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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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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도 법인가

영양댐과 밀양 송전탑, 업무 자체가 불법인 업무를 방해했다고 벌금 물리고 형사소송하는 정부
합법 안에 머물 것인가 시민 불복종할 것인가
등록 2014-02-27 13:43 수정 2020-05-03 04:27
영양댐 공사는 장파천이라는 작은 하천을 막아 엄청난 구조물을 짓는 사업이다. 실제로 가보면 이 물을 막아 어떻게 댐을 만들려는지 어리둥절해진다. 영양댐 건설 예정지에 댐 반대 펼침막이 걸려 있다.

영양댐 공사는 장파천이라는 작은 하천을 막아 엄청난 구조물을 짓는 사업이다. 실제로 가보면 이 물을 막아 어떻게 댐을 만들려는지 어리둥절해진다. 영양댐 건설 예정지에 댐 반대 펼침막이 걸려 있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주민들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피고가 되고 피의자·피고인이 되고 있다.

며칠 전 경북 영양에서 추진되고 있는 영양댐에 반대하는 주민들로부터 소식이 왔다. 지난해 2월 주민들과 용역업체 간에 벌어진 충돌 상황에 대해 용역업체가 주민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판결이 났다는 것이다. 3개 용역업체는 주민들을 상대로 두 차례에 걸쳐 5600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주민들의 방해로 작업을 못했기 때문에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 소송 내용이다. 그런데 법원에서 3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이 났다는 것이다.

민사소송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업무방해죄로 고발된 주민들은 형사재판도 받고 있다. 민사소송이든 형사재판이든 법원은 실정법의 시각에서 형식적 요건만 따지고 있다. 과연 지금 추진되는 사업이 정당한 것인지, 적법한 절차를 따르고 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너무 엉터리라 환경부도 제동

그렇다면 주민들이 마냥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영양댐 사업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업이다. 우리는 댐이라고 하면 강을 가로막아 만드는 거대한 구조물을 생각한다. 그런데 영양댐은 장파천이라는 작은 하천을 막아 높이 76m, 길이 480m의 구조물을 짓겠다고 하는 사업이다. 현장을 가보면 수량도 적고 산골짜기를 흐르는 하천이다. 어떻게 이런 곳에 댐을 만들려고 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영양댐은 너무 엉터리 사업이기 때문에 환경부가 제동을 걸기도 했다.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댐건설장기계획을 수립할 때는 환경부의 의견을 듣고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환경부는 명시적으로 ‘영양댐은 댐건설장기계획에서 제외하라’는 의견을 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영양댐은 사업 자체가 타당성이 없고 필요성도 없는 사업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이런 의견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 한다. 그래서 용역업체를 동원해 측량을 밀어붙였고, 주민들은 이에 반발해 용역업체 장비와 직원들을 막은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먼저 잘못한 쪽은 국토교통부와 한국수자원공사다. 이들은 환경영향평가법을 무시하고 위반했다. 그런데 이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반면 주민들은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고소·고발에 시달리고 있다.

영양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경남 밀양 송전탑과 관련해서도 주민들은 가처분 신청을 당했고, 연행과 구속, 경찰의 소환 통보에 시달리고 있다. 60살이 넘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난생처음으로 경찰서와 법정에 불려다니고 있다. 여기서도 업무방해죄가 적용된다. 한국전력이 하려는 송전탑 공사를 막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환경평가 때 5개소 헬기 사용이라 해놓고

그런데 최근 한전이 하고 있는 밀양 송전탑 공사가 환경영향평가법 등의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전은 2007년 밀양 송전탑 공사를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했지만, 현재 하고 있는 사업 면적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때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 경우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변경 협의를 해야 하지만, 한전은 이런 기본적인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자재를 나르기 위해 사용하는 헬기와 관련해서도 법 위반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은 당초에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 5개소에서만 헬기를 사용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30개소 이상에서 헬기를 사용했다.

이렇게 보면, 주민들이 방해했다는 한전의 업무 자체가 법을 위반한 불법 행위였던 셈이다. 그런데 불법 공사를 막은 주민들은 구속·연행되고 재판을 받는데, 불법을 저지른 한전 관계자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현장에 가보면 주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정부와 한전이 하는 일이 잘못됐고 그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당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호소는 영양·밀양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불법적으로 허가가 난 골프장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전과자가 되고,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반대하다 숱한 사람들이 구속되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은 내용·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일단 정당한 업무로 간주된다. 그것을 반대하면 공무집행방해·업무방해라는 굴레가 씌워진다.

한마디로 아무리 잘못된 사업이라도 국민은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다. 검사·판사들은 ‘국책사업’이라는 딱지만 붙으면, 그 사업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눈을 감는다. 형식적이고 앙상한 실정법 논리만 갖다댄다. 그들이 법을 배울 때 들었던 ‘정의’라는 단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한마디로 법이 잘못된 정책을 옹호하고 주민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러나 댐과 송전탑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삶터를 잃을 수는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저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법을 위반한 변호사 간디

지난 주말 간디에 관한 책을 읽었다. 만약 간디가 지금의 대한민국에 있다면, 그리고 영양과 밀양 주민들의 호소를 듣는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생각해보았다.

그 자신도 변호사 출신인 간디는 잘못된 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하는 시민 불복종운동을 벌였던 사람이다. 남아프리카에서 인도인을 차별하는 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했고, 인도로 와서는 인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영국의 악법을 위반했다. 그래서 그 자신도 수없이 감옥을 드나들었다. 간디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간디와 뜻을 같이하던 여러 인도의 변호사들은 생계를 팽개치고 시민 불복종을 실천했다. 그래서 감옥으로 간 변호사가 많았다.

참 곤혹스럽다. 현재의 사법 시스템은 정당하지 못한 국책사업을 견제하지 못한다. 주민들의 호소에 냉담하다. 정의의 관념에도 냉담하다. 기계적 법 해석으로 권력과 자본 편만 들어주고 있다. 이런 사업은 국가의 이익에도 반하는 것임을 밝혀도, 대부분의 검사·판사들은 진실을 파헤칠 의지가 없고 정부의 잘못을 지적할 용기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도 영양과 밀양의 주민들은 답답한 가슴을 뜯고 있다. 가슴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들과 연대하려는 사람들도 고민스럽다. 잘못을 보고도 ‘합법’의 틀 내에서 머물러야 하는가, 아니면 시민 불복종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분명한 점은 지금 벌어지는 불의에 침묵하면서 ‘정의’를 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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