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비만의 경계에 서 있는 내게 가장 위험한 식품은 설탕이다. 그러나 안 먹는다 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설탕에 중독 돼 있음을 깨달은 것은 8년 전쯤 우연히 한 강의를 들으면서였다.
강사는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일에 뛰어든 초등학교 선생님 이었다. 그 선생님은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됐는데, 감옥 안에서 ‘인스턴트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에 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그런가 했는데, 나 중에 생각해보니 정작 자신이 먹고 싶었던 것은 ‘커피’가 아니라 ‘설탕’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설탕’에 중독돼 있었다 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하루에 2~3잔 이상 인 스턴트 커피를 마시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서 박하사 탕 같은 것을 입에 넣는 습관도 있었다. 가만 히 생각하니 나도 설탕중독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카이사르 승리와 나폴레옹 패배의 원인?
내가 무지해서 그런 것이었지, 설탕중독 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들은 일찍부터 있 어왔다. 라는 책을 쓴 미국 언 론인 윌리엄 더프티가 대표적이다. 그도 나처 럼 설탕중독에 빠져 있었다. 설탕을 듬뿍 넣 은 커피와 콜라를 먹으면서 잔병과 두통, 그 리고 비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독하게 결심하고 설 탕을 끊는다. 강렬한 금단증상을 겪은 뒤 그 는 설탕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후 그의 몸 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면도를 하다가 나에게도 턱이 있다’는 사실 을 깨달았다고 한다. 살이 빠지고 정신도 새 롭게 충만해졌다는 것이다.
윌리엄 더프티는 설탕의 문제점에 대한 자 료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는 역사 속의 중 요한 사건을 먹거리와 연계해서 설명한다. 예 를 들어 카이사르의 로마군이 최강의 군대일 수 있었던 것은 통곡식을 가지고 다니며 먹 었기 때문이고,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쳐들 어갔다가 패배한 이유는 당시 프랑스에서 사 탕무가 대량 재배되면서 프랑스군이 설탕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읽으면, ‘아무리 설탕(Sugar) 이 안 좋아도 그렇지 그 정도일까’라는 생각 을 할 수 있다. 대한제당협회 홈페이지에 들 어가보면, ‘설탕이 건강에 안 좋다’는 얘기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자 연이 준 순수한 천연감미료, 설탕’이라는 카 피까지 쓰고 있다.
그러나 설탕이 천연감미료는 아니다. 우 리가 먹는 설탕은 대부분 정제설탕이다. 사 탕수수나 사탕무를 원료로 여러 단계의 공 정을 거쳐 정제한 것이다. 정제 과정에서 섬 유질·단백질 등 영양소의 90%는 빠져나간 다. 높은 열량만 남는다. 사탕수수 자체에는 비타민도 있고 몸에 좋은 성분도 있다지만, 그것을 정제한 설탕은 오로지 열량덩어리일 뿐이다.
설탕을 직접적으로 섭취하지 않더라도 음 료·빵·과자 같은 식품에 설탕이 다량으로 들어가 있다. 얼마 전부터 제과·제빵 학원 을 다니고 있는 딸아이는 내게 “아빠, 배워보 니까 빵과 과자 중에 설탕 범벅인 것이 많아” 라고 말한다. 설탕은 샐러드소스에도 들어 가 있고, 식당에서 먹는 반찬에도 들어가 있 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설탕에 노출돼 있다.
설탕을 많이 섭취하면 사람에게 여러 부 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직접적인 것 은 비만의 증가다. 타이의 사례가 대표적이 다. 타이에서는 정제설탕을 사람들이 쉽게 접하게 되면서 비만율이 급증하고 있다. 타 이 승려의 절반 이상이 비만이라거나, 타이 어린이의 19% 이상이 비만이고 어린이의 3 분의 1에게 당뇨병 위험이 있다는 외신 보도
도 나온다. 설탕이 들어간 음료나 음식을 많이 먹는 미국인들의 경우에도 비만·당뇨가 심각하다.
사탕수수 외에는 지을 줄 모르는 농부들우리나라에서도 비만율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설탕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통계청이 6월2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 비만율은 28.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남성까지 포함한 19살 이상 인구의 비만율은 31.9%로 그 전해보다 0.5%포인트 증가했다. 어린이·청소년 비만율도 10%대를 넘어섰다.
설탕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육체적 건강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제인 구달은 에서 조카 손주 이야기를 한다. 손주가 설탕만 먹으면 귀엽고 영리하던 아이에서 사람을 때리기까지 하는 포악한 아이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제인 구달은 설탕과 폭력의 연관관계에 대한 논문도 소개한다. 폭력의 증가와 정제설탕 섭취량의 증가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설탕을 소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설탕을 생산하는 과정에는 문제가 없을까? 사탕수수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국가는 브라질이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이 사탕수수를 많이 재배한다. 필리핀의 주된 사탕수수 재배지는 네그로스라는 섬이다. 원래 이 섬의 주민들은 쌀과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와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가 됐다. 자급하기 위해 농사를 짓던 농민들이 설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사탕수수만을 재배하는 단작(단일작물) 농장의 피고용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에 국제적으로 설탕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 섬의 농민들은 실업자 신세가 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됐다. 치열한 저항운동을 통해 농지개혁을 따내었지만, 막상 땅이 생겨도 사탕수수 외의 다른 농사를 지을 줄 몰라서 문제가 됐다. 그동안 다른 농사를 짓는 법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사실 대규모 커피·사탕수수 농장은 공장이라고 불러도 되는 곳이다. 여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다른 농사를 짓지도 못하고 지을 줄도 모른다. 그래서 국제 가격 등락에 따라 심각한 생존 위기를 겪는다. 이런 식의 농장은 환경에도 많은 부담을 준다.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숲을 불태우기도 하고 농업의 다양성을 해치며 식량 생산의 기반도 무너뜨린다.
친환경 급식을 넘어
이 정도까지 얘기하면, ‘그래서 설탕을 아예 먹지 말라는 것이냐’고 물어볼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고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하더라도 인스턴트 커피의 유혹에 가끔 넘어간다. 바깥에서 밥을 먹다보면,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나도 모르게 먹게 된다.
다만 문제를 정확하게 알자는 것이다. 일단 알면 작게나마 노력을 하게 된다. 내가 먹는 설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내 몸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알면 조금이라도 적게 먹으려 하지 않을까?
사실 더 큰 걱정은 어린이·청소년이다. 지방과 단맛에 익숙해진 어린이·청소년들은 너무 많은 설탕에 노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을 규제한다면서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특별법’이라는 법률도 제정돼 있지만, 별로 실효성이 없다. 이 법에 따르면 학교 매점 같은 곳에서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을 팔지 못하게 돼 있지만, 실태조사를 해보면 음료나 과자 중에 문제 있는 제품들이 매점에서 팔리고 있다. 근본적으로 보면 정제설탕 자체가 고열량·저영양 식품이다. 어린이·청소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올바른 식생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너무 부족하다. 무상급식·친환경급식까지는 사회적 논의가 이뤄졌지만,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