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에 있는 영리병원 ‘헬스 리소스 센터’(Health Resource Centre)가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둔부와 무릎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이 영리병원의 파산은 겉으로는 하나의 병원이 파산한 단순 사건으로 보이겠지만, 그 내막을 보면 과학적 근거를 무시한 정치적 이념이 만들어낸 일이기도 합니다.
1995년 당시 앨버타주 총리인 랠프 클라인은 정부의 의료 지출을 줄이는 대신 민간 소유의 영리병원을 도입했습니다. 강력한 보수주의자로서 독선적 전제정치 스타일로 유명하던 클라인은 다양한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런 민영화의 일환으로 공공병원 3개가 폐쇄된 뒤 민간 소유 영리병원의 도입이 허용된 것입니다. 그는 공공병원 대신에 영리병원을 도입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도 환자 대기자 명단에서 치료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답답한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는 말로 영리병원 도입의 타당성을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현란한 선전 덕분에 이 영리병원은 ‘민간 소유 병원의 횃불’로 불리며 새로운 의료 시스템에 대한 희망으로 바뀌었고, 클라인이 추진한 핵심적 의료정책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영리병원, 희망에서 절망으로
그러나 공공병원보다 비싼 수술비를 받으며 확장을 거듭한 이 영리병원이 이윤 추구를 위해 지나친 확장을 꾀하다가 파산함으로써, 현재는 환자와 지역사회 보호를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그 병원을 다시 살려야 하는 사태에 처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영리 목적의 민영화를 통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는 클라인의 정책, 즉 애초부터 과학적 근거 없이 정치적 이념으로 추진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가 될 것입니다. 비록 파산한 앨버타주의 영리병원보다 파산하지 않은 영리병원이 훨씬 더 많더라도, 이것은 영리 목적의 의료 민영화가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과 폐해를 사회에 경고하는 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입니다.
1999년 8월 (NEJM)에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습니다. 연구자들은 1989·1992·1995년 3번에 걸쳐 영리병원이 대부분인 지역과 비영리병원이 대부분인 지역의 주민 1인당 의료비 지출을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영리병원이 대부분인 지역의 주민이 의료비를 더 많이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이 반반쯤 섞인 지역을 포함해 비교해보니, 역시 영리병원 지역 주민의 의료비 지출이 가장 높고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이 섞인 지역이 중간으로 나타났으며, 비영리병원이 많은 지역 주민의 의료비 지출이 가장 낮았습니다.
이런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비영리병원이 대부분 영리병원으로 바뀐 지역과 비영리병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1989~95년 의료비 지출 변동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여기에서는 이 기간에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으로 바뀐 지역 주민의 의료비 부담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상당한 수준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한 지역 주민의 의료비 지출은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에 더해 미국 하버드대학 의대 교수들이 쓴 해당 저널의 논설에서는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3~11% 비쌀 뿐 아니라, 서비스 질을 낮춰 영리를 추구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비싸고 질 낮은 영리병원 서비스이런 연구결과는 2004년 (CMAJ)의 연구결과에서도 다시 확인됐습니다.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의료비 지출을 비교한 결과, 영리병원의 치료 비용이 비영리병원의 그것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비영리병원을 통한 의료정책이 강하게 요구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평균 324개 병원에서 환자 35만 명을 대상으로 한 8개 연구결과를 분석한 이 조사는, 영리병원에서의 비용이 비영리병원보다 약 19% 높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올해 2월 (JAMA)에 나온 브라운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중증 치매 환자에 대해 영리병원이 과잉 치료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영리병원의 치료비가 높을 뿐 아니라 이윤 추구를 위해 필요 이상의 과다한 진단과 치료를 행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합니다.
