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호의 환상박물관/ 마야문자
10세기 초에 사라진 문명의 흔적 해독… 정녕 그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중앙아메리카 정글 속에서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우다 갑자기 사라진 고대 마야. 그들은 청동기와 철기를 사용할 줄 몰랐고, 인신공희의 악습을 떨쳐버리지 못했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피라미드를 세웠고, 천체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찰해 1천만년이나 계산한 달력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마야문자’로 불리는 아름다운 문자가 있어서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조각으로 새겨 후대에 남겼다.
악마의 부적이라 불린 그림문자들
마야문명은 야만적인 백인들, 에스파냐 침략자들이 들어오기 600년 전에 전성시대가 이미 끝났다. 현재의 과테말라 페텐 지방을 중심으로 한 열대우림 지역(마야 고고학에서는 ‘중남부 저지대’라 함)에서 무려 1천년 가까이 번영해, 8세기 후반의 전성기 당시에는 60∼70개의 도시들이 번창했다. 그러나 9세기에서 1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문명의 빛은 갑자기 꺼졌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껏 여러 설만 난무할 뿐이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문명의 쇠락만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문자도 그랬다. 동물과 인간, 신체부위와 일상생활 속의 물건을 형상화한 그림문자들이 분명 무엇을 말하고 있건만 사람들은 그냥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야문명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백인 침략자들에게 원주민 문명의 흔적이란 두렵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이지 연구하거나 보존할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톨릭 사제들은 ‘마야문자’를 아예 악마의 부적이라 단정하고 불사르는 등 파괴를 일삼아 해석의 근거가 될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다.
1863년의 어느 날, 마드리드에 있는 에스파냐 왕립역사학회의 고문서 보관실에서 디에고 데 란다가 쓴 란 책이 발견되었다. 지은이는 16세기 무렵 유카탄 반도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가톨릭 사제였고, 책 속에는 ‘마야문자’와 라틴문자를 서로 대조한 일람표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마야의 전통문화에 정통한 귀족들이 남아 있어 그들의 협력을 받아 작성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란다의 알파벳’이라 불리게 된 이 자료의 발견은 ‘마야문자’ 해독에 실마리를 던졌다. 이전까지는 “중국 한자와 같은 뜻글자다”, “아니다. 비슷한 중복되는 문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알파벳 같은 게 있고 소리글자다”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다.
소련 학계의 성과 “뜻과 소리의 혼합문자”
그런데 ‘란다의 알파벳’을 도구로 고대 마야문명의 신비를 일순간에 벗겨낼 것 같이 덤벼들던 학자들은 말꼬리를 흐리기 시작했다. 신들의 이름 몇 가지와 ‘개’, ‘칠면조’, ‘집’ 등과 같은 기본적인 단어 몇 가지를 제외하곤 새로운 해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마야문자를 해독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답보상태였던 ‘마야문자’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엉뚱하게도 옛 소련의 언어학계였다. 1952년, 유리 크노로조프는 ‘중앙 아메리카의 표기법’이란 논문을 통해 ‘마야문자’가 뜻글자도 소리글자도 아닌 그 둘이 섞인 혼합문자체계라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말이나 일본어에서 한자를 읽을 때의 방식을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犬’이란 한자를 ‘견’이라 읽지만 ‘개’라고도 말하듯이 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재규어’에 해당하는 마야어는 ‘바람’(BALAM)인데 이를 ‘마야문자’로 표기할 때는 재규어의 얼굴을 형상한 뜻글자로 나타내기도 하고(A), 여기에 음성보조기호를 붙여서 나타내는데(B, C, D) 이것은 한자와 가나를 섞어 표기하는 일본어와 흡사하다. 그리고 그냥 ‘바람’이란 소리글자로 적기도 한다(E).
‘마야문자’에는 뜻은 전혀 다르나 단지 소리가 같다는 이유로 문장 속에서 바꾸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뱀’, ‘4’, ‘하늘’ 등을 마야어에서는 모두 ‘칸’이라 하는데, ‘하늘이 맑다’라는 문장에서 ‘하늘’과 ‘4’가 같은 소리라는 이유로 ‘4가 맑다’라고 적기도 한다. 게다가 ‘검은 하늘’이란 말도 ‘검은 뱀’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 연구자들의 골치를 썩인다. 그리고 마야어의 어순은 특이하게도 ‘동사-목적어-주어’로 되어 있으며, 적는 방법도 한문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좌우 단어가 짝을 이루어 두줄로 내려 읽는다.
그들이 사라진 이유를 밝혀낼 건가
1970년부터 ‘마야문자’ 해독과 관련한 비문학(碑文學) 분야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9살 때 발굴단원인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마야문자’를 해독해 세상을 놀라게 한 데이비드 스튜어트 같은 천재적 연구자들의 눈부신 성과에 힘입어 800에서 1천여개의 문자소(文字素)로 이루어진 ‘마야문자’의 80% 정도를 해독할 수 있다는 학계의 장담까지 나오고 있다.
‘마야문자’를 통해 우리는 어쩌면 문명의 영화로운 한순간과 더불어 종말의 섬쩍지근한 이유도 읽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고대 마야의 예언서라 전해지는 의 한 구절에서 느끼는 불길한 행간을 채울 수 있을지도…. “어느 날 먼지가 땅을 덮고, 질병이 세상에 가득하고, 약탈자가 이 땅을 빼앗고, 나뭇가지가 마르고, 전쟁의 깃발이 휘날려. 사람들은 숲 깊숙이 흩어지리라.”
김장호 ㅣ도상학연구가 alhaji@hanmail.net
참고문헌:
Michael D. Coe, <the maya>, Thames & Hudson, 1993.
David Adamson, <the ruins of time four and a half centuries conquest discovery among the maya>, Unwin Hyman, 1975.
나카무라 세이치, , 뉴턴프레스, 1999.
송영복, , 외대어문논총 제9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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