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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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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의 만들어진 신화


그의 논문을 다시 읽어보니…
멘델은 유전의 법칙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잡종화에 의한 신종의 출현을 연구한 것
등록 2010-04-09 20:25 수정 2020-05-03 04:26
그레고어 멘델과 1925년 미국 하버드대학 출판부가 재출간한 멘델의 <식물 잡종화에 관한 실험들>. 한겨레 자료

그레고어 멘델과 1925년 미국 하버드대학 출판부가 재출간한 멘델의 <식물 잡종화에 관한 실험들>. 한겨레 자료

우리는 주로 교과서를 통해 과학을 배운다. 유전학에 대한 우리 지식도 대부분 과학 교과서에서 얻은 것이다. 그곳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그레고어 요한 멘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멘델은 재발견되었다. 하지만 멘델 생전에 ‘멘델의 법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후대 학자들이 최초 발견을 둘러싼 정치적 싸움을 무마하기 위해 멘델을 이용했을 뿐이다. 교과서 속의 과학과, 실제로 당시 과학자들이 생각한 과학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잡종’에 미친 수도사의 끈질긴 교배 실험

멘델은 생전에 단 두 편의 논문을 남겼다. 게다가 그 논문들은 당대에는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멘델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그의 첫 번째 논문과 두 번째 논문 모두에 등장하는 ‘잡종’(hybrid)이라는 단어다. 멘델의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였는데, 육종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던 문제, 즉 ‘잡종이 새로운 안정된 종을 형성할 수 있는지’였다. 멘델은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멘델은 안정된 잡종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사실 이런 실패야말로 당대 대중이 멘델의 작업을 실패로 간주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이유다. 에른스트 피셔의 말처럼, 많은 이들이 멘델의 논문을 직접 읽지 않았다. 다윈의 은 성경처럼 읽으면서도, 멘델은 교과서에서 주어지는 지식으로 만족할 뿐이다. 따라서 멘델의 1865년 논문을 직접 살펴보는 작업은 의미 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편의 논문으로 이렇게까지 유명해진 인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논문인 (Experiments in Plant Hybridization)을 잠깐 들여다보자. 실험을 위해 그는 7개의 세트로 이뤄진 형질그룹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각 형질그룹에서 250여 개의 잡종 개체들(F1)을 얻었다. 이렇게 얻은 잡종 개체들은 부모 세대의 형질 중 하나를 닮게 되는데, 멘델은 이를 ‘우성’형질이라고 불렀다. ‘우열의 법칙’이라 알려진 멘델의 발견이다. 논문에서는 “잡종화 과정에서 전체가 전달되거나 거의 변하지 않는 형질들, 따라서 그 자체로 잡종의 형질을 나타내는 것들을 ‘우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잠복해 있는 형질은 열성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한다. 그는 ‘잡종’이라는 개념에 주목해 ‘우성’을 정의했다.

논문에선 이후에 멘델이 F1을 ‘자가수정’해서 2세대인 F2를 얻어 행한 연구를 보여준다. 이렇게 얻은 F2의 개체들은 부모의 형질 중 하나를 닮는다. 그런데 그 형질의 비율은 놀랍게도 ‘우성 대 열성’이 거의 정확하게 3 대 1로 나뉘어 나타났다. 그는 이런 실험을 몇 세대에 걸쳐 반복했고 현대 유전학에서 ‘분리의 법칙’이라 알려진 바를 선언한다. “잡종 개체들은 두 가지 다른 형질을 가진 씨앗들을 형성하는데, 이 중 절반은 다시 잡종 개체들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지속되는 형질을 지니며, 우성과 열성이 같은 비율로 나타난다.” 끈기 있고 세심한 관찰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어 멘델은 두 가지 형질을 교차 교배해보았다. 그의 세 번째 법칙인 ‘독립의 법칙’ 선언이 이런 실험을 통해 생겨났다. 멘델은 논문에서 지루하게 실험 결과들을 일일이 설명한 뒤에 이런 결과들을 두루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형질 중 하나를 A로 나타내도록 하자. 예를 들어 우성은 A, 열성은 a, 잡종은 Aa로 표시하자. 그러면 다른 두 형질의 부모 세대를 교배해 얻어지는 자손들의 형질은 A+2Aa+a로 기술할 수 있다.”

