우</em>

K의 예민함에 놀란다. 허허실실이 전매특허였던 K의 말씨가 부동산 앞에 변해 있다. K는 1월 서울 서대문구에 아파트를 샀다고 했다. 어머니 제안이었다. “‘어차피 집은 사야 할 거고, 집값은 오를 거고, 집 들어갈 때쯤이면 금리는 더 낮아져 있지 않겠니’ 그러셨어.”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물론 “당장 들어갈 수는 없는 집”이다. 아파트값은 7억2천만원이었다. 4억 전세를 끼었다. 2억원은 부모님께 받았고, 1억원 남짓 자기 돈을 넣었다. “세금 때문에 부모님께 매달 37만원씩 이자를 드리고 있어. 받은 것 아니고 빌린 거라는 식으로.” 그렇게 K는 야무진 갭투자자가 됐다. 아파트는 6개월 만에 8억원이 됐다. 물론 K가 입주해야 할 시점,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은 대출받을 계획이다.

그리고 6·1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집주인으로 바라보는 정책은 또 다르다. “일단 지금까지는 정부에 감사해. 집값 올려주셨으니까.” K의 감사한 마음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그런데 정부가 갭투자자를 주시하고 있잖아. 내가 그 집에 들어가야 할 때, 또 무슨 정책이 나와서 대출 기회가 막히거나 집값이 떨어진다면 열 받겠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가장 중요해”

부동산 정책, 심지어 미국의 금리 조절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에 이르기까지. 투자를 이미 했건 투자를 준비하고 있건, 이해당사자가 돼버린 밀레니얼 세대의 예민함은 극에 달한다.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 잃을, 승자와 패자가 명확할 ‘제로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규칙이다. 이제 막 주식을 시작한 P마저 “사건 사고 기사만 읽다가 이제는 정책 기사만 본다”고 한다. 특히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면 자리에 따라 분노와 환호가 메신저 단체대화방을 뒤덮는다. “집 있는 애들은 이번에 환호했어. 경험적으로 아니까. 정부가 진입을 막는 대책을 세우면 자기들 집은 희소해지고 값이 올랐거든.”(S) “대학 동기 카톡방에 욕이 쏟아진다. 이제 갓 아기 낳고 집 사야 하는데 갭투자도 대출도 막아대니까, 왜 내 앞에서 기회를 빼앗느냐는 거지.”(B)

예민함은 국경을 넘는다. 금융시장에만 투자하는 C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움직임이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꽤 오랜 기간 연준이 금리를 높이고 돈줄을 죌 수 없으리라 계산한다. 믿는 구석은, 역시 자기처럼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전세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세계적으로 너무 많은 부채가 있지. 그 부채가 자산시장에 들어와 있고.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금리를 올려서 주식시장을 하락시키지는 않겠지.”

L과 C와 K와 B와 S와 P는 이미 저금리·저성장이 만들어놓은 세상, 어떤 자리에 서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 젊은 여섯 사람은 베이비붐 세대에 맞서 저성장·저금리·저물가 상황을 거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본이 그랬다. “아베노믹스는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한 투쟁이라는 측면 외에 고령자와 청년층의 세대 갈등이라는 코드로도 해석할 수 있다.”(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고령사회에서 예상되는 사회변화 현상들’) 저성장과 물가 하락은 고정된 연금을 받는 고령층의 소득을 실질적으로 높이지만, 청년층이 성장을 바탕으로 일자리에 참여하고 임금 인상을 누릴 기회를 앗아간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좀더 복잡하다. 저성장·저금리는 자산시장으로만 쏠린 인플레이션을 낳고 있다. 밀레니얼은 한편 노동자고 한편 투자자가 되어간다. 내 안에서조차 여러 내가 분열하는 중이다. 취업준비생인 P는 실물경제에도 고르게 돈이 흐르고 성장이 나타나야 취업 기회를 넓힐 수 있다. 반면 주식투자자로서 P는 저금리·저성장 상황이 유지되며 자신이 투자한 자산 쪽으로만 돈이 쏠리기를 바란다. K의 경우는 좀더 명확하다. 너무 많은 것을 서대문구 아파트에 담았다. 집값 하락이나 대출 금리 상승이 나타날 경우 위험이 크다. 지금 상황이 변치 않길 바란다. 10평 자취방 탈출이 간절한 L은 오르는 부동산 가격에 분노한다.

세대 간, 세대 내, 내 안의 갈등이 복잡하게 교차한 채 부글부글 끓는다. 애초 경제의 파이가 줄며 생긴 분열이다. 저금리로 푼 돈이 일단 자산시장으로 흘러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법한 연결고리를 찾는 노력은 이어진다.(상자기사 참조) 찾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퇴장

부를 향해 2030이 자산시장에 열광했던 지난 3개월, B는 아예 주식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B는 입사하고 8년 동안 월급의 30%를 떼어 반은 주식, 반은 펀드에 꾸준히 넣었다. 자산 내용을 세세하게 엑셀 파일에 정리했다. “금융회사 창구 가면 칭찬받는” 성실한 투자자였다. 그리고 남들은 ‘들어갈 때’로 보고 좋아한 올해 3월 폭락장에서 그동안 쌓은 돈에서 3천만원 정도 잃었다. 꼴 보기 싫어서 놓아버렸다.

“놓고 나니까 편하다”고 B는 깨달음을 얻은 듯 말했다. 언제까지 놓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직장생활 8년 동안 2억원까지 돈을 모았는데 서울 아파트값이 한두 해 만에 2억~3억원씩 뛰어오르는 걸 봤다. 주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주식투자로 쏠쏠히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짜증 날 정도로” 끊임없다. “멈춰 있으면 뒤처지는 건 아닐지” 불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 든다. 투자의 무서움을 알아버린 B에게도 저금리, 그 덕에 한층 속도를 올려 멀어지는 부의 크기는 여전한 욕망의 대상이다. 그 기회가 자기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을 걸 깨달았다고 해도.

아무튼, 주말이 왔다. 주식시장은 쉰다. L은 부동산 관련 팟캐스트를 듣고 있다. 증권 앱을 들여다본다. “주식은 다시 폭망했어. 이 황금 주말에 부동산 방송이나 듣고 있자니 우울하다.” -11.95%를 가리키는 주식 수익, 들을수록 가질 수 없음만 분명해지는 부동산, 그런데도 돈 쓰는 일에 느끼는 죄책감을 L은 한참 토로한다. “등산이나 가야겠다.” 굴레를 벗어나되 최대한 죄책감이 들지 않는 선에서. L은 다만 몇 시간이라도 부를 둘러싼 게임을 벗어날 방도를 찾아낸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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