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학생운동, 위장취업, 긴급조치 9호 위반에 따른 감옥살이(1978)….
박정희 정권 시절 온갖 신산을 겪은 변재용(50) 한솔교육 사장은 1991년 유아용 교재를 펴내는 출판사 설립을 앞두고 회사 이름짓기에 골몰해 있었다. 노동현장에서 야학 교사로 활동하다 1980년대 초 문제지를 만들어 집집마다 방문해 지도하는 사업에 나선 지 10년쯤 된 때였다. 변 사장은 출판사 설립 즈음 이미 2년 동안의 연구 끝에 훗날 히트상품으로 떠오르는 ‘신기한 한글나라’를 개발해둔 터였다.
변 사장의 머릿속에 떠오른 회사 이름 후보는 대략 세 가지였다고 한다. 한빛, 한솔, 한볕. 최종적으로 선택된 한솔은 ‘큰 소나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젊은 시절의 이력에서 엿볼 수 있는 변 사장의 철학과 정서가 오롯이 배어 있는 듯하다. 변 사장은 당시 주변의 의견도 많이 들었으며, 역학적인 측면도 고려했다고 한다. 역학상 소나무의 풍모가 십이간지 가운데 ‘원숭이’의 지혜와 호랑이의 기상으로 풀이되는 것에, 변 사장이 원숭이띠라는 사실을 덧보탰다는 후문이다.
변 사장은 “아기솔이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굳건하게 자라나 큰 소나무(한솔)가 되듯이 우리 어린이들도 한솔처럼 성장하기를 바라는 소망과, 그렇게 성장하도록 뒷받침한다는 책임과 각오를 담았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한솔인이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굳센 의지력을 가진 낙락장송과 같기를 바라는 뜻도 담았다.
그렇게 생겨난 한솔출판은 ‘신기한 한글나라’를 내놓으면서 입소문을 탔고 단번에 ‘엄마’들의 인기를 끌어모았다. ‘ㄱㄴㄷㄹ’ ‘가갸거겨’식의 재미없는 한글 공부를 ‘포도’ ‘코끼리’ 같은 통문자 학습으로 바꾸고 아이들이 ‘공부’를 ‘놀이’처럼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교재와 교육 방식의 독특함 덕분이었다. 방문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 15분 동안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만으로 6개월 뒤엔 한글을 줄줄 읽는 아이들이 속속 나타났다.
마냥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었던지, ‘한솔’이란 이름은 뜻밖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삼성그룹에서 떨어져나온 한솔그룹과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엉뚱한 연상을 낳았던 것이다. 한솔교육(당시는 한솔출판)이 한솔그룹의 주력사인 한솔제지보다 1년 앞서 탄생했음에도 1990년대 초반 청년기업으로 한창 부상하던 한솔그룹의 그늘에 가린 계열사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솔교육 쪽은 “계속 ‘한솔’이란 이름을 써야 할지 심각한 회의론이 일었고, 한솔제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000년 들어 회사는 이름 고민을 접고, TV·신문을 통한 기업 이미지 광고에 대대적으로 나서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심는 전략을 썼다. 이즈음 회사 이름은 한솔출판에서 한솔교육으로 바뀌었고 기업 광고와 이를 뒷받침하는 경영 실적에 힘입어 강한 브랜드 이미지가 구축됐다.
한솔교육은 지난 2001년 초 일선 교사 등 비정규직 사원 1천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데 이어 해마다 세전 이익의 1%를 공익 재단에 출연하는 등 아름다운 화제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해 매출 2500억원, 당기순이익 60억원을 거둘 정도로 기업 실적이 탄탄해 유아교육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솔교육은 교육, 출판에 이어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공급하는 미디어 사업에도 일찌감치 나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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