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다른 나를 드러내는 마음 속의 판도라 상자… 익명성에 생기 넣지만 내면의 혼란 불러
우리말의 외래어는 ‘빵’ 같이 포르투갈 말에서 유래한 것부터 ‘나락’, ‘보살’, ‘찰나’ 같은 범어(梵語·산스크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범어는 불교 전래와 함께 들어온 것이 대부분인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유행어가 된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아바타(avatar)다.
가상 생명체로 네트워크 활보
아바타란, 원래 분신(分身) 또는 화신(化身)이란 뜻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뜻한다. 아바타가 사이버 공간에 처음 등장한 것은 불과 2년 전으로 커뮤니티 사이트 세이클럽에서였다. 처음에는 디지털 캐릭터에 옷을 입히고 머리를 꾸미는 어릴 적 인형놀이 같은 게 될 리가 있겠느냐고 주위에서 회의적인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이 업체는 지난해 아바타로 무려 14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니 애들 장난은 아닐 성싶다. 게다가 사이버 공간을 활보하는 가상 생명체 수가 1천만개를 넘을 것이라니 정말 놀랍기만 하다.
아바타의 등장으로 사이버 공간은 개벽했다. 예전의 네티즌들은 아이디라는,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는 익명성으로 가상공간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유령이름 같은 아이디에도 작명을 통해 나름대로의 개성을 불어넣으려 했고, ^^; ㅜ.ㅜ 등의 이모티콘을 써서 무미건조한 문자채팅에 활기를 더했다. 하지만 기호나 단어 하나에 자신의 개성을 담고자 한 것은 애초 무리였다. 현실에서와 같이 웃고 싶을 때 웃고, 싫을 때 찡그리는 표정과 더불어 멋진 옷을 입고 사이버 공간을 활보하고 싶은 욕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아바타는 그런 욕망의 구현체이자 나와 모니터 너머 사이버 공간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로 자리잡았다.
사이버 장난감이나 닷컴 업체의 짭짤한 수입원 정도로 여긴 아바타가 최근에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고, ‘인터넷 심리학’이란 새로운 분야가 등장할 정도로 현실의 자아와 아바타를 구분하지 못하는 극단적 현상까지 초래했다.
아바타 옷값으로 한달에 5만∼6만원이나 나가고, 아바타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결혼도 하고 가족도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날씨가 더워지면 아바타를 위한 에어컨과 냉장고가 불티나게 팔리고, 초호화유람선을 타고 피서를 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세상이 따분하기만 한 신세대들의 심심풀이 수단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1450원을 주고 산 냉장고에 사이버 머니로 구입한 음료를 가득 채웠다가 손님 아바타가 놀러오면 대접하는 등의 행위는 과소비라니, 철없는 짓이라니 비난하기 전에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아바타에 빠져 다중인격 장애 겪기도
우리가 정작 주목해야 할 것은 아바타 사용자들이 다중자아의 심리상태를 겪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현실의 나와 가상공간의 아바타가 자리바꿈을 해 “컴퓨터를 켜면 자신은 잠에서 깨어난 아바타가 되는” 일까지 일어난다. 24개의 다중인격이 있는 장애인 이야기를 다룬 이란 책에서 보듯 우리의 자아란 고요한 호수에 떠 있는 조그만 섬 같은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또 다른 미지의 내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화산 같은 존재다. 아바타란 어쩌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우리 마음속의 판도라 상자인지 모른다.
아바타란 말이 생겨난 인도 신화는, 앞으로 우리가 사이버 공간에서 마음대로 변신이 가능한 아바타로 인해 겪게 될 일을 예언한다. 평소 얌전하게 남편 시바신을 공경한 사티는 남편이 친정 아버지의 연회 참석을 허락하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선 사티의 눈이 불길처럼 타오르는가 싶더니 그녀의 머리 주변에 후광이 생기고, 아름다운 처녀 칸야쿠마리가 돼서 그에게 다가왔다. 다음 순간, 전염병을 옮기는 공포의 여신 시탈라로 변했다. 시바는 놀라 뒷걸음질쳤다. 또다시 모든 것들에게 양분을 주는 땅의 어머니 가우리로 변신하는가 싶더니, 인간의 따뜻하고 신선한 피를 희생의 제물로 거둬가는 파괴의 신 칼리로 변했다. 그러고 나서 두루가로, 또 하늘과 산의 여왕인 트리푸라순다리가 되기도 하며, 그 밖에도 수천개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며 시바는 두려움에 소리치며 용서해주길 빌었다”라고 한다.
아바타는 자아인가 타자인가
사이버 공간에서 우리는 수천개 변신이 가능한 힌두교의 신이 된다. 성(性)과 나이, 성격….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꿔본다. 그리고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타자(아바타)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기억을 쌓아나간다. 사이버 공간 속 관계와 기억들은 영화 의 주인공들처럼 현실의 그것들을 방해하기도 한다(영화의 남과 여는 현실 속에서 계속 충돌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는 그들의 아바타는 마냥 행복하다. 그런 나(아바타)는 내가 아니란 말인가, 감정 또한 허상인가. 사이버 시대의 연애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모니터 속의 아바타, 거울 속의 또 다른 나를 보며 에 나오는 한 구절을 떠올린다.
‘세상을 떠다니는 환영이여,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는
내 영혼이 가는 곳을 알려주오. ’
도상학연구가 alha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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