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호의 환상박물관 | 도서관
고대 아시리아에서 시작돼 인류 문명을 꽃피우게 만든 공간, 도서관에 대하여
일본 도쿄에서 1시간, 인구 10만의 신도시 우라야스. 디즈니랜드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이곳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도서관 때문이었다. 시로 승격하자마자 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은 한마음으로 우선 도서관부터 짓기 시작했다. 경험 없는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고 도서관 전문가를 중심으로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멋진 공공도서관을 만들었다.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책을 빌릴 수 있게끔 분관을 곳곳에 세웠고, 자료구입비만 1983년 한해에 1억282만3천엔을 지출하는 등 시 당국은 도서관에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이에 힘입어 개관 1년 만에 대출권수 100만권을 달성해 시민 1인당 한달 평균 1권을 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놀랍고도 부러운 이야기를 담은 (한울 펴냄)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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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벤치에서 죽은 바타유

도쿄에는 구가 아닌 동마다 도서관이 있는데 내가 살던, 신주쿠에서 전철로 15분 거리 아라이야구시마에의 동네 도서관만 해도 장서가 8만권에 달했다. 과학서나 전문서는 부족했어도 문학에서 인문서까지 총총하게 갖추고 있어 굳이 대학 도서관까지 가지 않아도 엔간한 도서는 다 참고할 수 있었다. 일본이 해마다 조금씩 가라앉는다는데 혹시 책 무게 때문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게 했다.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1115년부터 1077년까지 아시리아를 다스렸던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가 최초의 도서관 건립자였다고 한다. 수메르인들은 영수증, 재산목록, 혼인 서약서, 이혼 합의서, 각종 법원판결 등을 일찍부터 진흙 서자판에 새겼다. 이 밖에도 역사기록과 서사시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생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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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중엽에 아시리아를 다스렸던 아슈르바니팔 왕은 도서관의 중요성을 깨달은 최초의 지배자였다. 19세기 후반에 발견된 그의 왕실 도서관 목록에는 를 비롯한 고대 근동의 문학작품 대부분이 포함되었다. “이전에 통치했던 왕들 중에서 나처럼 필기술이 뛰어났던 이가 없었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아슈르바니팔은, 수집한 자료들의 출처를 밝혔고 종류별로 분류했으며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바로잡을 정도로 총명한 군주였다.
정치와 학문 모두에서 뛰어났던 그에게도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도서관 관리였다. 그때부터 이미 도서관 자료의 파손, 도난, 반납지연 등의 문제가 심각하여 이런 경고문을 붙이기도 했다. “이것을 다른 이의 손에 넘기는 자는 바빌론의 모든 신들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 서자판을 부서뜨리거나 물에 넣거나 내용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지르는 자는 땅과 하늘과 모든 신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무자비하고 끔찍한 저주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되어 그의 이름과 자손을 땅에서 몰아낼 것이며, 그의 살을 개의 주둥이 속에 처넣을 것이다.”
인류에게 도서관이 없었다면 문명도 문화도 없었으리라. 얼마나 많은 학자들과 작가들이 도서관 자료를 뒤적이며 희열을 느끼며 탐구와 창조에 몰두했던가. 아예 도서관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이도 있었는데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이었던 작가 보르헤스가 그러했다. 그는 이란 궁극의 도서관을 묘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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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더불어 도서관과 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금세기 가장 중요한 문학자의 한 사람”(미셀 푸코의 평)이었고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탁월한 존재이지만 악마적 사상가”(어느 일본 평론가의 말)였던 바타이유다. 그는 원래 직업이 사서였고 생애의 대부분을 파리 국립도서관과 오를레앙 도서관에서 보내면서 왕성한 저작활동을 펼쳤다. 만년에 파리 인근 오를레앙 도서관장을 지냈는데, 도서관 정원 벤치에서 잠시 쉬면서 독서의 피로를 풀던 바타이유는 그대로 쓰러져 사망했다. 10살부터 소년원을 전전했던 장 주네도 감옥에 도서관이 없었다면 글을 쓸 생각을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고전적이고 단아한 문체를 자유롭게 구사한 같은 작품들도 형무소도서관 장서의 행간 속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망명자들의 안식처

도서관은 자신의 신념 때문에 조국에서 추방된 망명자들의 안식처이자 창조의 공간기도 했다. 그래서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마르크스는 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벤야민은 를, 취리히 시립도서관에서 레닌은 를, 그리고 나치를 피해 미국에 있던 레비스트로스는 뉴욕 시립도서관에서 를 완성했다.
망명자는 아니었지만 근대공상과학소설의 선구로 불리는 쥘 베른의 작품도 도서관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각국 여행기 및 탐험기, 지리학과 박물학 관련서를 섭렵한 그는 이를 바탕으로 등을 발표했다. 그런 탓에 에 등장하는 잠수함 노틸러스호에는 1만2천권의 장서를 갖춘 사상초유의 ‘해저 도서관’이 등장하며, 네모 선장은 “내가 육지와 연결된 것은 오로지 이 책들뿐이다”라고 내뱉는다.
도서관, 내 상상의 공원이자 이성의 감옥. 나는 그곳에서 언제나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에 나오는 라틴어 구절을 되뇐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나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
참고자료
小田光雄, , 編書房 2001
Lionel Casson,
*사진들은
김장호 | 도상학연구가 alha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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