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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이 풍성해지는 ‘눈사치’

올림밭 만들기 두 번째… 조선 사람 팔 길이를 감안해 길이 정하고, 외발 손수레가 다닐 정도로 길 폭 만들길
등록 2013-04-12 20:16 수정 2020-05-03 04:27

지난 954호에서 올림밭을 만들면 아름답고 배수도 잘되고 관리도 쉬울 뿐 아니라, 덮어주면 매년 갈아엎는 수고까지 덜 수 있다며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했다. 그러나 세상만사 길게 보면 ‘공짜 점심’은 드문 법이니, 나의 유혹에 독자들이 너무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고백 또한 필요하다.
내 올림밭을 보시고는 평생을 농사일로 보내신 고개 너머 고모님이 던진 첫마디가 “저렇게 길을 많이 내면 뭘 심누”였다. 손 뼘이라도 남으면 논두렁 가장자리까지 메주콩이라도 심어야만 하는 고수들 눈에 내 올림밭은 그야말로 보기에만 좋은 ‘눈사치’였다. 그러나 고모님의 질책 또한 뒤집어 생각하면 텃밭 소출에 대한 과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미덕이랄 수 있다.

하루 종일 시간 내어 뒷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엮어 올림밭을 만들었다. 말뚝을 박아놓고 나무줄기를 엮었다. 들이가 한가로이 구경을 하고 있다. 강명구 제공

하루 종일 시간 내어 뒷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엮어 올림밭을 만들었다. 말뚝을 박아놓고 나무줄기를 엮었다. 들이가 한가로이 구경을 하고 있다. 강명구 제공

거름 반, 흙 반으로 텃밭을 ‘조성’해 미어터지게 채소 등속을 가꾸는 것은 작물이나 땅이나 경작자에게 모두 경계할 일이다. 먹고살기 위한 돈벌이가 텃밭 가꾸기의 목적이 아니라면 여유를 주어야 한다. 사족으로 위로의 말을 보탠다. 올림밭은 헐거워 보여도 작물이 살기 편하니 제 스스로 풍성해져 오히려 소출이 늘 수도 있단다.

서양 책을 보면 올림밭의 규모를 가로 150cm, 세로 300cm 정도로 하고 밭 사이의 길 폭을 60~90cm로 잡고 있는데 내가 해본 결과와는 약간 차이가 난다. 우리네 조선 사람 팔 길이를 감안하면 폭 120cm 정도면 길 양편에서 편안하게 닿을 수 있다. 길이는 용도와 미관에 맞추어 정하면 될 일이다. 길 폭의 경우 외발 손수레가 다니기 편할 정도로 넓으면 좋다. 내 밭의 경우 재보니 70cm인데 큰 문제는 없었다. 작물이 크다보면 길로 넘치기 일쑤이니 모종 심을 때 욕심을 좀 다스릴 일이지만 아무래도 길 폭이 넉넉하면 나을 것이다.

올림밭의 테두리를 정하는 일은 미관상 신경을 좀 쓸 일이다. 시멘트 벽돌로 친 올림밭의 테두리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나의 경우 간벌(솎아베기)하고 남은 뒷산 잣나무를 잘라 사용했는데 몇 년 지나니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가장 손쉽기로는 폭 20cm 정도의 송판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 경우 절대로 화학 처리된 방부목은 피해야 한다. 정감 있고 품위 있기로는 역시 올림밭 주변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 말뚝(잘 썩지 않는 밤나무가 최고다)을 박아놓고 말뚝 사이로 낭창낭창한 나무줄기를 엮는 것이다. 칡덩굴, 버드나무, 싸리나무, 대나무 쪼갠 것 등이 우선 머리에 떠오른다. 영국에서는 이런 용도로 쓰려고 개암나무 밑동을 잘라 여러 가는 줄기만 키우기도 한다. 테두리의 높이는 20cm 정도면 족한데, 내 경험상 네모난 테두리의 귀퉁이는 사선으로 잘라주어야 외발 손수레가 방향 틀기에 수월하다.

마지막으로 필수는 아니지만 여건이 허락하면 권하고픈 몇 가지가 있다. 텃밭이 허허벌판에 있으면 너무 외롭다. 텃밭을 주목이나 돌담으로 둘러싸주면 안온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텃밭을 정원의 연장으로 본다면 이른바 ‘가든룸’(Garden Room)으로 만드는 작업인데 겨울 한파와 찬바람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텃밭을 지속적으로 덮어주는 나의 방식을 따른다면 꼭 필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텃밭에 물 주는 일은 필요하며 큰 즐거움이니 근처 처마 밑에 빗물받이 통을 준비해놓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비 맞지 않게 연장 간수할 자리도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말이다.

이 정도면, 볕 따스한 오후, 파킨슨병 때문에 몸과 마음이 얼룩덜룩해지기 쉬운 휴머니스트 김세걸 박사를 불러 텃밭 보여주고 위무하며 한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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