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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과의 대결 엑스캔버스

등록 2006-07-13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LG전자는 2000년 4월 디지털TV 출시를 앞두고 한참을 끙끙 앓았다. 새 제품 출시 시점은 째깍째깍 다가오는데, 브랜드 이름을 정하지 못한 탓이었다.
“브랜드 컨설팅 업체로부터 여러 후보 이름들을 받아놓긴 했지요. 디지털 제품들이 쏟아져나오던 시기여서 디지털을 반영한 이름들이 많았습니다. 밀레니엄(새천년) 관련 이름도 있었고….”(김현진 TV상품기획팀 부장) 김 부장은 당시 디지털TV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이끌고 있었다.

“실무진에선 제품 출시가 임박했으니 후보 이름 가운데서 하나를 골라 결정할 것을 제안했는데, 최종 의사결정 때 반려됐습니다. 애초 일정대로 제품은 일단 출시하고 더 좋은 이름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정리됐지요.” 이에 따라 LG전자의 디지털TV는 LG 마크만 붙인 채 ‘이름 없는 신생아’ 상태로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무명의 신생아가 이름을 얻기까지는 그로부터 넉 달을 더 기다려야 했다.

새 제품에 딱 맞는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 LG전자가 찾아간 작명소는 미국계 ‘랜도’였다. 랜도는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팅 업체로 LG 브랜드를 만들어낸 회사이기도 하다. 랜도에서 그해 7월 LG 쪽에 제안한 후보 이름 둘 중 하나가 바로 ‘엑스캔버스’(XCANVAS)였다. 엑스는 ‘크다’는 뜻의 ‘extra-large, extreme’, 캔버스는 단어 그대로 ‘평평한 판’과 함께 ‘예술작품’이란 뜻을 아울러 담고 있었다. 엑스캔버스는 고급스럽고 첨단의 느낌을 주는 이름으로 호평받아 그해 8월 출시되는 제품부터 적용하기에 이른다.

브랜드명을 엑스캔버스로 최종 결정하는 데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다른 후보 이름도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엑스캔버스의 ‘엑스’에서 풍겨지는 부정적 이미지 탓에 최종 결정 과정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실무진에선 엑스에서도 얼마든지 긍정적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설득으로 갑론을박을 끝냈다고 한다.

엑스캔버스는 LG전자의 전체 TV 판매에서 70%(금액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회사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출시 초기 엑스캔버스는 연 1만 대 정도 판매되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월 5만 대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8월 중 누적 판매 100만 대에 이를 것이라고 회사 쪽은 밝힌다. 엑스캔버스에 앞서 1998년 9월 선보인 삼성전자 디지털TV ‘파브’가 7년9개월 만인 올 6월 누적 판매 100만 대를 달성한 것에 견줘 조금 빠른 성장 속도다.

LG전자는 올 들어 새로운 캠페인 슬로건 ‘엑스캔버스하다’를 선보이며 화제를 뿌렸다. 일간지 지면 중앙에 기업명이나 제품 브랜드 표기 없이 발음 기호만으로 구성된 ‘티저광고’(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를 선보인 것이다. 이를 통해 ‘엑스캔버스하다’를 ‘TV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다’ ‘태도와 관념을 바꾸다’는 뜻으로 연결시켰다. 한승헌 상무는 “타임머신 기능을 탑재한 TV를 통해 TV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경쟁사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엑스캔버스의 브랜드 철학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한다. 엑스캔버스 브랜드의 타임머신 기능 TV는 별도의 녹화기 없이 TV를 켜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1시간 분량을 녹화할 수 있게 설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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