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30대 이상치고 ‘안티푸라민’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이도 드물 것 같다. 삔 데, 멍든 데 바르는 건 기본이었고, 겨울철 손발 튼 데도 필수품으로 활용됐으니…. 감기에 걸리면 코 밑에, 배가 아프면 배꼽 주변에, 졸음을 참는다고 눈두덩에 안티푸라민을 바르는 이들도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안티푸라민의 역사는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유한양행 창립자인 고 유일한 박사가 의사 출신의 중국인 부인 호미리의 도움을 얻어 첫 자체 개발 의약품으로 안티푸라민을 선보였다고 회사 쪽은 밝힌다. 1926년에 설립된 유한양행은 당시까지만 해도 의약품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데 머물고 있었다.
안티푸라민이란 브랜드 이름을 처음 제안한 이가 누군지에 대해선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창업자의 뜻에 따라 지어진 이름일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안티푸라민에 담긴 뜻은 참으로 건조하다. ‘반대’라는 뜻의 안티(anti)에 ‘불태우다, 염증을 일으키다’는 뜻의 인플레임(inflame)을 합쳐 발음하기 좋게 바꾼 것이라고 한다. 제품의 특성을 그대로 설명한 ‘항염증제’ ‘진통소염제’라는 브랜드 이름이다. 회사 쪽은 “창업자가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 걸 경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1930년대 신문 광고에 ‘사용 전 의사와 상의하라’와 같은 문구를 넣은 것도 그같은 경계의 뜻이었다고 한다.
안티푸라민이 처음 나왔을 때 가격은 60전이었다고 전해진다. 화폐 단위가 ‘원’으로 바뀐 뒤인 1960년대 들어 녹색 철제 캔에 간호사 이미지를 넣은 제품은 70원에 팔렸다. 용량을 20g에서 30g으로 늘린 요즘엔 약국에 따라 2천원에서 2500원에 판매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따지면 30배가량 오른 셈이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유한양행에서 차지하는 안티푸라민의 비중이 미미한 편이다. 안티푸라민 매출은 한 해 20억원을 밑돌아 회사 전체 매출의 0.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매출 규모가 1990년대와 비슷하다. 앞으로도 성장세를 탈 것으로 보긴 어려운 제품으로 꼽힌다. 진통 소염제 시장이 붙이는 약(패치) 쪽으로 옮아간 지 이미 오래다. 패치 방식의 진통 소염제는 품목당 한 해 매출이 많게는 200억~300억원에 이른다. 그렇지만 안티푸라민에 대한 유한양행의 애정은 각별하다. 회사의 상징물이란 점에서다. 회사 쪽은 “(안티푸라민이) 회사 성장의 바탕이라거나 견인차 구실을 했다고까지 할 순 없을지라도 1970년대까지 가정 상비약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회사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서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힌다. 상징과 이미지 차원을 넘어 장수 제품을 통한 신뢰 구축으로 실제 경영에도 도움이 됐다는 설명도 덧붙는다.
장수 제품이 으레 그렇듯 안티푸라민에도 적지 않은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매출 규모가 크게 늘지는 않아도 꾸준히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노년층을 중심으로 브랜드 충성도가 강한 고객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고 회사 쪽은 설명한다. 개인 고객들 외에 보건소를 비롯한 공공 의료기관들도 안티푸라민의 꾸준한 수요층으로 꼽힌다. 안티푸라민에는 회사 설립 이후 한국전쟁 앞뒤 4년을 빼고는 지난해까지 76년 동안 줄곧 흑자(순이익)를 기록한 유한양행의 이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안티푸라민의 역사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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