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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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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이 행복? 언젯적 이야기?

신년 기자회견에서 3년 후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장밋빛 전망 밝힌 박근혜 대통령
무분별한 성장 추구는 불평등과 생태 위기만 심화시킬 뿐
등록 2014-01-30 14:23 수정 2020-05-03 04:27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6일 기자회견에서 3년 뒤면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민소득이 오른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6일 기자회견에서 3년 뒤면 1인당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민소득이 오른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6일 집권 2년차를 맞는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정치 전반에 걸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내세우며 국민행복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3년 뒤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서 4만달러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과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도 많아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밝혔다.

‘먹고사는’ 데 도움 안 되는 민주주의

이것은 불법 대선 개입으로 인해 정권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을, 또다시 구태의연한 ‘경제성장 논리’로 벗어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먹고사는 게 어려우니 경제성장에 집중하자는 얘기일 것이다.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불법 대선 개입 진상 규명이니 하는 것은 ‘먹고사는 것’에 도움이 안 되니 그냥 넘어가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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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택할 것으로 보이는 정책 수단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공공부문 민영화가 있다. 철도 민영화는 그 신호탄이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4대강 사업과 각종 정책 실패로 공공부문의 채무가 늘어나자, 공기업 채무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부동산 투기 조장 정책도 나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재개발·재건축 용적률을 300%로 상향 조정하기 쉽도록 해서 부동산값을 들썩이게 만들겠다는 방안을 이미 발표했다.

무분별한 통상 개방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와 교육·관광·금융·소프트웨어 등 5대 유망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의료·교육을 산업으로 보고 육성하겠다는 것은 의료·교육의 영리화와 연결된다. 의료를 대규모 자본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영역으로 만들고, 교육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 12월13일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의료법인이 자회사 설립을 통해 영리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외국계 교육법인이 이윤을 해외로 송금하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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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정책들이 낳을 결과는 무엇일까? 이런 정책들을 통해 설사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되고 4만달러가 된다고 한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1992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집권한 김영삼 정권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1992년 1인당 국민소득은 7천달러 수준이었다. 김영삼 정권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가 달성되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엄청나게 나아질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리고 1만달러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하고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를 넘어섰지만, 1997년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겪었다.

1만달러면 물질적 조건은 충족돼

그래서 박근혜 정권의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는 김영삼 정권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뿐만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내세워 추구하는 것은 결국 경제성장이다. 국내총생산(GDP)의 증가를 의미하는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GDP의 증가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IMF 직후에 감소했다가, 이후에 다시 증가해 2만4천달러에 달했다. 1만달러를 목표로 삼던 시절도 있었는데 2만4천달러가 됐으니, 이미 엄청나게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소득의 증가만큼 우리가 행복해졌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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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지표는 대한민국의 행복도가 최악의 수준임을 보여준다.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도는 OECD 국가 중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노인 자살률은 10년 사이에 3배 이상 뛰어올랐다.

반면 대한민국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 중에 대한민국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나는 국가들도 있다. 2013년 발표된 유엔 세계행복 보고서에서 코스타리카(12위), 베네수엘라(20위) 같은 중남미 국가들이 대한민국(41위)보다 행복도가 훨씬 더 높게 나타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국가들은 대한민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지만 더 행복하다.

행복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1만5천달러 정도가 되면 행복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은 충족된 것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그 뒤에는 무분별하게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을 떨어뜨리는 근본 원인이 될 수 있다.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면,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생태적 지속 가능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IMF 경제위기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늘어났지만, 재벌 대기업들에 경제력은 집중되었고 소득 격차는 벌어졌으며 비정규직은 양산되었다. 원전은 늘어났고, 농업은 붕괴 직전이며,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7위까지 올라갔다.

더구나 경제성장은 좋은 일자리도 창출하지 못할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013년 발표한 ‘산업연관표를 이용한 한국 경제구조 분석’이라는 자료를 보면, 한국의 취업유발계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취업유발계수란 10억원의 수요가 생길 때 직간접적으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소비·투자·수출을 모두 고려한 평균 취업유발계수는 2005년 15.8명에서 2011년 11.6명으로 낮아졌다. 한마디로 수출·소비·투자가 늘어나더라도 고용이 늘어나는 효과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성장 무한불행

게다가 그 일자리가 어떤 일자리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원전을 더 지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게 옳은 일일까? 오히려 경제성장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 하기보다는, OECD에서 가장 긴 편인 노동시간을 줄이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명백한 진실은 이것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은 늘어났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다. 안녕하지 못하다. 그래서 경제성장이 행복을 보장할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거짓이다. 경제성장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은 우리를 ‘각자 생존’의 정글 사회로 더 밀어넣을 뿐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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