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현실은 때론 TV 속의 개그보다 훨씬 우습습니다. 그런 장면 하나. 11월13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임채진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입니다.
조순형: “누구누구하고 골프 어디 가서 했나”라는 (의원들의) 질문에, 거의 다 “기억이 없다”고 그러시더라. 골프 1년에 얼마나 치느냐.
임채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조순형: 그것도 잘 모르냐. 한 달에 1번 정도 치시냐?
임채진: 한 달에 1~2번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조순형: 그럼 1년에 12번. 누구누구하고 쳤는지 기억이 안 나세요?
임채진: 제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조순형: 그게 잘 기억이 안 나세요? 그런 기억력으로 어떻게 25년간 검사를 했습니까?
삼성이 운영하는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임채진 후보자가 고교 동문인 (삼성의) 이우희 전 에스원 사장, 장충기 부사장과 함께 자주 골프를 쳤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조순형 민주당 의원이 임 후보자를 상대로 한 질의·응답 가운데 일부입니다. 임 후보자가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폭로대로 ‘떡값 검사’가 아니었느냐는 간접적인 추궁입니다. 그러나 임 후보자는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했고, 질문을 마치는 조 의원조차 결국은 실소를 흘렸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검찰은 ‘생사여탈권’을 쥔 엄중한 존재인데 그 최고 책임자의 옹색하고 석연찮은 태도에 국민들의 의혹의 눈초리는 한층 커졌을 겁니다.
우스운 장면은 또 있습니다. TV로 중계된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 대다수는 임 후보자의 자진 사퇴나 수사 지휘 라인 자진 배제를 요구했습니다. 수사를 받아야 할 당사자가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사정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법사위가 11월14일 채택한 청문회 경과 보고서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25년간 풍부한 능력과 경험을 쌓았고 2007년 대선의 공정한 관리 및 인권옹호와 정의실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춰 총장 직무 수행에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렇게 몰아세우고 정작 내놓은 것은 ‘적절’ 의견입니다(물론 모두 적절하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조순형 의원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등 일부는 부적절 의견을 냈습니다).
아마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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