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어느 정도 알려져 있듯이 1995년 12월에 나온 첫 김치냉장고 ‘딤채’는 김치의 어원에서 따온 말이다. ‘채소를 소금물에 담근다’는 뜻의 ‘침채’(沈菜)가 ‘딤채’로 발음됐는데, 구개음화 현상으로 ‘짐채’로 변했다가 ‘김치’로 굳어졌다는 김치의 역사도 웬만큼 알려져 있다.
위니아만도가 김치냉장고 사업 구상을 한 건 1992년이었다. 당시 회사 이름은 만도기계였으며, 그 뒤 만도공조로 바뀌었다가 2003년 4월부터 지금의 위니아만도로 다시 탈바꿈했다. 김치냉장고 사업 구상은 아산사업본부의 젊은 직원들로 짜여진 아이디어 모임 ‘유레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문화 코드와 회사의 강점을 연결해 상품화할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에서 김치냉장고라는 사업 개념을 끌어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거 문화는 급변하는데 음식 문화는 변하지 않아, 둘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는 걸 간파한 겁니다. 냉장고·냉동고라는 게 서양 음식 문화에 맞춘 것이어서 우리한테는 잘 안 맞거든요. 이 때문에 주부들이 겪는 불편이 컸습니다.”(마케팅팀 김종우 차장) 당시 아산사업본부가 냉각·냉동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건장’(말려서 저장하는)보다 ‘발효’ 중심인 우리나라 음식을 저장할 수 있는 냉동고 시스템으로 새 사업의 방향을 맞춘 배경이다. 차량용 에어컨 등 여름철을 집중 목표로 삼는 만도기계의 사업 구조를 겨울철로 넓히려는 셈법도 깔려 있었다.
아산사업본부 개발팀은 1993년 제품 개발에 나선 지 2년 만에 김치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해 12월 첫 제품 출시를 앞두고 회사 앞에 던져진 최대 과제는 새 제품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회사는 브랜드 작명 회사에 컨설팅을 의뢰하고 사내 공모를 실시하는 한편으로 관련 분야 교수들한테 위촉도 했다. 이런 다양한 과정을 거쳐 최종 선택된 ‘딤채’라는 이름을 처음 제안한 이는 당시 마케팅부의 평사원이었다. 국문학도 출신인 그는 딤채가 1998년 12월부터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는 걸 보지 못한 채 1997년 말 개인적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회사 쪽은 퇴직한 이의 실명을 밝히는 건 적절치 않다며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딤채를 첫 출시하던 때 광고홍보팀에서 광고 전략을 맡았던 김종우 차장은 “문화 코드를 읽고 만든 것이어서 초창기 적자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회사 쪽의 마케팅 전략은 철저하게 ‘입소문’을 내는 것에 맞춰졌다. 여성 국회의원·경영자·요리 전문가와 대단위 아파트 부녀회장 등 4천 명 안팎의 여론 주도층에게 편지로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게 대표적인 예다. 제품을 4개월 동안 공짜로 써본 뒤 구입 의사가 있으면 50%를 할인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조건 없이 회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화제가 만발했다. ‘포도 넣어놓은 걸 까맣게 잊었다가 석 달 뒤에 꺼내 먹어보았더니 맛이 더 좋아졌더라’ ‘낚시 가서 잡아온 생선을 넣어뒀다가 씻으려고 꺼내니까 살아 있더라’….
소비자들의 애초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만족도에 따라 구전 효과가 나타나면서 출시 첫해 2만 대에 지나지 않았던 딤채 판매량은 1996년 4만 대, 1997년 8만 대, 1998년 16만 대, 2000년 32만 대로 해마다 두 배씩 불어났다. 지금은 한 해 판매량이 50만 대 수준으로, 국내 김치냉장고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한 해 5천억원인 위니아만도 매출의 80%가 딤채에서 나오는 데서도 위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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