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태의 번역으로 만난 근대 | 위인전]
<font size="2" color="663300">근대 계몽기 조선 청년들이 발견한 영웅의 표상… 언론에서 그의 국가정신 배우기 독려</font>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지만 어려운 시대일수록 영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고쳐 말하는 게 옳을 성싶다. 난세일수록 험난한 이 세상을 ‘평정’할 영웅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터이니까. 한국의 근대 계몽기가 그러했다. ‘휘황한 문명’의 너울을 뒤집어쓴 제국주의가 이 땅을 덮칠 듯이 밀려오는 상황, 그 격랑을 헤쳐나갈 영웅을 향한 갈망이 처절한 울림이 되어 이 시기 담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의 논조를 빌리면, “국가는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고 인민은 고해(苦海)로 추락하고 있는 가장 위험하고 가장 비통한 시대”를 맞이하여 “국가를 태산같이 튼튼하게 하고 인민을 낙원으로 인도하여 쾌락장엄(快樂莊嚴)한 시대를 만들” 영웅을 기다리는 절절한 소원을 담아 이 시기의 지식인들은 수많은 동서고금의 위인들을 불러들인다.
누가 대한제국을 구원할 것인가
그들에게 영웅은 세계를 창조한 성신(聖神)이었으며, 세계는 영웅이 활동하는 무대였다( 1908년 1월4일치 논설 ‘영웅과 세계’). 이 시기,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제국을 구원할 영웅상을 찾는 것이 번역과 번안의 주요한 사명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영웅전기’ 또는 ‘위인전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을 위시한 ‘정복영웅’, 마치니처럼 사방팔방으로 찢긴 조국을 통일한 ‘건국영웅’, 역경을 딛고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카필드, ‘강력한 지도력’으로 후진국 프러시아를 문명대국으로 이끈 명재상 비스마르크, 잔다르크와 롤랑 부인 등 조국을 위기에서 구원한 ‘구국의 영웅’, 러시아를 계몽의 시대로 인도한 표트르 대제, 그리고 콜럼버스처럼 풍랑을 뚫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모험영웅’ 등등 수많은 영웅들이 번역과 번안을 통해 이 땅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 시대의 영웅은 누구였을까.
최초의 신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에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두 인물, 김옥련과 구완서가 등장한다. 일-청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향을 뒤로 하고 ‘이상적인 문명국가’ 미국으로 향하는 두 젊은이의 마음은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려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노예나 다름없는 조선의 여성을 교육하여 이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겠노라고 다짐하는 김옥련과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를 독일국같이 연방국을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하나로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구완서. 조선의 청년 구완서를 사로잡은 비사맥은 나폴레옹과 더불어 근대 계몽기 지식 청년들의 꿈의 표상이자 우상이었다.
당시 프로이센의 황제였던 빌헬름 1세에 의해 총리로 임명된 ‘철혈재상’(鐵血宰相) 비스마르크(Bismarck·1815~98)는 수많은 정적들을 물리치면서 자신의 강경정책을 추진했고, 의회의 반대를 뿌리치고 군비를 증강하여 덴마크·오스트리아·프랑스 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비사맥이라 불린 비스마르크, 그는 ‘피’와 ‘대포’의 힘을 빌려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고 강력한 문명국가 독일을 수립한 영웅으로서 근대 계몽기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특히,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늦게 근대적 국민국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비스마르크가 보여준 ‘탁월한 지도력’은 메이지유신(1868)과 함께 ‘국민국가 건설 프로젝트’에 총력을 기울이던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귀감이기도 했다.
개인보다 국가… 조선의 영웅 발견
실질적으로 ‘메이지 일본’을 기획하고 조종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근대 독일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그런 그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실천에 옮겼는지는 일본 근대사의 전개를 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비스마르크 이토 히로부미’. 사실, 통감부가 설치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토 히로부미는 문명국 일본을 건설한 주인공으로서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주목의 대상이었다. 비스마르크만큼은 아니었지만. 내외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던 당시 대한제국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이리하여 후진국 프러시아를 일약 문명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비스마르크는 일본과 한국에서 수많은 ‘숭배자들’을 거느리기에 이른다.
‘하늘이 내린 전투아(戰鬪兒)’ 나폴레옹과 함께 독일을 ‘축복의 세계로 이끈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근대 계몽기 조선 청년들의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개인’보다 ‘국가’나 ‘민족’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얼마나 단단하게 ‘국가정신’ 또는 ‘애국정신’으로 무장했느냐가 영웅의 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었다. 개인으로서의 권리나 자유 등은 철저하게 금기시된다. 다시 1909년 11월21일치 논설 ‘개인주의로 생을 구(求)치 말지어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신상의 안위만을 꾀하는 “개인주의는 사람을 죽이는” 사악한 것이었다. 민족경쟁의 시대, 그러니까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개인주의라니 어디 되기나 할 말인가. 이 신문의 논설진들은 말한다. 모든 사치를 끊으라고. 모든 ‘마괴’(魔魁)와도 같은 개인적 욕망을 던져버리라고. 오로지 ‘국가사상’으로 가슴을 채우라고.
이처럼 근대 계몽기에는 금욕주의로 무장하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하는 자들만이 영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으며, 비스마르크나 나폴레옹은 대표적 상징이 되어 대한제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진다. 그리고 ‘번역된 영웅’들이 등장하면서 ‘조선의 영웅’들도 새롭게 발견되기 시작한다. 광개토왕,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등등. 이들 역시 정복영웅이거나 구국의 영웅이었다. 거센 폭풍우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운 국가와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열망들이 이 영웅들에게 투사된다. 해방 뒤 전쟁과 분단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들은 의연히 ‘구국의 영웅’으로서 우리의 교과서와 ‘위인전기전집’에서 그 영향력을 잃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정복영웅말고 평화의 사도는 없었을까
19세기 영국의 저술가 토머스 칼라일은 에서 모든 사람들이 영웅이 되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는 북유럽 신화의 주인공 오딘과 이슬람의 예언자 마호메트, 시인 단테와 셰익스피어, 사상가 루소와 나폴레옹 등을 대표적 영웅으로 꼽고 있다. 그런데 칼라일의 이 책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참고했음에 틀림없는 근대 계몽기 지식인들의 눈에 정복영웅과 구국의 영웅을 제외한 다른 영웅들은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아니, 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가 기다리는 ‘영웅’이나 ‘위인’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영웅상은 누구에게서 발견할 수 있을까. ‘피’와 ‘대포’로 무장한 영웅 대신, 민족과 국가를 넘어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함께하는 삶을 꿈꾸던 영웅을 찾을 수는 없을까. 근대 계몽기에 ‘번역된 영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한국적 근대의 그늘이 참으로 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건 왜일까.
정선태 |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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