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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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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섬뜩하게 하는 것들

등록 2006-06-2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섬뜩하십니다.”
어느 독자의 탄성입니다. 그는 머리칼이 쭈뼛 섰다고 합니다. 또 다른 독자는 “귀신이 쓴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점쟁이 기질이 있으니 아예 자리를 깔라”는 분까지 있었습니다. 인터넷 독자의견란에 올라온 글들입니다.
족집게였습니다. 지난호(614호)에 실린 ‘2006 월드컵’ 가상 시나리오 이야기입니다. 길윤형 기자의 토고전 경기 예측이 실제 결과와 거의 흡사해 놀란 분들이 많습니다.

2대1의 스코어는 물론, 전반에 한 골을 먼저 내준다는 설정이 적중했습니다. 후반 경기 상황에 관한 묘사도 거의 맞아떨어졌습니다. 박지성이 얻은 프리킥으로 이천수가 첫 골을 얻는다는…. 심지어 프랑스와 스위스가 0대0으로 비긴다는 예상도 정확했습니다. 두 번째 골의 주인공을 조재진이 아닌 안정환으로만 찍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을 겁니다(안타깝고 슬픈 건, 정작 현금이 걸린 승부 알아맞추기 게임에서는 엉뚱한 점수를 냈다는 점입니다. 0-2 패배!)

“16.” 4년 전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발행된 의 표지 카피는 달랑 ‘16’이라는 숫자뿐이었습니다. 그만큼 16강을 향한 축구팬들의 열망이 컸습니다. 그것만 이뤄도 배가 부를 것 같았습니다. 당시 은 하단에 실리는 잡지 광고에 장난기가 가미된 헤드 카피를 썼습니다. “16강에 들지 못하면 제 성을 갈겠습니다.” 을 로 바꿀 수도 있다는 ‘무책임한’ 확신이었습니다. 물론 로 바꿀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팀은 8강을 넘어 4강까지 올라갔고, 그사이 은 무려 6주에 걸쳐 월드컵 관련 표지를 내보냈습니다. “장외 월드컵 100배 즐기기” “히딩크처럼!” “붉은 악마” “위대한 승리” “서울의 심장을 광장으로”…. “16”과 함께 당시 표지를 장식했던 제목들입니다.

독일월드컵 개막 직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팀의 성적이 소박하리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토고전 이후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날로 증폭되는 열기로 볼 때, 선수들이 대형사고(!)를 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 아닌 염려가 큽니다. 다시 한 번 ‘다이내믹 코리아’의 드라마가 이뤄진다면, 월드컵 표지를 몇 차례 더 내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이마트’를 다룬 이번호 표지는 아깝습니다. 월드컵에 묻혀 독자들의 눈길을 덜 받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적잖은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쇼핑을 합니다. 아닙니다. 영리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편리성을 따지고, 품질을 재고, 순간순간의 가격표에 민감합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쇼핑을 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윤리적인 소비’를 하고 계십니까? 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형할인점의 먹이사슬구조에 관해 공부하고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부할 수록 섬뜩해집니다. 길윤형 기자의 토고전 예측에 섬뜩해진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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