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4월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던 중 손으로 총을 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더니 아예 “문명 자체를 파괴하겠다”는 극언까지 나왔다. 벼랑 끝에서 숨죽이던 세계는 “2주 휴전” 소식에 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쟁으로 가로막힌 바닷길을 여는 게 전쟁의 최대 목표가 됐다. 불의하고 허망한 이 전쟁을 대체 언제쯤 끝낼 텐가?
“45일 휴전안이 미국과 이란 양쪽에 전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후통첩 시한(미국 동부시각 4월7일 저녁 8시)을 이틀 앞둔 2026년 4월5일 미국 정치 전문매체 액시오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중재에 나선 파키스탄·이집트·튀르키예가 종합한 2단계 휴전안엔 ‘이슬라마바드 협정’이란 별칭이 붙었다. 내용은 이렇다.
1단계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즉각 교전을 중단한다. 1단계 휴전 시작과 함께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잠정 개방한다. 2단계로 양쪽은 휴전 개시 15~20일 안에 호르무즈해협 관리 방안을 포함한 포괄적 종전 협상에 나선다. 협상이 무르익으면 양쪽 대표단이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만나 최종 합의를 이룬다. 액시오스는 “최종 합의안에는 이란 쪽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미국은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고 동결자산도 풀어주는 내용이 담기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휴전안을 검토한 이란 쪽은 “휴전이 아닌 항구적 종전을 원한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대신 10개 항목으로 구성된 자체 협상안을 역제안했다. 이란 관영 이르나(IRNA) 통신이 공개한 10개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이란은 미국 쪽에 불가침 보장을 요구했다. 전쟁이 4주차로 접어든 3월24일 미국이 ‘30일 휴전’을 제안하며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 쪽에 전달한 종전 협상안 15개 항목엔 없는 내용이다. 이란 당국은 공식적인 전쟁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협상의 최우선 과제로 강조해왔다.
둘째, 이란은 종전 뒤에도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유지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은 핵무기보다 강력한 ‘억지력’이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셋째, 이란 쪽은 이스라엘군의 침공에 맞서고 있는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포함해 중동 전역에서 전쟁을 중단할 것도 요구했다.
넷째, 걸프 연안 6개국과 이라크, 이스라엘 등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전투병력 철수다. 다섯째, 이란이 입은 전쟁 피해 배상이다. 여섯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핵발전 연료용 우라늄 농축 권리 유지다. 일곱째, 대이란 경제제재 해제다. 여덟째,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을 겨냥한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해제다. 아홉째,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을 겨냥해 내놓은 모든 제재 결의 폐기다. 마지막으로 이란 쪽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이란 제재 결의 폐기도 요구했다. 미국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 대거 포함된 게다.
트럼프 대통령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그는 4월6일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축하 행사에서 “할 수만 있으면 이란의 원유를 모조리 차지하고 싶다. 하지만 미국민이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란의 10개항 역제안에 대해서도 “충분하진 않지만 매우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협상 쪽에 무게감을 싣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언론 브리핑에선 태도가 돌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막강한 힘을 갖췄기 때문에 우리에겐 모든 계획이 다 있다. 이란에 있는 모든 교량을 내일(4월7일) 밤 12시까지 모조리 박살 낼 수도 있다. 이란에 있는 모든 발전소도 불타고 폭발하고 파괴돼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복구하려면 1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란 주장을 내놨다. 시한이 다가오면서 위기감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쪽에 처음 최후통첩을 한 것은 전쟁 3주차의 마지막 날인 3월21일이다. 그는 “48시간 안에 호르무즈해협을 전면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의 발전시설과 에너지 인프라를 규모가 큰 것부터 모조리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맞서 알리 무사비 국제해사기구(IMO) 이란 대표는 “호르무즈해협은 적성국을 제외한 모두에 개방됐다”고 반박했다. 이란 정부는 “발전시설과 에너지 인프라 공격은 이란 국민에 대한 직접 공격이며, 이란도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과 이란이 전격적인 잠정 휴전에 합의한 다음날인 2026년 4월8일 이웃나라인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중심가 타흐리르 광장에서 주민들이 이란 국기를 흔들며 축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시한이 다가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국방부 쪽에 이란 발전시설과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5일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이란 쪽은 “미국과 대화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국제유가와 주식시장이 폭등·폭락세를 오갔다. 다시 시한이 다가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26일 “이란 정부의 요청에 따라 4월6일 저녁 8시(미국 동부시각)까지 열흘간 공격을 연기한다”고 전격 밝혔다. 이란 쪽은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상 징후’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30일 “종전 협상에 큰 진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호르무즈해협 즉각 개방을 포함한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이란의 모든 발전소와 유전, (원유 수출의 심장부인) 하르그섬, 모든 담수화 설비까지 파괴할 것”이란 위협을 빼놓지 않았다. 4월1일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이 휴전을 요청했다. 호르무즈해협이 완전하게 개방돼 자유로운 통항이 이뤄질 때까지 휴전은 없을 것이다. 그때까지 이란에 대한 공격을 지속해 아예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밝혔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요청 주장을 “근거 없는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말의 전쟁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이란이 지옥같이 변할 때까지 48시간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4일 다시 이렇게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불안’과 ‘절박함’을 반증하는 발언이란 평가가 나왔다. 그는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고 동맹을 비난하는 한편, “휴전만 되면 해협은 자연스럽게 개방될 것”이란 상충된 주장도 내놨다. 4월5일엔 욕설까지 섞어가며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재차 촉구했다. 시한을 불과 12시간여 앞둔 4월7일 이른 아침엔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오늘밤 한 문명 전체가 파괴돼 영원히 되살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지만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제 완전하고 총체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이전과 다른, 좀 더 영리하고, 좀 덜 과격한 쪽이 이겼다. 뭔가 혁명적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누가 알겠나?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질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길고 복잡한 세계사에서 중요한 순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47년간 이어진 협박과 부패와 죽음이 마침내 끝날 것이다. 위대한 이란 국민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문명’을 파괴하겠다면서, 그 문명에 기대 사는 사람들에겐 ‘신의 가호’를 기원한다. 살기까지 느껴지는 지독한 역설이다. 교량과 발전소와 에너지 인프라 모두 민간인 시설이다. 민간인 시설 공격은 전쟁범죄다. 트럼프 대통령의 ‘석기시대’ 발언 뒤 △이란 공중보건의 중추이자 감염병 전문 교육 연구기관인 수도 테헤란의 파스퇴르의학연구소 △중동·북아프리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중부 이스파한의 무바라케 제철소 △테헤란과 북부 카스피해 연안 휴양지를 연결하기 위해 알보르즈주 카라지에서 건설 중이던 비(B)-1 대교 △‘이란의 카이스트’ 격인 샤리프공과대학 등이 속절없이 폭격당했다. 전쟁 첫날(2월28일) 학생과 교사 175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남부 호르모즈간주 소도시 미나브의 샤자레타이예베 여자초등학교 폭격 사건은 불의한 전쟁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를 보여준 묵시록이었던 셈이다.

