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
몸과 영혼에 절정의 행복감 안겨주는 식사… 눈과 혀로 즐기는 문화로 자리잡은 맛
“식탁의 쾌락은 연령과 조건을 불문하고 국가와 시대를 넘어선다. 다른 모든 쾌락과 결합할 수 있으며, 다른 모든 쾌락이 사라진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우리를 위로해준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미식가인 브리야 사바랭(1775∼1826)은, 식도락에 관한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그의 저서 에서 그렇게 말했다.
굶주린 배와 허기진 맘을 위로한다
요새 누구를 만나든지 주된 화젯거리는 음식과 요리다. 맛에 관한 한 세대 차도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없어 보인다. 차려주는 밥상만 받던 남자들이 요리를 취미로 삼기 시작했고, 요리를 소재로 한 출판물과 영화도 넘쳐난다. 음식은 더 이상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눈과 혀로 즐기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그렇지만 식도락은 근대까지만 해도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먼 취향이었고 권력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중국을 손에 쥐고 흔들던 여걸 서태후의 저녁 식탁에는 주식만 해도 50여종이 올라왔고, 그 밖에 나오는 요리도 120여종이나 되었다. 사용된 요리재료로 날마다 500근의 고기와 100여 마리의 닭과 오리가 쓰였다. 전속 요리사는 130여명, 매끼 시중들던 이들은 450여명에 이르렀다.
을 지은 알렉상드르 뒤마도 책에서 벌어들인 인세수입의 태반을 먹고 마시는 데 탕진해 결국 이란 책을 한권 남기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같은 시대 작가 발자크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집필에 몰두할 때는 하루 18시간을 100잔의 커피와 간단한 요기로 버티다, 탈고와 동시에 고급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그는 엄청난 대식가여서 한번에 생굴 100개, 가자미 1마리, 새끼양 등심 10접시, 새끼오리 1마리, 산새구이 2마리, 배 12개를 포도주와 커피를 곁들여 먹어치웠다.
미식가들은 저마다 최고로 꼽는 요리가 있게 마련인데 프랑스 요리 ‘푸아그라’(거위간)는 최고의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맛에 영양학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요리로 알려졌는데, 하나의 ‘푸아그라’가 식탁에 올려지는 과정은 정말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거위를 어둡고 좁은 밀실에 가두고, 주둥이에 30cm 길이의 호스를 박아 몇주에 걸쳐 옥수수나 콩 같은 평소 거위가 몹시 싫어해 먹지 않는 곡물류를 억지로 먹인다. 이러면 거위는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뚱뚱해지고 거위의 간도 기형적으로 커지는데 이를 요리에 쓴다.
식탁을 위한 희생… 황제의 밥상 만한전석
인류의 역사상 가장 호사스러운 요리는 청나라 황제들의 밥상인 ‘만한전석’일 것이다. 청나라 여섯 번째 황제인 건륭제는 중국 각지를 순회할 때마다 지방의 특색 있는 요리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한데 모을 생각을 해 각지 요리사를 부르고 진기한 음식재료를 구하도록 했다. 이렇게 탄생한 ‘만한전석’에는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곰 오른쪽 앞발바닥, 낙타 혹, 원숭이 골과 입술, 표범의 태아, 백조, 공작, 거북, 대나무 벌레, 해삼 등으로 요리한 424종의 산해진미가 차려졌다. 이를 먹는 데만도 사흘이나 걸렸다. 아직도 베이징에 가면 ‘만한전석’을 맛볼 수 있다는데 한달 전에 예약해야 하며, 1인분에 200여만원이다. 예전과 달리 먹는 기간은 이틀이며, 요리도 108가지로 줄었다.
앞에서 언급한 브리야 사바랭은 식도락을 가족의 기원과 같이 보았다. 나무열매나 따먹던 인류가 사냥을 시작하면서 잡은 짐승을 요리해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먹기 시작했다. 언어가 생겨나고 발달한 것도 식사 도중이었다. 식사 동안이나 끝난 뒤에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 간의 신뢰와 애정을 쌓았다. 또한 먼 곳에서 온 이를 불러 같이 식사를 하면서 다른 고장의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히 먹는 즐거움만 추구하던 것에서 식사에 따르는 상황·장소·사물·사람이란 여러 조건이 결부돼 인간의 먹는 행위에는 사회적 기능도 생겼다. 이와 함께 식사의 쾌락도 느끼게 되었으니 진화과정에서 상실한 동물적 감각과 이에 따르던 쾌락을 보상받았다.
우리는 좋은 식사를 한 뒤에는 몸과 영혼에 특별한 행복감을 누린다. 신체적으로는 두뇌활동이 활발해지고, 표정이 밝아지고 혈색이 좋아지며, 눈은 빛나고 부드러운 열기가 온몸에 퍼진다. 이에 따라 이성은 날카로워지고 상상력은 활개를 치며, 단어가 쏟아져 대화가 풍부해진다. 뛰어난 작가나 예술가 가운데 미식가가 많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당신의 미각이 되살아나고 있는가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도 식사의 쾌락과 겹쳐 있다. 한적한 대서양의 어촌 생장 드뤼와 그곳에서 먹은 생선요리. 눈과 귀를 때리는 시퍼런 파도, 마침 읽고 있던 헤밍웨이의 소설이 가져다주는 감미로움, 따스한 봄날의 햇빛이 주는 포근함, 그리고 향기로운 소스가 코를 자극하는 생선모둠과 달콤한 백포도주. 혼자서는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을 벗들에게 보내는 엽서에 실었다. 덕분에 여행에서 돌아온 뒤 원망하는 벗들을 위로하느라 지갑이 얇아졌다.
그렇게 먹느라고 이국의 낯선 도시를 방황했고, 특별히 먹기 위한 돈을 위해 늘 굶주린 어설픈 식도락가인 내가 거리에서 돈으로도 얻지 못하는 최고의 맛이 하나 있다. 어머니의 냉잇국이다. 상큼한 냉이와 구수한 된장은 흔한 재료겠지만, 그 안에 들어간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며 내게 진정한 쾌락을 맛보게 한다. 식도락은 어쩌면 어머니가 물려준 젖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숨은 욕망이 아닐는지.
김장호 ㅣ도상학연구가 alhaji@hanmail.net
♣참고도상과 자료
Alexandre Dumas,
Brillat-Sava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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