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1963년 5월에 탄생한 국내 첫 볼펜 ‘모나미153’이 친구 같은 느낌을 주는 건 프랑스어로 ‘내 친구’(MonAmi)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만은 아닌 듯하다. 하얀색 몸통(축)에 새 부리 모양의 ‘선축’, 딸깍딸깍 누르는 윗부분 ‘노크’에서 저마다 하나씩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터이다. 연필로 필기하던 초등학생 시절 중·고등학교 형·누나들이 모나미 볼펜을 쓰는 걸 선망하던 일, 수업시간에 습관적으로 노크를 딸깍거리다 혼난 기억, 손에서 갖가지 모양으로 뱅글뱅글 돌리면서 재주를 피우던 일….
플러스펜, 잉크펜을 비롯해 갖가지 모양의 쓰기 편한 필기구들이 쏟아져도 모나미 볼펜은 여전히 필기구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지금까지 생산된 모나미153 볼펜은 33억 자루. 이를 옆으로 늘어놓으면 지구 열두 바퀴를 도는 4만53㎞(자루당 14.5㎝)에 이른다. 153볼펜은 정부의 물가동향 측정품목으로 취급될 정도로 생활필수품 대접을 받고 있다. 오늘의 (주)모나미를 일궈낸 바탕이 이 브랜드였고, 지금도 모나미 펜사업부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회사가 문구류 시장 점유율 1위(27%)를 차지하고 있는 힘은 153볼펜에서 축적됐다.
모나미라는 브랜드 이름은 첫 제품 출시를 앞두고 이뤄진 직원 공모 과정에서 나왔다. 첫 제안자의 이름이나 모나미와 경쟁을 벌인 후보 이름들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회사 쪽은 밝혔다(쩝~). 창업자 송삼석(78) 회장이 지었다는 ‘153’이란 숫자는 많이 알려진 대로 성경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베드로가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성경 구절대로 많은 성과를 올리는 바람을 담았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갑오’(아홉)를 만드는 숫자라는 의미와, 초기 가격인 ‘15’원에 모나미의 탄생연도인 196‘3’년의 의미가 합쳐친 것이라는 뒷얘기도 남아 있다.
창업자 송 회장은 본격적인 볼펜 생산에 앞서 일본 오토볼펜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대신 기술을 이전받는 계약을 맺어 물에 번지지 않는 유성잉크를 만들어냈다. 이듬해인 1964년에는 볼펜촉 제조기계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국산화율이 높아졌다. 정밀 가공을 필요로 하는 볼펜심의 끝부분 ‘볼’의 국산화는 그로부터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모나미 협력사인 ‘정화강구’는 1975년 크롬 재질의 볼을 국산화한 데 이어 1982년 부드러운 촉감의 텅스텐카바이드볼(TC볼)을 만들어냈다. 국내에서 볼을 생산하는 회사는 정화강구와 ‘일광’이라는 두 곳뿐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증권선물거래소에서 모나미라는 회사가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업체로 분류돼 있다는 점이다. 잉크 카트리지를 대신 유통시켜주는 사업부의 매출이 볼펜을 비롯한 문구류 제조 매출을 넘어서면서 벌어진 일이다. 올 1~6월 잉크 카트리지 유통 쪽 매출이 417억원으로 전체 매출(807억원)의 51.7%였다. 볼펜 사업의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는 데 따라 빠르게 변신을 꾀해야 하는 모나미의 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모나미는 잉크 카트리지 유통업에서 나아가 자회사를 통해 프린터 리스 사업도 준비 중이다. 1967년 회사 이름을 광신화학에서 (주)모나미로 바꾼 이후 또 한 번 커다란 변화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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