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군단
고대 불량국가 로마와 21세기의 미국… 지구적 패권 휘두르는 팍스로마나의 후예
역사는 반복하는가 현재 지구상에서 그 어느 나라도 저항하질 못할 무소불위 패권을 휘두르는 미국을 예전의 로마제국과 비교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누가 로마 군단에 맞설 수 있으랴
“최근 영국의 한 텔레비전 채널이 로마제국과 미국을 비교한 프로그램을 방영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로마제국의 완벽한 도로망과 미 국방부가 군용으로 개발한 인터넷이 전 세계에 보급돼 사용되고 있는 점이 유사하다고 한다. 당시 지중해권을 완전히 평정한 최정예 로마 군단과 전 세계 40여개국의 군사기지나 기지 사용권을 지녔고 132개국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으면서 당장이라도 전면전을 펼칠 수 있는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이 역시 비슷하다는 것이다.”( 2002년 9월30일치)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는 기원전 1세기 말에 로마 공화정을 교묘하게 무너트리고 제정(帝政)을 수립한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이른바 ‘5현제’ 시대에 이르는 약 200년간의 평화로운 시기를 말한다. 훗날 로마제국을 접수할 게르만 민족은 아직 힘이 미약했고, 현재 프랑스 지방의 갈리아족과 브리타니아(영국)의 거센 저항은 로마 군단의 샌들에 눌렸고, 아프리카의 강자 카르타고도 한니발의 패전으로 완전히 전멸당했으며, 동방의 파르티아 왕국도 슬금슬금 로마의 눈치나 보는 동맹관계 아래에 있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 세 대륙을 호령하는 로마를 감히 건드릴 자는 아무도 없었다.
로마의 힘은 곧 군사력이었고 실체는 로마 군단이었다. 총 25개 군단에 1개 군단 정원은 6천명, 정규 병력은 로마 시민으로 이루어진 군단병 15만명과 현지인 출신 보조병 15만명. 의무지원이 아닌 직업군인을 뽑는 모병제도였고, 병역개시 연령은 17살이고 복무기간은 20년, 키는 160cm에서 180cm까지, 몸무게는 기록이 없다. 만기 제대시 퇴직금으로 13년치 월급을 지급했다.
총 30만명이란 정규 병력으로 거대제국 로마를 지키기에는 요즘 보더라도 턱도 없는 규모였다. 한반도는 남북이 대치한다고 하지만 남한만 하더라고 70만 대군이고 북한은 120만이다. 그래도 그 규모로 가능했던 이유는 로마 군단의 신속한 기동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도로망 때문이었다. 제국의 수도 로마를 중심으로 배수까지 완벽한 직선 2차선 도로가 제국의 국경까지 쫙 뻗어 있었다. 약 1500m마다 거리 표지판이 있었고, 병사를 위한 숙박시설과 보급소가 곳곳에 있었다. 그래서 “로마로부터 해방을” 부르짖으며 기세 좋게 봉기를 주도한 반란군 사령관은 얼마 안 되어 사방이 온통 로마 군단으로 덮여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목숨을 걸고 그를 따르던 병사들은 슬슬 목숨을 보존할 궁리를 하여야 했다.
로마 밖의 로마 군단은 힘의 버팀목
로마 병사들은 결혼이 금지되었지만 대부분 현지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이를 묵인받았다. 로마 병사와 원주민 처녀의 결혼은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20년을 군대에서 보냈기에 고향으로 돌아가보았자 아는 이도 어디 기댈 데도 없는 처지였고, 게다가 현지인과 결혼까지 하여 낯설던 땅에 정까지 들었다. 그래서 퇴역한 로마 병사들은 대부분 퇴직금을 거머쥐고서 현지에 눌러 앉았다. 그들은 로마가 다스리던 속주(屬州)의 로마화를 선도하는 전도사가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또한 로마 군단에 들어간 원주민 보조병은 제대와 동시에 영광스러운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한번 받은 시민권은 대대손손 내려가며, 속주민이면 누구나 내야 할 수입의 10의 1을 바치는 속주세도 면제였다. 로마 밖 로마 군단의 존재는 민족융합까지 이루는 그야말로 제국의 평화를 지키는 든든한 기둥이었다.
호민관, 재무관, 법무관을 거쳐 당시 황제 바로 밑의 집정관과 속주의 총독까지 지낸 타키투스는 권력의 정상까지 오른 정치가였지만 로마 제정에 비판적인 역사가이자 지식인이었다. 그의 저서에는 고대의 불량국가 로마의 진실과 이면을 폭로하는 내용이 나온다.
로마의 속주민이 된 동족에게 힘을 합쳐 로마 군단을 습격하자고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땅에 주둔해 있는 로마 병사들 중에는 우리와 인척관계를 맺은 사람이 적지 않다. 이곳 여자를 아내로 삼은 사람도 있고, 이곳 여자를 어머니로 둔 군단병도 있다. 그들은 모두 우리 땅도 로마 본국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난 당신들의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 어찌 인간이 제 아버지를, 형제를, 자식을 죽일 수 있겠는가.”(시오노 나나미, 6권)
“그들은 사막을 만들어 평화라 부른다”
타키투스는 팍스로마나, 로마제국의 평화를 위하여 독립을 잃고 자신의 땅을 파괴당한 원주민들이 직면한 현실을 고발하며, 로마인들은 “사막을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고 비판했다.
팍스로마나에 빗대어 부르는 ‘팍스아메리카나’. 우리 삶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세계는 평화롭건만 두 여중생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평화롭지 못하다. 돌이켜보건대 역사는 로마 군단이 주둔하던 히스파니아(지금의 에스파니아), 브리타니아, 갈리아를 로마의 속주, 즉 식민지라 부른다.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의 우리를 후대의 역사가가 뭐라 부를지 자못 궁금하다.
*도상자료: John Warry, , University of Oklahoma Press, 1995)
도상학 연구가 alhaji@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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