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216B9C">[정선태의 번역과 근대/ 마르크스가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font>
조선의 지식청년들 구세주로 떠오른 마르크스 사상, 1920년대 혁명의 꿈은 어떻게 잉태되었나
1883년 3월17일에 있었던 카를 마르크스(Karl Marx·1818~83)의 장례식에는 단 11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살아서 한동안 유럽의 황제와 재상들을 벌벌 떨게 했던 독일의 사회주의자의 죽음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물론 한켠에는 그를 “노동자들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없진 않았지만, 20세기를 뒤흔든 사상가의 죽음치고는 너무나 을씨년스러웠다. 죽은 자가 말이 있을 리 없다. 그는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외딴 구석에 묻혔다. 평생 동지이자 친구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그의 시대에 가장 미움을 받고 중상을 당한 혁명적 천재라고 말하면서 “그의 이름과 업적은 많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국적도 없는 상태에서 한마디의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망명객 카를 마르크스. 그의 유산이라곤 가구 몇점과 책들, 방대한 양의 편지와 노트들뿐이었다.
도쿄 유학생 출신들의 마르크스주의 세례
“인간적인 것 가운데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경구를 가장 좋아하고, 싸우는 것을 행복이라 생각했으며, 굴복하는 것을 불행이라 생각했던 마르크스는 하이게이트 공동묘지를 떠나 세계 곳곳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20세기 역사는 마르크스의 유산”이라는 어느 전기작가의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철학과 사상은 현실 사회의 모순과 억압에 맞섰던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 여파는 아직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마르크스 사상의 세례를 받지 않은 현대의 비판적 지식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엥겔스의 ‘예언’이 빗나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에 대해 쓰지 말고 자본을 좀 모았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면서 망명지 영국의 도서관에서 인간이 낳은 가장 사악한 괴물인 자본의 전모를 파헤치는 데 골몰했던 마르크스라는 ‘유령’이 마침내 식민지 조선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의 일이다.
몇몇 동경 유학생 출신 지식인들에 의해 입소문으로 전해지던 마르크스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사회주의 사상가 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의 가 번역되면서부터다. 이 번역되지 않은 나라는 인종차별로 악명을 떨치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국밖에 없다는 말이 무슨 ‘개그’처럼 떠돌던 80년대, 번역된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일본에서 발간되어 ‘편집부’에서 번역한 ‘해설서들’을 마치 그의 사상에 이르는 물줄기라도 되는 양 탐독하곤 했다.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사상에 목말라하던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의식화’한 서적은 등 간접적으로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사상을 전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프랑스혁명 3부작 중의 하나인 과 강연록인 이 팸플릿 형태의 책자로 번역 발간되기도 했으나, 과 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주요 저작들은 끝내 번역되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적 사상을 향한 갈망을 쉽게 잠재울 수는 없었다. 이미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어 있던 조선의 지식청년들은 1920년대 중반 일본에서 간행된 을 토대로 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과 을 비롯하여 등 진보와 혁명을 표방한 잡지들이 앞을 다투어 마르크스가 낳은 사회주의 사상을 해설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시와 검열의 눈초리를 피해 어렵사리 번역하기도 했다. 예컨대 1927년 8월호에는 박형병(朴衡秉)이 번역한 ‘마르크스주의 해설’이라는 글이 실린다(박형병은 마르크스의 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을 직접 쓰기도 한 인물이다). 의 한 항목을 번역한 이 글에는 “현재 부르주아 계급에 대하여 대립하는 모든 계급 중에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진정한 혁명적 계급이다”라는 마르크스 사상의 명제가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번역 무산… 마르크스의 육성을 듣다
그리고 1928년 1월호 은 마르크스의 ‘육성’을 듣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에서 마르크스가 루트비히 쿠겔만에게 보내는 편지를 번역하여 싣는다. 번역자는 송언필(宋彦弼)이었다. 자신이 “독일에서 가장 경애하는 벗 중 한 사람”이라고 불렀던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개인적 고민뿐만 아니라 저술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사상적 고민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이와 관련하여 역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쿠겔만)가 마르크스와의 친애(親愛)에 있어서는 두말할 여지도 없거니와 마르크스의 노작(勞作)인 이 공간(公刊)되었을 때에 독일의 학자들은 일제히 침묵으로써 대함에 쿠겔만이 그 침묵을 깨치기에 무한한 애를 썼다 한다. 이것이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으며 얼마나 큰 공력이었는가는 자주 편지 속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이 편지가 마르크스의 생애를 추상(追想)하는 이에게 또 이론을 연구하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함은 선배 일리치의 말이다.” 이처럼 역자는 이 편지를 마르크스의 사상적 편력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마르크스가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어보면 그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자신의 경제적 곤경과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세계를 거센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저작 을 어떻게 구상하면서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단적인 예이다. “이러한 사정(육체적·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최초에 생각한 것과 같이 양자(兩者)의 일시 출판은 불가능함으로 우선 제1권만을 출판하게 될 듯하다. 아마 합하여 3권이 될 듯하다. 전체를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제1책 자본의 생산과정, 제2책 자본의 유통과정, 제3책 총과정의 구상, 제4책 학설사(學說史). 제1권은 처음 2책을 포괄한다. 나의 생각으로서는 제3책은 2권으로 제4책은 제3권이 될 것이라고 한다.” 편지를 통해 이런 식으로 펼쳐지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읽으면서 식민지 조선의 독자들은 을 만나고 싶은 갈망을 쉽사리 떨치지 못했을 터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들의 절박한 심정을 알았을 리 없다. 부족하긴 하지만 이러한 ‘육성’을 단서로 하여 우회로를 찾을 수밖에. 아무튼 시대의 풍랑을 헤치고 마르크스라는 이름의 ‘유령’이 식민지 조선에 상륙한 것만은 틀림없었다.
마르크스에 들린 유령들의 떠들썩한 군무
1928년 7월호에 발표된 ‘데모’라는 시에서 박팔양(朴八陽)은 이렇게 노래한다. “납덩어리같이 무겁고 괴롭던 우리들의 마음이/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가볍고도 유쾌하냐/ 5월의 하늘-그 밑에서 부르는 우리들의 노래가/ 무슨 까닭에 참으로 무슨 까닭에/ 가슴 울렁거리도록 이같이 즐겁게 들리느냐.” 먼지를 휘날리며 거리를 내달리는 시위대, 평소에 묵묵히 침묵하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가슴 벅찬 ‘해방의 노래’를 부른다. “영리하면서도 앞을 보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미래를 춤추는 이 군중의 무도(舞蹈)”를 보여주기 위해 ‘데모’에 나선 사람들은 보조를 맞추면서 부르는 노래, 이 시인은 그것을 5월의 향기로운 공기를 통하여 울려퍼지는 교향악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지켜본 제국주의의 파수견들과 이 파수견들의 눈치를 보며 벽장 속의 소지품을 불안한 마음으로 살피던 ‘착취자’들은 아마 이렇게 내뱉었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유령에 사로잡힌 철없는 놈들!” 그렇게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는 마르크스에 들린 ‘유령’들의 군무(群舞)가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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