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21일 기후소송의 2차 변론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물었다.
“유엔기후체제에 대해 묻겠습니다. 기후변화 교토의정서 발의 협정은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았습니다. 이 조약들이 국내법적으로도 법률과 동일하게 효력을 갖는다고 볼 수 있나요?”
청구인 쪽 참고인 박덕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 헌법 제95조에 따르면 헌법보다는 낮은 단계로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 것입니다. 또 파리협정의 세부 이행 규칙은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행 규칙은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절차와 양식 등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법률과 비교한다면 세부 이행 규칙은 우리 시행령 시행규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토의정서(1997년)와 파리협정(2015년)은 기후위기 현대사에서 최대 분기점으로 꼽힌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역대 최대 성과 중 하나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부터 자발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기로 약속한 것이고, 파리협정은 전체 200개 회원국이 선진국이 그러했듯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고 이를 이행하는 계획을 세워가기로 한 약속이다. 한국의 법도 파리협정으로 정치적 이행을 합의하고 약속했다는 청구인 쪽 의견이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김형두 헌법재판관이 물었다.
“박덕영 참고인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1년 독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했어요. 그 뒤 독일 의회는 2030년 감축 목표를 1990년 기준 대비 55%에서 65%로 강화하고 2040년까지의 목표를 88%로 강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탄소중립기본법(2018년 대비 2030년 40% 감축)을 보면 2031년부터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피청구인인 정부 쪽 참고인 유연철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신임 사무총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없는 게 아니라 5년마다 나중에 가서 정할지 말지 결정한다는 것이 아닌지.”
김 재판관이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5년마다 (결정)하게 되면 앞쪽에서 미리 탄소예산(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인류에게 허용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다 써버리면 더 쓸 수가 없으니 굉장히 큰일이 벌어지잖아요. 목표치를 현시점에서 설정하는 건 불가능한 건가요?”
“목표 설정은 어느 만큼 실현 가능한가, 그리고 그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동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10년 후에 기술 발전이 된다면 어느 정도 더 줄일 수도 있습니다. (중략) 대응에 대해 접근할 때 장기적이고 긴 호흡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2040년부터 목표에 매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로 간 기후위기’는 넓고 깊다. 2019~2020년 각 국가가 ‘탄소중립’ 선언을 하며 기후대응을 본격화한 배경에는 2015년 12월 파리협정을 통해 각 국가가 자발적으로 5년마다 이행 계획을 세워 유엔에 제출하도록 한 약속이 있었다. 국가가 이행 계획을 세우고 관련 법을 세우면서야 기후대응이 본격화할 수 있었고, 이견을 가진 이들 역시 그때서야 법에 호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국가별 자율이행이 원칙일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그 속도가 다름이 문제였다.
“각 국가의 몫은 계산 가능하다.”
헌재가 심리 중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사건’을 두고 청구인(아기, 청소년, 일반시민, 환경단체 등 총 255명)과 피청구인(정부)의 입장이 다른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기후위기가 부정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위기의식의 정도와 문제 해결 방식이 차이난다. 다른 여러 사회문제를 풀기 위한 과제가 기후위기 대응보다 시급하며, 관련 기술이 개발될 경우 ‘탄소 감축’ 과제가 해결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현재 상황을 위기라고 여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한) 독일보다 우리는 (기후대응의) 공백 상태가 아니다.” “헌법재판의 기능은 (편가르기가 아니라) 다양한 여러 가지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 5월21일 2차 변론일 피청구인 쪽 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 소속의 한 변호사는 말했다.
“전지구적 탄소예산의 국가 몫은 다양한 분배 방법을 사용해 계산할 수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경제적 부담은 단기적이다. 이 기간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로 인한 침해는 수십 년이 아니라 수천 년간 지속될 수 있는 항구적 피해다.” 같은 날 청구인 쪽 대리인인 ‘플랜 1.5’의 윤세종 변호사가 반박했다. 파리협정에서 합의한 국제사회의 기후대응 책임을 강조하고, 그런 선택이 법익 형량(법안의 이익을 적절히 맞춘다는 의미)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미 외국에서는 기후위기가 불러올 인권침해 책임을 ‘누군가에게’ 묻고 있었다. 인권이라는 용어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안전한 공간에 거주할 권리인 주거권, 직업 선택의 자유와 자유의지를 갖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인 노동권, 학습받을 권리인 교육권 등을 떠올려도 된다. 기후위기가 삶을 뿌리째 바꾼다는 것을 경험한 이들이 모여드는 곳이 바로 세계 각국의 법원이다.