2026년 4월9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중심가에서 민방위 대원과 병사들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을 살피고 있다. AP 연합뉴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 아심 무니르 원수(육군참모총장)가 오늘 밤 이란을 향할 예정이던 파괴적 군사력 사용을 2주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또 호르무즈해협의 완전하고 즉각적이며 안전한 개방을 전제로 이란에 대한 폭격과 공격을 2주간 중단하기로 했다. 양쪽이 합의한 휴전이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미국이 이미 모든 군사적 목표를 초과 달성했으며, 이란의 장기적 평화와 중동 평화를 위한 이란과의 협상이 급진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란이 제안한 10개 항목을 수령했으며, 협상의 기초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으며….”
최후통첩 시한을 불과 1시간30분가량 앞둔 4월7일 오후 6시32분께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렇게 전격 발표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 명의로 발표된 이란 쪽 공식 성명서를 첨부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성명에서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형제적 요청에 따라 이란에 대한 공격이 중단되면 이란군 역시 방어작전을 멈출 것”이라며 “향후 2주간의 이란군과 협의 아래 호르무즈해협의 안전한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가 안도했다.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이 양쪽 협상단을 이끌고 4월11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대면 접촉에 나선다.
전쟁은 쉽다. 평화는 쉽지 않다. 휴전에 반대했던 이스라엘은 4월8일 레바논에 무차별적 맹폭을 퍼부어 적어도 254명이 숨지고, 1165명이 다쳤다. 레바논 정부는 4월9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나와프 살람 레바논 총리는 “이스라엘이란 ‘살상 기계’를 멈추기 위해 모든 정치·외교적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의한 전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불의를 단죄하지 못한 탓이다. 이번엔 달라질 수 있을까?
미국으로 망명한 이란 인권운동가 단체가 펴내는 ‘인권활동가통신’(HRANA)은 “침공 40일째를 맞은 4월7일까지 이란에선 어린이 254명을 포함한 민간인 1701명과 군인 1221명,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714명 등 모두 3636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진숙, 장성철 진행자 향해 “보수 꼴통”…무슨 질문 받았길래?

트럼프 “이란 호르무즈 통행료 부과, 당장 중단하는 게 좋을 것” 경고

합수본, 전재수 ‘통일교 금품수수’ 무혐의…공소시효 지나

“10시 이후에 출근”…정부, 노인일자리 ‘출·퇴근 시간’ 조정한다
![[단독] “불꽃 파박”…1명 고립 HD현대중 정비 잠수함 수차례 폭발 [단독] “불꽃 파박”…1명 고립 HD현대중 정비 잠수함 수차례 폭발](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10/53_17757856229948_20260410500909.jpg)
[단독] “불꽃 파박”…1명 고립 HD현대중 정비 잠수함 수차례 폭발
이 대통령, 이스라엘 ‘아동 고문’ 영상 SNS 공유…“유대인 학살과 같아”

여야 26조2000억 추경안 합의…오늘 오후 본회의 처리

조국 출마해도 양보 없다? 정청래 “국회의원 재보선 모든 지역에 후보 공천”

한국-이란 ‘1:1 협의’ 물꼬 트이나…외교부, 정병하 특사 파견
![트럼프도 몰랐다, 정색한 멜라니아 엡스타인 ‘돌발 성명’ [포토] 트럼프도 몰랐다, 정색한 멜라니아 엡스타인 ‘돌발 성명’ [포토]](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10/53_17757897998146_20260410501231.jpg)
트럼프도 몰랐다, 정색한 멜라니아 엡스타인 ‘돌발 성명’ [포토]



![[단독] 휴게소 운영사에게 떼인 28억원… 점주는 세상 등졌다 [단독] 휴게소 운영사에게 떼인 28억원… 점주는 세상 등졌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03/53_17752205085641_20260403500019.jpg)
![[단독] 맥쿼리 사모펀드, ‘알짜’ 휴게소서 2천억원 벌어갔다 [단독] 맥쿼리 사모펀드, ‘알짜’ 휴게소서 2천억원 벌어갔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403/53_17752212342421_2026040350116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