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서울시 배수지 계획에 맞서 성미산을 지키는 사람들… 공동육아를 기반으로 다양한 공동체운동
▣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성미산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네 뒷산이다. 성산1동과 2동, 중동, 연남동, 서교동에서 오를 수 있다. 성미산 정상까지 10여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산마루는 낮고 산등성이가 길게 뻗어 있어 산책하기가 좋다. 지난 6월30일 성미산에 올랐을 때 서울시가 배수지 공사를 위해 올 초 기습적으로 나무를 베어낸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30년짜리 아카시아 밑동에서는 새로운 나뭇가지가 돋아나고 있었다.
1994년 공동육아, 2001년 생협 설립
성미산은 지난 1993년 공원 조성 계획이 수립된 이후 하루 1천명 이상의 주민이 이용하는 생태공원이자 생태학습장이다. 작은 산이지만 녹지가 많지 않은 마포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산이다. 또 천연기념물인 소쩍새와 붉은배새매를 포함해 꾀꼬리, 박새, 오색딱따구리 등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처다. 성미산 보전을 위한 주민들의 투쟁은 오래 전부터 계속돼왔다. 2001년 7월 주민들은 산기슭의 땅을 일부 소유하고 있는 한 재단이 아파트를 건설하고, 이 계획에 맞춰 산 정상에 배수지가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배수지 계획을 알게 된 주민들은 즉시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를 만들어 2년 가까이 반대 투쟁을 벌여왔다. 주민연대는 지난해 1월 마포지역 내 여러 단체들과 연대해 ‘성미산 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주민들은 성미산을 깎아 배수지를 건설하겠다는 서울시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쳤다. 처음에는 “관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시·구의회 의원과 구청장, 국회의원, 서울시장을 찾아다니면서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이들에게 다양한 경로로 압력을 행사하는 한편, 공청회 등을 개최하고 때에 따라서는 직접 행동에 나섰다. 주민들의 반대 시위에 밀려 착공을 연기하던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가 지난 1월29일 설 연휴를 앞두고 성미산 정상 9천여평을 메우고 있던 수목 1천여 그루를 2시간 반에 걸쳐 기습적으로 벌목할 땐, 남자 어른들이 돌아가며 천막을 치고 밤새 산을 지켰다. 낮에는 주부와 어린이들이, 밤에는 남편들이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한 채 잠도 자지 않고 지켰다. 지난 3월13일에는 주민들이 포클레인 위에 올라가 진입을 막는 일도 있었다. 이런 주민들의 노력이 결국 서울시 상수도 사업본부를 설득해 지난해 10월 건설계획 유보 결정을 이끌어 성미산을 지켜낸 것이다.
성미산을 지켜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성미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종호(38) 마포연대 상임대표는 성미산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운동에서 답을 찾았다. 1994년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2001년에는 마포두레생협의 설립으로 이어지면서 생겨난 신뢰감이 성미산 지키기의 ‘일등공신’이라는 것이다. 공동육아의 발원지이다 보니 주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신감과 경험이 생겼다. 1994년 9월 성산동 지역 주민 10여명이 시작한 ‘공동육아조합’에 이어 같은 해 ‘우리어린이집’이, 95년에는 ‘날으는 어린이집’이 만들어졌다. 또 초등학생을 위한 ‘도토리 방과후교실’과 ‘풀잎새 방과후교실’이 잇달아 생겨 지금은 5곳이나 된다고 한다. 성미산은 이곳 어린아이들에겐 생태학습장이 돼왔다. 마포두레생협은 현재 700여 가구가 가입했고, 올해 1천 가구가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통 지역운동은 사건 초기엔 주민들이 벌떼처럼 나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멸되거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성미산은 달랐다. 심재옥(37·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은 “성미산 사람들은 공동육아의 경험을 기반으로 주민 스스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자신감과 경험이 남달랐다”고 회상했다. 심 의원은 “서울시의 배수지 정책이 갖고 있는 허점을 폭로하고 주민들이 생각하는 대안을 찾아냈다”며 “주민 스스로 전문성을 길러서 갈등을 줄이려는 노력도 있었다”고 말했다.
유기농 반찬에 대안학교까지
지역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벌이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붕괴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지만 성미산은 오히려 배수지 저지 투쟁을 통해 다양한 주민운동들이 생겨나 실험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유기농 반찬가게인 ‘동네부엌’과 국내 최초의 조합형 자동차 정비업체인 ‘차병원’을 세웠다. 가을쯤에 문을 여는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지역 현안 조사와 구정 감시활동을 주로 하는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도 최근에 창립했다. 김종호 대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앞으로 성미산 주변 동네에서만 유통되는 지역화폐운동과 지역미디어센터를 만들기 위한 시도도 일어날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하지만 성미산은 여전히 개발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성미산 3만여평 중에서 2만여평을 소유하고 있는 한양대 재단인 한양학원은 지난 2001년 마포구 성산1동 성미산 남쪽 8천여평 부지에 12~15층 높이의 42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기 위해 마포구청에 ‘지구단위계획안’을 제출했다. 서울시 역시 안정적 수돗물 공급을 위해 성미산 배수지 건설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성미산은 언제든지 망가질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다. 주민들은 서울시와 마포구가 성미산을 녹지공원으로 만들어 복원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들은 성미산을 단순한 동네 뒷산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인간관계를 기름지게 하는 생활공동체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15억 인조잔디 5분 만에 쑥대밭 만든 드리프트…돈은 준비됐겠지
[영상] ‘체포 명단 폭로’ 홍장원 인사에 윤석열 고개 ‘홱’…증언엔 ‘피식’
“선관위 군 투입 지시” 시인한 윤석열…“아무 일 안 일어나” 궤변
전직 HID 부대장 “노상원, 대북요원 ‘귀환 전 폭사’ 지시”
이재명, ‘허위사실 공표죄’ 선거법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구준엽 통곡에 가슴 찢어져”…눈감은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
기자 아닌 20대 자영업자…서부지법 난동 주도 ‘녹색 점퍼남’ 구속
전한길과 정반대…한국사 스타 강사 강민성 “부끄럽다”
[영상] 윤석열 ‘의원체포 지시 전화’ 증언 마친 홍장원 “토씨까지 기억”
4겹 중무장해도 속수무책…골목 노점 11곳 중 9곳 문 닫아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