기후위기 이슈의 중심인 유럽에서 먼저 변곡점이 되는 판결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 법조계를 자극했다. 2020년 봄 한국 청소년들이 처음으로 정부의 기후대응이 미흡하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한 해 전인 2019년 12월20일 네덜란드 대법원의 특별한 확정판결이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기후변화를 막기에 부족하다.”
소송 제기 7년 만의 승소였다. 이 판결을 보고 한국 청소년들도 용기 내 헌법소원을 냈다. “기후변화가 전세계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이를 막기 위해 네덜란드는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네덜란드 대법원 판결의 울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2023년 집계해 발표한 리포트에서는 2022년 12월 기준 65개 관할권에서 2180건의 기후 관련 소송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기후소송의 다양한 이야기는 앞으로 더 많이 들려올 것으로 보인다. 2024년 4월9일 유럽인권재판소도 스위스 노인 2천여 명(이 중 75살 이상이 3분의 1)이 건강권 등을 침해받았다며 2020년 11월 제기한 소송에 응답했다. 소 제기 3년6개월 만이었다. 스위스 정부는 이들의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소송을 제기한 단체에 8만유로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인권재판소가 누리집에 공개해둔 판결문 요약 보도자료를 보면, 법원은 “관련 국내 규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공백이 있었다. 스위스 정부가 이전에 과거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정부가 적절한 방법으로 관련 사안을 고안하고 실행하지 않았다”며 관련 법률의 위반이 있었다고 판시했다.
정부를 겨냥했던 소송이 기업을 상대로 확대되는 모습도 눈에 띈다. 2021년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에서는 세계적 석유회사 셸을 상대로 국제 환경단체 ‘지구의 벗’ 네덜란드 지부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당시 법원은 셸의 자체 배출량과 최종 배출량을 포함한 모든 활동에서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45%를 감축하라고 명령했다. 또 프랑스 기후단체들은 2023년 유로 통화권 최대 규모 은행인 비엔피(BNP)파리바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화석연료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회사들도 기후소송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재홍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4년 3월 법학논집에 논문 ‘헌법원리로서의 ‘돌봄국가원리’에 관한 연구-기후변화 소송에의 함의’를 발표해 “탄소중립 기본법은 인간 대 비인간 사이에 힘의 불균형, 국가 대 개인 사이의 힘의 불균형, 현재 세대 대 미래 세대 간의 힘의 불균형을 조정하는 법률적 성격을 가진다”며 “헌법 제10조 등에 근거할 때 힘의 불균형 상황이 심각하고 돌봄의 대상인 현재와 미래의 모든 생명의 존속, 유지, 번영에 대한 위협 정도도 크기 때문에 탄소중립에 관한 기후변화 소송은 심사 강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국 대법원도 2024년 5월30일 1, 2심 판결을 뒤집는 전향적 판결을 했다. 2021년 2월 경기 성남시 두산에너빌리티 본사 앞에 세워진 ‘DOOSAN’ 상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리며(이후 직접 세척함) 베트남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두산에너빌리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한 이은호 녹색당·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 등이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들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형사고발했고 1, 2심에서는 유죄(벌금형)가 인정됐지만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활동가들이 녹색 페인트를 칠한 것이 조형물의 효용을 떨어뜨렸다고 보기 어렵다. 재물손괴 혐의를 쉽게 인정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기업의 재산권 보호보다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법원의 판결은 변화의 동력이 된다.
“세상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최근 4∼5년의 한국 기후위기 뉴스를 지켜봐온 기자로서 이 지점이 가장 궁금했다. 2020년 이후 정부와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며 단식투쟁, 기후시위에 이어 기후소송까지 겪어낸 이은호 활동가가 답했다.
“네, 재산권을 수호하는 것만으로는 (기후위기 앞) 우리 존재, 우리 삶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법원도 인정한 것이라고 봐요.”
올가을 헌법재판소의 답은 무엇일까.
최우리 <한겨레> 기자, <지구를 쓰다가> 저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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