우연하게도 2002년에는 과 에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환자 사망률을 비교한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이런 연구결과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측면을 비교하는 중요한 자료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에 발표된 연구결과는 1982~95년 미국의 2만6천 개 병원에 입원한 환자 약 3800만 명을 조사한 15개 연구결과를 분석한 것으로, 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비영리병원에 입원한 환자보다 사망률이 높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영리병원이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치적 견해는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의 연구결과는 혈액투석 환자가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에서 사망한 사례를 비교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영리병원의 사망률이 비영리병원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1999년 미국 듀크대학의 연구결과나 2008년 스탠퍼드대학의 연구결과는 지역과 병원, 그리고 자료의 분석 기간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사망률에서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음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므로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서비스 질이 높다는 증거가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즉 영리병원은 지역과 병원, 그리고 조사 시기에 따라 비영리병원보다 환자 사망률이 높거나 비슷할 뿐 우월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로 지적된 것은 지역과 병원에 따라 비영리병원이 지역에 대한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않는 윤리적 문제나 비영리 운영에서 비롯된 재정 악화로 자선적 의료 활동을 축소하는 문제 등입니다. 이것이 영리병원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자명합니다.)
정부의 공공의료 서비스와 비영리 의료 서비스에 많이 의존하는 캐나다의 의료체계를 미국의 의료체계와 비교한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의료체계는 정부와 민간 의료보험 서비스가 혼합됐고, 인구의 약 16%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태이며, 전체 병원의 약 20%가 민간 소유 영리병원입니다. 나머지 80% 이상은 비영리병원과 공공병원입니다. 이런 의료체계를 바탕으로 2007년 캐나다와 미국을 비교한 체계적 조사결과는 두 가지 의료체계가 의료 서비스의 질과 큰 상관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저소득층 환자가 많은 암 종류의 치료에서는 캐나다가 우수하고, 유방암 환자의 생존율은 미국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민간 부문에 의한 의료 서비스가 많은 미국이 비영리 의료 서비스에 많이 의존하는 캐나다보다 우수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습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브랜더 존스 한국-일본 데스크팀장이 우리나라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 필요성을 강력히 권고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경쟁을 촉진하고 의료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거나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을 통해 병원 소유 구조가 바뀌어야 의료 서비스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영리병원의 원래 의미를 희석하려 ‘출자개방형 병원’이라는 엉뚱한 용어까지 등장시키며 정치적 이념으로 의료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랠프 클라인의 방법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1980년대 초 미국이 도입한 민간의료보험은 이론적으로는 ‘시장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의료 비용을 절감한다’는 논리였지만, 현실적으로 그 이전보다 의료비가 절감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리 목적에 의한 병원 민영화는 의료 비용의 상승을 가져온다는 데 대부분의 연구가 일관성 있는 결과를 냈습니다.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가정요법과 보완대체 의학으로 환자를 내모는 원인 중에 높은 의료 비용이 포함된다는 것도 일관된 연구결과입니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는 고비용 의료체계로 말미암아 오히려 과학적 근거가 결여된 가정요법 및 보완대체 의학으로 환자를 내몰면서, 한편으로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가정요법 및 보완대체 의학을 비판하는 모순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병원 민영화에 의한 영리 추구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대가와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의 몫이 되는 반면, 민영화로 인해 환자와 국민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불분명하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서 과학보다는 정치·경제 논리가 앞서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OECD의 브랜더 존스가 주장하는 내용도 역시 랠프 클라인이 과학적 근거 없이 했던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의료체계 문제는 기본적으로 과학적 증거에 기반을 두고 국민 건강에 끼치는 영향을 우선 고려해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함부로 무책임한 주장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은 정치가 아니라 사회에 책임을 다해야올해 1월 의학저널 (PLoS Medicine)에 ‘과학은 정치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제목의 편집자 논설이 실렸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근거한 과학자의 의견이 정치가에 의해 정치적으로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때 과학자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과학은 정치가 아니라 사회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 문제에서 과학은 여론이 아닌 과학적 자료가 말하는 진실성에 의존할 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국내의 의료 민영화 논란도 무책임한 정치·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과학적 고찰을 우선해야 하고, 과학자는 정치가 아닌 과학을 변호해야 하는 책임을 다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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