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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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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동화집|사랑의선물] 근대의 발명 ‘어린이 신화’

등록 2003-12-18 00:00 수정 2020-05-03 04:23

[정선태의 번역으로 만난 근대 | 번역동화집 ]

식민지 시대 어린이 사로잡은 방정환의 동화 번역… 순종하는 동심을 위한 어른들의 일방적 선물

어쩌다 한번씩 아이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대형서점에 들를 때가 있다. 다른 곳은 비교적 한산한 데 비해 어린이 코너만은 언제나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 사는 아이들의 ‘놀라운 독서열기’에 새삼스레 놀라곤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고자 하는 어른들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라고 해야 옳을 터이지만, 어찌됐든 한국 사회의 과잉 교육열과 연동하여 어린이용 도서가 학습참고서와 더불어 불경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판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부모들은 적어도 책장 하나쯤은 위인전과 동화 등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채워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쉽게 떨치지 못할 것이다.

이전에도 있었던 어린이의 재발견?

그런데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처럼 돈을 아끼지 않고 사들이는 ‘어린이를 위한 책’은, ‘어린이’라는 말이 그렇듯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물론 근대 이전에도 어린아이는 존재했다. 그리고 이나 처럼 아동들을 위해 책을 편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리프 아리에스가 그의 저서 에서 밝혔듯이 어린아이를 ‘어린이’ 또는 ‘아동’으로 ‘발견’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어린이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 독자적 발달 과정을 거치는 인격체라는 자각은 17세기 이후에야 확산되기 시작했다. 결국 어린이에 대한 의식은 ‘역사적 발명품’이라는 말이다.

이 시기 도덕론자들과 교육학자 등 ‘어른들’은 어린이는 천사이자 어른의 거울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으며, 모든 어린이들에게 공주와 왕자의 이미지를 각인했다. 동시에 미숙한 어린이를 훈육하고 길들여야 할 필요성에서 이들을 ‘합법적인 감옥’인 학교에 ‘감금’한 것도 근대에 들어서면서다. 천사의 얼굴과 악동의 얼굴을 함께 지닌 어린이의 발견과 더불어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나라의 미래를 위한 투자 대상’으로 파악되기 시작하며, 요즘 우리가 보듯 어린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근대적 가족’이 성립하기에 이른다. 이제 근대적 시스템하에서 교육받은 ‘엄마와 아빠’들은 어린이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게 되고, ‘어린이 신화’와 함께 ‘어머니 신화’가 여성의 내면을 지배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어린이를 위한 책 ‘동화’가 18, 19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씌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그렇다면 근대 한국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한국 근대의 ‘어린이사(史)’를 논할 때 ‘어린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으로 알려진 소파 방정환(小波 方定煥·1899~1931)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23년 최초의 어린이 잡지라 일컫는 를 창간했으며, 1924년에는 아동문화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날’을 제정하기도 했다. ‘모든 어린이의 아버지’라는 호칭에 걸맞게 어린이를 위해 짧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터인데, 어린이를 위한 문화적 활동의 일환으로 그가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이 ‘동화’의 번역이었다. 와 등 동요를 번역하기도 했던 소파 방정환은 1922년 식민지 시대 어린이 독서계를 사로잡은 번역동화집 을 발간한다.

일본 아동문학의 선구자에게 깊은 영향

물론 방정환이 처음으로 동화를 번역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는 근대 계몽기의 잡지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려진 바 있으며, 최남선이 주간한 등 1912년과 1913년에 발간된 계몽적 어린이 신문과 잡지에 외국의 동화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가 이라는 제목하에 번역·출간되어 식민지 시대에 지속적으로 읽혔다는 점에서 방정환의 노력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도쿄 유학 당시 ‘근대 일본의 아동문학에 가장 먼저 동화의 씨앗을 뿌린 천재적인 이야기꾼’으로 유명한 이와야 사자나미(岩谷小波)의 영향을 받은 방정환은 손병희의 사위로서 천도교와 깊은 관련을 맺고 아동문학을 전파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이었다. 그리고 ‘미려한 장정’의 이 동화책은 판을 거듭하면서 식민지 시대 어린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독차지했다.

을 발간하면서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종합잡지였던 은 1922년 6월호에 ‘저무는 청년을 앗기는 동무여!! 이 책을 접하여 그립던 어린 때의 정서에 도취하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 아래 다음과 같은 광고문안을 게재한다. “본서를 읽고 누가 울지 아니할 자며, 누가 순결화되지 아니할 자이랴! 인생, 누구나 가진 영원한 아동성(兒童性)의 향상을 위하여 저작된 세계 각지의 동화 중에서, 독일의 그림,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 덴마크의 안데르센 선생 등 저명한 문호의 영필(靈筆)로 된 명작만을 추려서, 우리 형제에게 펴게 됨은 실로 우리의 한 자랑이라. …지상낙원으로서의 동화시대에 살던 아름다운 반영(反映), 또는 그리운 요람의 추모(追慕)로도, 차서(此書)는 우리에게 던져진 영원의, 빛나는 선물이로다.” 오스카 와일드, 그림 형제, 안데르센 등의 동화를 싣고 있는 이 동화집은 ‘지상낙원으로서의 동화시대’를 일깨우는 ‘빛나는 선물’로서 식민지 시대 고단한 삶을 살던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할 것이라는 말이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선사하고자 했던 이 동화집에는 아미치스의 , 페로의 , 오스카 와일드의 , 에서 뽑은 , 그림 형제의 , 안데르센의 등이 실려 있다. 힘겨운 세상을 헤치고 나가면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위안의 이야기’들이다.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우리처럼 또 자라는 불쌍한 어린 영(靈)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는 방정환의 말에 응답하듯 이 동화집은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되었으며, 그 반응 또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1922년 7월호 의 광고에 따르면 은 발간 10일 만에 초판이 매진되는 등 ‘파죽지세’의 기세로 판매되고 있었다. 바야흐로 ‘동화책 시장’이 출판계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었으며, 많은 작가들이 동화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이 입맛에 맞는 어린이 만들기라면…

다시 연말을 맞이하면서 많은 자녀들에게 ‘영혼의 존귀한 꽃묶음’을 선물하기 위해 서점으로 향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적지 않으리라. 아이들이 좋은 동화책을 많이 읽어 ‘순결한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을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의 세계를 지상낙원으로 바라보는 ‘동심주의’와 아이들을 ‘동화 속의 공주와 왕자’로 가두어두려는 ‘교훈주의’에 무비판적으로 함몰되어 있지 않은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근대가 ‘발명한’ ‘어린이 신화’를 과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어린이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자라도록 감시하는 대리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럼으로써 이 세계의 속물성과 추악성을 은폐하려는 것은 아닌지 되물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정선태 |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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