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김욱(62) (주)아가방 회장이 국내 첫 유아복·유아용품 전문업체를 차린 건 1979년이었다. 당시 회사 이름은 보라유통산업. 금성사(LG전자 전신)를 거쳐 대우실업((주)대우 전신)에 입사해 이란 테헤란 지시장을 지내는 동안 외국 생활을 오래 한 김 회장의 눈에 유아복·유아용품 사업은 가능성이 높은 영역으로 여겨졌다.
회사 설립 당시 말단 직원으로 참여한 황은경 부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기 옷은 재래시장에서 (브랜드가 따로 없는 옷을)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브랜드 시장이 따로 없고, 아기용품도 이렇다 할 게 없었습니다. 국산 아기용품은 약국에서 팔았던 ‘엔젤 젖병’ 정도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수입품들이었죠. 그나마도 비정상적으로 들어와 ‘도깨비시장’을 중심으로 나돌던 시절이었습니다.”
손석효 (주)아가방 명예회장으로부터 투자 지원을 받은 김 회장은 회사 설립에 앞서 일찌감치 ‘아가방’이란 브랜드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기한테 필요한 모든 걸 한 군데에 모아놓은 곳’이란 뜻을 담은 이름이었다. 기저귀를 구하려면 재래시장으로 가고, 아기 옷이나 이불을 사려면 옷가게나 이불점으로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 이미 ‘원스톱 쇼핑’ 개념에 착안했던 셈이다. 아가방은 새로운 개념의 사업을 잘 나타낸데다 부르기 좋은 이름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이듬해 회사 이름으로 채택됐다.
초창기 아가방은 수입품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란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다양한 아기용품들을 갖춰놓아야 했지만, 국산품은 변변한 게 없었다. 이 때문에 아가방은 이탈리아 치코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아 당시로선 신기하게 여겨졌을 법한 아기용품들을 많이 들여왔다. 아기 콧물 흡입기, 유아 분실 방지용 끈 따위가 이때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선을 보였다.
아가방은 이렇게 수입업으로 첫발을 내디딘 뒤 서서히 국산화를 추진해 1982년께 대부분의 영·유아용품을 자체 브랜드로 국내에서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가방은 이때부터 ‘수입품은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20년 이상 원칙을 고수했다. 현재 아가방에서 판매하고 있는 300개 안팎의 용품 가운데 딱 한 가지만 빼고 모두 자체 브랜드의 국산품이다. ‘100% 국산화’의 유일한 예외는 미국 업체의 젖병 ‘닥터브라운’이다.
아가방은 산업자원부가 후원하고 산업정책연구원(IPS)이 주관하는 ‘코리아 브랜드 컨퍼런스’의 브랜드 올림픽에서 올해까지 3년 연속 유아업계 1위(슈퍼브랜드)로 선정된 데서 볼 수 있듯 영·유아 시장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돼 있다.
베비라, 해피랜드 등 경쟁업체들의 부침 속에서 꿋꿋하게 시장점유율 1위(30~40%)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가방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저출산 흐름이다. 2000년만 해도 한 해 63만 명이던 신생아 수가 2005년엔 45만 명 수준으로 뚝 떨어져 아가방을 비롯한 유아복·유아용품 업체들을 고민스럽게 하고 있다. 첫 아가방 옷을 입고 자란 고객이 이제 엄마·아빠가 돼 아가방 옷을 구매하는 나이에 이른 지금, 아가방은 또 한 번의 도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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