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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소년>이 내세운 ‘성육신의 표상’

등록 2003-11-20 00:00 수정 2020-05-03 04:23

[정선태의 번역으로 만난 근대 | 레프 톨스토이]

종교적 숭배에 가까운 절대적 지지 보내… 한국인들이 톨스토이에 한없이 열광하는 까닭

얼마 전, 어느 방송사의 교양오락 프로그램에서 이 ‘권장도서’로 선정되면서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1828~1910)는 다시 한번 화려하게 ‘부활’해 한국 독서계를 강타하고 있다. 공중파 방송의 영향력을 충분히 감안해야겠지만, 몇 개월이 지난 뒤까지 ‘고전주간 베스트 1위’를 놓치지 않는 톨스토이의 위력에 새삼 놀라움을 감추기 어렵다. 이 단편집뿐만 아니라 그의 3대 걸작이라 일컫는 을 비롯해 자전소설 3부작, 과 까지 300종을 웃도는 그의 저작들이 꾸준히 간행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톨스토이가 출판계와 독서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톨스토이 바람’은 우연이 아니었다

시대를 조금 거슬러 1970년대에 ‘알 만한 사람들’ 또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책꽂이를 장식했던 100권짜리 정음사판 세계문학전집에 실린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요즘의 ‘톨스토이 바람’이 전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집을 ‘편집’하는 과정에 ‘문학 권력’이 개입하게 마련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총 100권 가운데 9권이 톨스토이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작품이 한국 독자들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어떤 요소를 지닌 것으로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셰익스피어, 발자크, 도스토예프스키, 토마스 만, 로맹 롤랑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우뚝 서 있는 톨스토이!

톨스토이가 이 땅에서 그 정도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작품이 지닌 문학성이나 사상성을 들 수도 있고, 작품의 주제가 갖는 의미에 무게를 둘 수도 있을 것이며, 그의 문장이 지닌 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만으로는 그가 한국에서 그 어느 작가보다 압도적 다수의 독자를 거느린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어딘가 수상쩍다는 느낌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묻기로 하자. 왜 톨스토이인가. 취향은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할 터인데 톨스토이는 어떻게 독자들 사이에서 ‘독점적 권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비롯한 서양문학이 일본을 경유해 밀물처럼 소개·번역되기 시작한 근대의 ‘원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톨스토이가 한국에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최초의 근대적 잡지’라 일컫는 을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육당 최남선이, 나중에는 이광수와 신채호 등이 가세해 1908년 말부터 1910년 말까지 서양의 문학과 문화를 왕성하게 번역·소개했던 이 잡지에서 이들이 가장 깊은 존경을 표한 작가가 바로 톨스토이였다. 예컨대 1909년 7월호에서는 톨스토이가 깊은 병이 들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현시대 대도사(大導師) 톨스토이 선생의 교시(敎示)’라는 글을 권두에 싣는다.

최남선 · 이광수의 공로… “선생이 보시기에…”

이 글에서 필자는 톨스토이를 ‘현 시대의 최대 위인’ ‘그리스도 이후의 최대 인격’이라 극찬하면서 이렇게 그의 업적을 찬양한다. “톨스토이! 이것이 별것이 아니라 자모음을 결합한 심상(尋常)한 네 글자라. 그러나 한번 무엇하고 불러볼 때에 대강 그의 행사를 아는 사람은 다 숭고하고 장엄하여 입으로 말하기도 어렵고 붓으로 그리기도 어려운 특별한 감동이 일어나지 않을 이 없으니 그는 무슨 까닭이뇨.”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숭고하여 장엄한 감동을 주는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 선생. 이는 한국의 외국문학 수용사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경의의 표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외경의 염(念)’을 품었던 의 필자는 나 보다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을 훨씬 ‘귀중한’ ‘만세불후의 대작’으로 꼽는다.

의 톨스토이에 대한 외경에 가까운 존경은 그가 귀족적 특권을 버리고 수백만 농민들의 삶으로 돌아간 전기적 행적을 서술하는 대목에서 종교적 경배의 수준으로 격상한다. 이후 톨스토이가 보여준 삶의 행적, 즉 신으로의 귀의, 전제주의 비판과 농민에 대한 사랑 등이 의 필자를 사로잡은 결정적 이유였다. 한마디로 톨스토이는 신 앞에서 미몽에 빠진 인간을 보살피고 이끈 인도주의 정신의 화신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찬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10년 12월에 간행된 은 톨스토이의 죽음을 기리는 일종의 특집호를 꾸민다. 이 특집호에서 최남선은 ‘톨스토이 선생을 곡함’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72연에 이르는 ‘8·5조’ 장시를 게재한다. 이 추도시에서 최남선은 “그 생각이 움직이면 비단이 되고/ 그 먹똥이 떨어지면 구슬이 되니/ 손은 애써 예술인을 자랑하거늘/ 고개로만 홰홰둘음 무슨 모순가”라고 노래하면서 톨스토이 작품의 위대성과 그의 인간적 겸손을 칭송해 마지않는다.

아울러 이처럼 위대한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지 못하는 조선의 상황을 부끄러워하면서 톨스토이에 대한 ‘송구스러움’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선생의 몸은 비록 한 나라에 살았으나 그 사상과 발명은 세계의 공유라. 모든 국어가 다 선생의 저작을 자기 고중(庫中)에 역장(譯藏)함으로 크게 만족히 하는 바어늘 애달프다, 우리 조선어는 부끄럽게 그 하나도 옮겨내지 못하였도다. 종작없이 하였으나 그 단편 몇종이라도 조선에서 꽃등으로 번역한 자는 실로 우리 이니 대개 우리의 뜻은 미상불 선생의 생존 중에 그 명저를 일편이라도 우리말로 기록하여 선생께 보시게 하기를 기약하였으나 이내 드리지 못하였으니 섭섭하도다.” 뿐만 아니라 이 특집호에서는 톨스토이의 상세한 전기와 연보 그리고 그를 낳은 러시아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미안함과 송구스러움을 면하기라도 하듯 단편 (茶館) 등을 번역 게재한다.

권위의 기원을 찾아 정당성 재확인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 이후의 최대의 인격’으로 추앙받는 톨스토이가 본격적으로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서 그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한국 근대 최고의 작가 이광수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톨스토이를 정신적 스승으로 섬긴 그의 많은 글들이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적 사상에서 감화를 받은 것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따라서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고리키, 고골리, 체호프 등 기라성 같은 러시아 작가들과 함께 소개된 톨스토이가 그 어느 누구보다 폭넓게 이 땅의 독자들의 정신을 사로잡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 하나를 최남선이 주도하고 이광수가 뒷받침한 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해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다른 ‘세계적 작가’들을 능가하는 톨스토이의 열풍을 목격하면서 감수성 역시 ‘보이지 않는 권력’ 또는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권위’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 권력과 권위의 기원을 찾아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작업, 그것은 바로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일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정선태 |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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