실제 멘델의 논문에 나온 모식도/멘델의 교차교배 실험에 나타난 우성과 열성 형질

실제 멘델의 논문에 나온 모식도/멘델의 교차교배 실험에 나타난 우성과 열성 형질

잡종에서만 유전 단위를 언급해

이 대목에서 멘델은 ‘A’라는 표시를 설명하기 위해 유전자가 아닌 ‘형질’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또한 현대 용어인 ‘유전자’에 대응하는 개념의 용어도 나온다. 그는 이를 ‘원소’(element)라고 했다. 멘델에게 원소는 ‘유전되는 물질의 입자’를 의미했다. 1865년의 논문에서 그는 원소라는 용어를 10번, 형질이라는 용어를 182번이나 사용했으며 우성과 열성의 쌍인 ‘잡종 Aa’를 표현할 때엔 원소 대신 형질이라는 말을 썼다. 멘델은 바로 그 형질이 유전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멘델이 실제 관찰했고 기술하려 한 것은 형질이지 유전자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멘델이 보기에, 같은 종류의 형질을 나타내는 생식세포 간의 결합은 정상적이다. 이 경우 어떤 불화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한 융합(union)이 이뤄진다. 하지만 잡종의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서로 다른 종류의 형질을 나타내는 생식세포가 결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멘델은 이렇게 생각했다.

멘델은 이질적인 두 종류의 생식세포 결합이 이뤄지려면 어떤 종류의 ‘구성’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부의 힘’을 상정했고, 이 힘 덕분에, 수정된 세포가 발생 과정을 겪는 동안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멘델의 말을 빌리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순종의 형질로 돌아감을 뜻했다. 따라서 잡종 개체들의 교배에서, 절반이 다시 순종의 형질로 돌아가게 되는 현상이 이렇게 설명될 수 있었다.

이 점이 멘델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멘델은 잡종이 순종과 서로 다른 생리적 기제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유전 단위를 언급했고 분리를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잡종’의 경우에만 해당됐다. 멘델에게 잡종은 ‘특별한 예외’였다는 말이다.

멘델에게 ‘A+2Aa+a’로 표시되는 비율은 현대 유전학에서는 ‘AA+2Aa+aa’로, 언뜻 보면 비슷하게 표시된다. 하지만 멘델이 Aa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것이 가장 손쉬운 표현법이기 때문이었다. 멘델은 잡종의 잠재적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Aa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멘델의 논문에서 나타나는 Aa라는 표현과 현대 유전학의 Aa라는 표현은 의미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내가 멘델을 격하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과학사가들과 멘델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멘델이 격하되었을 때, 멘델 지지자들은 큰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당시 논문을 통해 멘델을 바라보는 작업은 멘델을 격하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당대의 시각에서 멘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할리우드식 불행한 영웅 아닌 성실한 실험자

이미 언급되었듯이 멘델은 수백~수천 개의 ‘입자’들이 각각의 특정 ‘형질’을 구성한다고 가정했지만, 그것들이 융합할 때 ‘동질의 입자 AA, aa’의 경우에는 분리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오직 ‘이질적인 입자 Aa’의 융합에서만 분리의 법칙이 요구되었다. 멘델의 목표는 분명했다. 그는 유전의 법칙을 찾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잡종화에 의해 안정된 신종이 출현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멘델에게 유전의 법칙은 잡종에 대한 연구에서 얻어지는 부차적인 결과에 불과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만나는 멘델은 실제 사료에 나타나는 멘델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문제는 과거에 대한 지나친 포장과 폄하다. 멘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우리는 멘델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다. 멘델은 우연히 발견되었고, 당대에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성실하고 세심한 관찰자였다. 훗날 멘델이 지나치게 위대한 인물로, 역사 속에 가려진 불행한 인물로 포장된 것은 서구학자들의 할리우드식 역사기술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멘델은 불행한 영웅이 아니라, 성실한 실험과학자였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 멘델은 위대하다.

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초파리유전학

*과학자와 기자가 만드는 뉴스와 비평 사이트 scienceon.hani.co.kr에서 더 자세한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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