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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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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이코노믹 마트

등록 2006-06-06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국내 유통시장의 절대 강자 ‘이마트’ 이름 속에는 다양한 뜻이 녹아 있다. ‘경제적인’(economic)에서 따온 이(e)에는 ‘매일매일 항상 싸게 판다’(everyday low price), ‘계산하기 쉽다’(easy counting)는 뜻도 아울러 담겨 있다고 회사 쪽은 설명한다.
이마트라는 이름은 1993년 신세계백화점(2000년에 (주)신세계로 사명 변경)의 신규사업팀에서 비롯됐다. 신규사업팀의 정식 명칭은 3명으로 이뤄진 ‘창동점개발팀’이었고, 팀장은 현재 (주)신세계 이마트부문 판매본부장을 맡고 있는 정오묵 부사장이었다. 당시 신세계백화점은 삼성건설한테서 사들인 서울 창동의 공터 2천 평의 개발을 서둘러야 할 처지였다. 5~6년 동안 개발을 하지 않아 자칫 비업무용으로 분류돼 막대한 세금을 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밟고 있어 새로운 사업을 발굴할 필요도 절실했다.
“당시 창동은 외진 곳이어서 백화점 사업을 할 만한 데가 아니었다. 미국, 일본 같은 외국의 유통업 실태를 조사해봤더니 백화점은 이미 저성장세였고, 할인점이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할인점 사업에 나섰던 것이다.”(정오묵 부사장) 이 창동 공터는 국내 1호 할인점으로 탈바꿈해 이마트 신화와 더불어 국내 유통시장의 격변을 불러일으킨 씨앗이 됐다.
정오묵 부사장은 “할인점 사업 진출을 앞두고 이름을 지어야 했는데, 창동점사업팀에서 농담 비슷하게 회장(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성씨를 따 ‘이마트’로 해보자는 얘기가 잠깐 나왔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 성공의 공덕을 오너(대주주)에게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법하지만, 그런 농담성 제안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는 게 권 부사장의 설명이다. “외국 유통업체의 사례를 봤더니 프라이스클럽, 월마트처럼 창업자 이름을 따는 경향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너 이름에서 ‘이’를 따자는 농담성 제안은 농담에 그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백화점 사업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상태에서 비주력 부문에 오너 이름을 넣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마트의 이름은 이명희 회장의 이(李)가 아닌 economic의 이(e)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자는 지향점을 담은 이름이었다.
실무자들이 지은 ‘이마트’라는 이름에 대해 초창기 사내 일부에서는 떨떠름한 반응이 꽤 있었다는 후문이다. 기왕 영어로 지을 바에야 ‘에이(A)마트’로 지을 것이지 (F학점에 가까운) ‘이(E)마트’가 뭐냐는 빈축이 있었고, ‘킴스클럽’에 빗대며 우리나라엔 이씨보다 김씨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마트가 할인점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주도하면서 빈축은 깨끗이 사라지고 대신 ‘부르기 좋게 잘 지은 이름’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어지간한 동네 슈퍼는 다양한 영어 알파벳에 ‘마트’를 붙인 이름으로 바뀌었다. 인터넷 바람으로 이(e)가 키워드로 떠오른 것 또한 이마트의 이름을 부각시킨 좋은 바탕이었다. 나중에 ‘2001 아울렛’ 브랜드로 할인점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이랜드가 ‘이마트’ 이름을 선점당한 걸 대단히 안타까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마트는 판매대를 낮추고,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등 ‘한국형’ 할인점 사업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유통시장의 지도를 바꿔놓았다. 지난해 이마트 부문 매출은 6조6천억원으로 (주)신세계 전체 매출(7조3천억원)의 90%를 차지한다. 할인점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34%(2005년)로 경쟁 브랜드인 홈플러스(19%), 롯데마트(14%)의 두 배 수준이다. 세계 유통시장 1, 2위 업체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한국에서 견디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한 데는 이마트의 기세가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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