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의 작품을 그대로 베낀 ‘가짜예술’… 감정가들도 결론 못 내린 희대의 위작 소동
“1997년 5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溪岸圖)를 구입했다고 발표하자 는 ‘중국 초기 산수화를 대표하는 3대 걸작의 하나’라며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가져다주는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찬물을 끼얹는 속보가 전해졌다. 가 가 위작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논쟁이 불거지자 1999년 12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작품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심포지엄까지 개최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양쪽이 일치한 점이 하나 있었다. 야말로 의심할 여지 없는 걸작이라는 것. 한쪽은 10세기 화가 동원(董源)의 진품임을, 다른 쪽은 20세기 화가 장다첸(張大千·1899∼1983)의 위작임을 내세우며 상찬했다.”(일본의 예술전문잡지 2002년 5월치)
장다첸은 누구인가. 20세기 중국회화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5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다는 화인으로 꼽히며, ‘동장서필’(東張西畢·피카소의 한자명이 畢加索)이라 하여 피카소와 비견하던 그였는데 난데없는 위작 소동이라니! 새삼 위작이란 게 지리시간에 하듯 원본에 종이를 대고 비스듬하게 윤곽선을 그린 다음 색깔 입히는 아이들 장난 같은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긴 이중섭은 팔할이 가짜, 박수근은 사할이 가짜라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는 지경이다.
위작은 진품보다 작품성 떨어질까
범인을 잡는 형사가 있듯 진품과 위작을 가리는 감정인이 있다. 20세기 초에 활약한 미국의 미술품 감정인 버나드 베렌슨은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감정을 시작하자마자 배가 갑자기 아프고 귀가 울리는 그림이 있어. 그러면 그 그림은 100% 위작이야.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유명 미술관에 속해 있는 감정가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척 보는 순간 무언가 꺼림칙한 느낌이 오면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 구입시 체크리스트 가운데 첫 번째 항목도 “새로운 작품을 대하는 순간 맨 처음 마음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라!”다. 물론 ‘좋다’라는 식의 진부한 말은 아니고, ‘저 여인의 이마가 귀족부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데’ 등의 어색한 부분을 세밀하게 집어내는 감이 위작 판단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에 유명한 위작 사건이 있었는데 피해자는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인 작가 앙드레 말로. 어떤 이가 말로에게 접근해 검붉은 핏자국이 묻은, 고대의 것으로 보이는 면 스카프를 보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임종 직전 토해낸 피를 닦은 것”이란 감언으로 꾀었다. 일순간 흥분한 말로는 루브르 미술관으로 하여금 당장 구입하도록
했고, 가격으로 100만달러가 넘는 돈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이었는지 흥정 도중 사기꾼은 손수건 한장 남기지 않고 갑자기 사라져 거래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어음과 구권화폐 사기사건 등으로 1980년대부터 신문 사회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장영자씨에게도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순신 장군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렸다는 ‘충무공혈죽도’를 천하의 장영자도 깜박 속아 구입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17세기 프랑스 화가 라투르(1593∼1652)의 란 그림이 있다. 여기에는 군복을 멋지게 빼입은 젊은 남자를 중심으로 예언의 대가로 금화 한닢을 얻은 점쟁이 노파와, 기묘한 손짓과 눈짓을 하는 행실이 수상한 세명의 여인이 등장하는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분홍색과 황색, 연어의 속살색 등으로 채색한 등장인물들의 다채로운 의상은 마치 패션잡지를 보는 것 같다. 1960년대 당시로는 파격적인 가격인 50만달러로 프랑스의 어느 화상으로부터 구입했다고 알려졌는데, 문제의 앙드레 말로 장관이 이 사실에 격분해 수출을 허가한 담당자를 좌천했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장영자도 속고 미술관도 당하고
그런데 그림 오른쪽 위에 ‘이 그림은 진품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파격적인 작가 사인이 왠지 어색하다. 또한 이 그림이 위작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의상이다. 노파의 옷은 16세기 네덜란드풍이며 남자의 옷도 화가가 살았던 17세기 전반의 것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란 미술사가는 남자의 머리가 아무래도 요즘 하는 파마와 비슷하고, 화장술과 눈썹 정리도 패션모델 같다는 점에 착안해 마침내 1940년대 패션잡지에서 똑 닮은 사진을 찾아냈다. 그리고 결정적 증거는 왼쪽에서 두 번째 여인의 레이스 깃에 낙서처럼 적혀 있는 ‘merde’, 즉 ‘똥’이란 프랑스 단어였다. 17세기 그림이 아닌 현대의 누가 장난치듯 그린 위작이란 결론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쪽은 이에 대하여 부인하는 자세로 일관했을뿐더러 문제가 된 ‘똥’이란 단어도 그림 수복을 명목으로 삭제하는 정말 뭐 같은 조치를 취했다.
거장들의 데생을 무려 500점 이상 위조한 천재적인 위작자 에릭 헤본. 그는 자서전에서 프랑스 화가 코로(1776∼1875)의 원작(, 하버드대학 포그 미술관 소장)과 함께 자신의 위작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진위를 가려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작자가 주저하며 그린 선과, 작가가 확신을 가지고 힘껏 내려 그은 선을 구별하라”고 조언한다. 무얼 베낄 필요가 없는 진품에는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Thomas Hoving, <false impressions: the hunt of big-time art fakes simon schuster>, 1996
<i>도상학연구가 alhaji@hanmail.ne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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