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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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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의 적나라한 폭로

등록 2007-01-13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반이정 미술평론가 http://dogstylist.com

본디 내복 고안의 설계 속에, 설마하니 착용자의 수치심을 자극할 목적 따위가 포함되었을 리 만무합니다. 보온에 집중한 한철 의상 내복의 실용성은 그 대가로 미관을 포기했고, 따끈한 충성심에도 그들에게 돌아온 외면과 홀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각선미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내복 고유의 붙임성 때문에, 5등신 체형의 동아시아인에게 내복이란 일종의 적나라한 폭로성 의상 외엔 달리 표현할 방도마저 없는 게 사실입니다. 입은 이의 ‘신분과 무관’하게 우둔한 발레리나로 둔갑시키는 내복의 몰취향은 입은 이의 ‘의지와도 무관’합니다. 하여 내복 착용의 결정 요인은 바깥 기온의 하강보다는 안(內) 자존심의 포기 여부와 밀접합니다. 쫙 달라붙게 포위된 자신의 신체를 응시하며 기력 쇠진을 의심하면서 괜히 초라해지는 사정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년 내복 생산에 차질이 없는 걸로 봐서 따뜻한 발레리나의 유혹을 몸속 깊이 숨기며 사는 이가 많다는 얘기지요. 수치심을 안에 숨길 수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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