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태의 번역으로 만난 근대 | 오자키 고요 ]
신파의 시대 대표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끊임없는 리메이크로 한국인의 감성 장악
1969년 신상옥이 이끄는 ‘신필름’에서 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제작한다. 감독은 신상옥, 주연은 신성일과 윤정희 그리고 남궁원이 맡았다. 이 영화는 유신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국 곳곳에서 상영된다. 뿐만 아니라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연극계의 최대 히트작 중의 하나가 극단 가교의 였다. 그 이름도 유명한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 땅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지 70년이 다 된 시점에서도 의연히 그 매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도 이수일과 심순애의 ‘황금을 넘어선 숭고한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한다. 한국인의 감성을 장악해버린 이수일과 심순애의 사랑, 그렇다면 그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조선을 ‘접수’한 일본의 눈물 공세

1910년 8월29일 조선은 일본의 ‘공식적’ 식민지로 전락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조선을 ‘접수’하기가 무섭게 모든 언론을 통폐합해 라는 총독부 어용기관지로 언로를 일원화화고, 판매부수를 확장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소설을 연재한다. 독자를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판매전략 중의 하나가 연재소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의 관계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등 연재소설의 대부분이 메이지시대 일본소설의 ‘번안’이었다. 그리고 일본소설 번안 분야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약한 인물이 조중환(趙重桓)이었다.
조중환이 번안해 당시 조선의 독서계를 강타한 소설이 바로 이수일과 심순애를 주인공으로 한 (長恨夢>이다. 의 원작은 일본 메이지시대의 작가 오자키 고요(尾崎紅葉·1867∼1903)의 ‘황금 두억시니’라는 뜻의 (金色夜叉)다. 이 소설은 토쿠토미 로카의 와 함께 일본근대문학사에서 이른바 ‘언문일치’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으로 꼽힌다. 그리고 자유민권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일본이 러일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던 상황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돈과 사랑’이라는 통속소설의 전형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정치적 색채를 지워버린 이 작품은 일본대중들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을 번안한 은 1913년 5월13일부터 10월1일까지 에 연재됐으며, 같은해 유일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돼 판을 거듭한다. 몰락한 사무라이 집안의 고아로 입신출세를 꿈꾸는 명문 중학교 학생 하자마 간이치, 은행가의 아들 도미야마 다다쓰구, 간이치를 키워준 은인의 딸 미야가 각각 이수일과 김중배 그리고 심순애로 그 이름을 바꾸고, 공간적 배경도 도쿄에서 평양으로 옮긴 은 그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원작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원작에서는 도미야마와 결혼한 미야가 간이치의 용서를 받지 못하고 자결하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에서는 이수일과 심순애가 재결합함으로써 행복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원작과의 거리는 번안자의 선택과 독자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 문화적 환경과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굴절은 번역과 번안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운명’이라 해도 지나친 말을 아니다.
미디어 지원사격에 문화상품의 총아로
연재 때부터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을 유일단과 혁신단 등 각 연극단체에서 희곡으로 각색해 경쟁적으로 무대에 올린다. 소설에서 성공한 은 연극에서도 최고의 레퍼토리로 떠오른다.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신문 연재소설에서 단행본으로 그리고 연극과 영화로. 이런 게 먹히는구나 싶자 ‘문화자본가’들은 앞다투어 안방의 독자들을 시내의 무대로 불러냈다. 그 결과 기존의 독서계를 장악하고 있던 신소설과 고대소설을 역사의 뒤안길로 내몰고 일본소설을 번안한 신파소설이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기에 이른다. 조선인들은 기꺼이 그 ‘새로운 물결’에 자신들의 눈물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이러한 신파극의 유행에 대해서 은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평가한다. “조선에서는 재래로 연극이라는 것도 없었거니와, 근일에 신파연극이 나온 뒤에 그 재료는 항상 내지(일본) 소설을 모범하여 흥행하는 바, 일반인들은 그 진정한 취미를 자세히 알지 못 하더니, 요사이로 인민의 지식 정도가 전일보다 진보되므로 연극도 또한 따라서 진보함은 정한 이치라. 이제 비로소 신소설이라 하는 것을 윤색하여 연극에 올리게 됨은 본 매일신보사도 얼마큼 시세에 권고함이 있어서 이제는 소설로 연극함을 일반이 환영하게 됨은 실로 다행한 일이다.” 지식의 진보에 따라 발전하는 신파극, 그 모든 것이 어찌 ‘대일본제국’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조중환 역시 일본소설의 번안 이유를 “조선 청년 남녀의 정신적 양식을 주기 위해서 ‘조선것’으로 옮긴다”고 밝힌 바 있지 않은가.
‘돈이 될 성싶으면’ 얼마든지 재가공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문화자본’의 속성을 잘 아는 우리에게 그 수순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신문·단행본·연극 등 각종 미디어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은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며 일약 문화상품의 총아로 떠올랐다. 바야흐로 ‘신파의 시대’가 그 꽃을 활짝 피웠던 것이다. ‘신파의 시대’, 극장을 나서며 사람들은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으로 시작되는 이 연극의 주제곡을 흥얼거렸을 것이다. ‘낭만적인’ 흥에 취해, 돈의 유혹을 숭고한 사랑으로 물리친 이수일과 심순애에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면서.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련과 물질적 가치에 대항하는 사랑의 힘을 그 주제로 한다고 얘기되는 이 ‘신파’에 이어 밀려오는 무시무시한 파도의 정체를 알아챘을 리 만무하다.
당신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들
초기 식민지 시대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던 은 조선총독부기관지 가 조선인의 (무)의식을 장악하기 위해 제작한, 칼과 대포를 능가하는 대단히 효과적인 무기였다. 그 무기가 무엇을 파괴하는 데 기여했을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을 비롯한 일본 번안소설의 대대적인 성공과 아직도 그 위세가 수그러들 줄 모르는 ‘이식된 신파적’ 감수성의 진폭. 한국의 근대가 거느린 ‘식민의 그늘’이 얼마나 깊고 넓은가를 이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많지 않다. 70년대 초와 80년대 초에 그랬듯, ‘수상한 계절’이면 어김없이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좋더냐’는 이수일의 절규와 그의 옷깃을 부여잡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심순애의 모습은 끊임없이 리메이크되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하곤 했다. 21세기판 ‘이수일과 심순애’가 지금도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다시 어룽거리는 눈물에 가려 대중들은 자신의 정신과 영혼이 문드러지는 모습을 애써 피하려 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정선태 |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 46년지기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한덕수 ‘헌재 농단’
윤석열 당선무효 시 국힘 ‘400억 반환’ 파산 가능성
이젠 국민이 ‘윤석열 한남동 퇴거 날짜’까지 세어야 하나? [4월8일 뉴스뷰리핑]
윤석열의 ‘법률 집사’ 이완규, 해소되지 않은 ‘그날’의 의혹
“한덕수가 다시 광장으로 불러내”…내란청산 의지 타오른다
법조계 “한덕수 헌법재판관 지명은 월권…헌법소원 등 법적 판단 필요”
[속보] 한덕수 권한대행, 트럼프 대통령과 첫 통화
한덕수 헌법재판관 지명 ‘월권’ 파문…대행을 뽑은 국민 없다
한덕수는 왜 ‘이완규 알박기’에 동조했을까
노무현 향해 “검찰 인사권 넘겨라”…‘검사스럽다’의 원조 이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