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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벗고 논리 즐기기

등록 2008-02-22 00:00 수정 2020-05-03 04:25

▣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9·11 테러 직후 미국 의회에서 행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설 한 토막. 그는 다른 나라들을 겨냥해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 편인가? 그렇지 않으면 테러리스트와 같은 패다.”(Either you are with us, or you are with terrorists)

기독교 근본주의자다운 흑백논리이자 이분법이다. 근본주의는 극단주의로 흐르고, 극단주의는 이분법을 먹고 자란다. 극단주의자들이 이분법을 사랑하는 건 그 단순함과 편리성 때문이다. 적과 나를 제대로 구분할 줄만 알면 되니까. 전쟁의 시기에나 먹힐 수 있는 단순 논리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힘을 쓴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쟁점에 대한 치밀한 논박 대신 감정싸움이 자주 등장한다. 토론 상대자의 논리에 집중하는 대신 ‘빨갱이’ ‘꼴통 보수’ ‘사대주의자’ 같은 편견투성이 단어 붙이기 놀이를 선호한다. 토론을 어떤 이슈를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로 나누어 이기고 지는 것을 겨루는 게임 정도로 생각한 결과다. ‘소모적 토론’이라는 형용모순이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논리 부재는 ‘분단’과 ‘독재’의 역사적 후과다. 남과 북, 민주와 반민주(독재)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정교한 논리는 양쪽 모두에게 부담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역사적 후과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몇 년 전 일본 특파원들과의 대담 자리에서였다. 대담의 사회를 보던 내게 일본 특파원 가운데 한 명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김 기자는 이슈에 대해서 찬반 두 가지 입장을 정해놓고 이것 아니면 저것 식으로 하나를 고르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무척 부끄러웠다. 그 뒤로 그 장면을 곱씹으면서 내 속에 숨어 있는 흑백논리를 애써 경계하고 있다.

논리적 글쓰기를 잘하려면 글쓰기의 기술과 함께 논리적 사고법도 필수적으로 길러야 한다. 그래야 흑백논리나 이분법 같은 수준 낮은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논리학 개론서를 읽어가면서 공부를 해야 하기도 하겠지만, 우선 일상 속에서 논리를 즐겨야 한다. 모든 결론에는 전제가 있고, 전제에서 결론에 이르는 길은 철저히 ‘논증의 길’이어야 함을, 논증이 성공해야 비로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음을 매순간 기억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사소한 명제라고 해도 그 합리적 근거를 두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보는 버릇도 중요하다. 그런 과정이 쌓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논리적 사고에 익숙해질 수 있다.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인격과 견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견과 사실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험에 기대어 주관적인 속단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등을 스스로 되묻는 연습도 필요하다. 말꼬리를 잡거나, 데이터를 날조 또는 과장하는 것도 피해야 할 일이다.

사례를 들어 설득하는 예증법,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삼단논법, 연역법과 귀납법의 차이, 설득의 기술을 길러주는 수사학의 기본원리 등은 따로 특별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의 능력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인간사회의 문명 지수를 높이는 문제이기도 하다. 폭력이나 여론몰이가 아닌 논리를 통한 설득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게 민주주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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