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가구업은 두 얼굴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패션 업종으로 합판을 비롯한 일반 목재업에 견줘 6배 이상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미래형’ 산업인 동시에, 수공 기술이 필요한 노동집약적 산업이란 ‘과거형’의 특성을 아우르는 업종으로 꼽힌다.
국내에선 가구업이 사양산업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업종으로 자주 거론되는 게 한 예다. 그렇지만 세계 가구시장의 판도에선 이와 다른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세계 7대 가구 생산국은 미국, 이탈리아, 독일, 일본, 영국, 캐나다, 프랑스이다.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시장인 것이다.
국내 가구업체들은 한편으론 고가 외제품에 밀리고, 저가 시장에서는 중국제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외환위기 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런 ‘넛 크래커 현상’(호두깎이 기계에 낀 호두 신세)에 부닥친 국내 업계에선 ‘공동 브랜드’를 만들어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논의가 일었다. 이 흐름을 주도한 곳은 105개 중소 가구업체들의 모임인 서울시 가구공업협동조합(서울가구조합)이었다.
서울가구조합은 1996년 들어 공동 브랜드를 만든다는 방침에 따라 조합원들을 상대로 브랜드 이름을 공모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공동 상표 지원 제도’가 막 시작된 해였다. 공동 브랜드에 선정되면 마케팅, 홍보,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일정액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당시 제안된 브랜드명 가운데 가보로(GABORO), 부티(VOOTEE), 코파스(KOFS) 세 가지를 추린 조합은 그해 6~7월 한 달에 걸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가보로가 가장 높은 46.2%의 지지를 받았으며 부티는 29.2%, 코파스는 24.0%에 머물렀다. 국내 가구업계의 공동 브랜드 1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가보로라는 이름의 제안자는 (주)장수산업과 장수돌침대(주) 창업자인 최창환 회장이었다고 한다. 최 회장은 “(브랜드명 공모 때) 여러 이름들을 생각해봤는데, 어느 날 밤 막 잠들 무렵 필(느낌)을 받아 곧바로 일어나서 적었다”며 “그게 ‘가보로’였다”고 전했다. “비몽사몽 중에 일어나서 뭘 막 적으니까, 집사람이 ‘자다 말고 뭐하냐’고 묻더라. 가구업계를 위해 이름을 지었노라고 했다. 지금도 집사람은 ‘가보로는 잠결에 만든 것’이라며 웃는다, 허허.” ‘가보로’에는 ‘대대손손 가보로 쓸 수 있게 장인 정신으로 만들었다’는 뜻과 ‘가구인을 보호하는 길’이란 의미를 아울러 담았다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 최 회장은 현재 대한가구공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가구인 조직인 카파(국제가구협회) 회장을 아울러 맡고 있다.
브랜드 ‘가보로’는 2003년 법인 (주)가보로로 거듭났다. 서울시 가구조합(51%)과 62명의 조합원(49%)이 출자해 별도 회사를 만든 것이다. 비영리 단체인 조합의 한계를 뛰어넘어 프랜차이즈식 대리점 사업, TV 홈쇼핑 사업, 쇼핑몰 사업을 통한 이익 창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위한 방편이었다. 가보로가 가구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에 견줘선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는 평이지만, 아직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지는 못해 중소기업 브랜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매출 규모가 2004년 107억원에서 2005년 61억원으로 뚝 떨어진 실정이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낫다는 가구업계 공동 브랜드 1호의 실적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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