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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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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모험담? 집어치워!

등록 2003-03-07 00:00 수정 2020-05-03 04:23

언더그라운드 만화

디즈니 캐릭터에 대한 안티테제 ‘프리츠 더 캣’… 작가들의 삶의 태도까지 남다를 것을 요구

순정만화의 열성독자인 아내는 주말이나 한가한 날이면 만화를 열댓권씩 빌려본다. 그 탓에 나도 초등학교 이후 오랜만에 만화를 손에 쥐게 되었다. 빌려다놓은 순정만화를 힐끗하다가 요즘은 만화방에서 ‘코믹스’로 분류하는 일본만화를 주로 빌려보는데, 같은 킬러물이나 등 관심분야에 대한 것을 집중적으로 본다. 운명적으로 또는 직업적으로 활자 책을 읽어야 하기에 독서에 방해되는 텔레비전 없이 사는 나로서는, 소파에 널브러져 만화를 달디달게 보는 시간이 유일한 오락이자 행복한 휴식이다.

68년 가 시초

만화는 일단 재미있다. 그림과 말 양쪽에서 구사할 수 있는 형식이 다양한데다가, 이렇게 하라는 어떤 작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무한정의 표현이 가능해 더 그렇다. 또한 만화의 특징을 들자면 이렇다. “다른 고상한 장르들이 각종의 규칙과 관습에 얽매여 그냥 방치해둘 수밖에 없는 모든 양상을 골고루 다 표현할 수 있다. 즉, 사회적 환경, 시대의 풍속묘사, 일상생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인물의 소개 등이 그것이다.”(미셸 레몽이 쓴 에 나오는 18세기 소설에 대한 언급이지만 만화에 대해 이 이상의 적절한 표현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보다는 심각성이 느껴지고,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아닌 급진적 어른을 대상으로 하고, 유머란 어느 한구석에도 없고 비틂과 비꼼이 가득하고, 흥미진진한 모험담은 걷어차고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불만을 담은 욕설이 난무하는 만화도 있다. 1960년대 말 히피들의 천국이자 반전·반문화운동의 주요거점이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그것이다. 68년 창간한 라는 만화잡지가 발원지였는데, 잡지의 발행인·편집자·연재작가 등 세 몫을 도맡은 인물이 로버트 크럼이었다.

그가 만든 대표적인 캐릭터 ‘프리츠 더 캣’은 한 시대의 상징 같은 존재다. “부르주아 계급의 낙오자이자 도덕적으로 파산한 지식인이며 정치적 각성단계는 실질적으로 제로”인 주인공은,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는 무직자 신세. 아내에게 밥이나 축내는 ‘구더기’라는 욕을 먹으며 집에서 쫓겨난다. 거리를 방황하다가 친구를 만나 그의 꼬임으로, 도시의 교량과 발전소를 폭파시켜 혼란을 조장해 체제전복을 꾀하는 급진혁명단체에 합류한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를 차에 싣고 가다 경찰의 불신검문으로 체포되었다가 보석금으로 풀려나고 다시 거리를 방황한다.

이 껄렁한 고양이는 예쁘고 착하고 명랑한 디즈니 캐릭터들에 대한 안티테제다. ‘프리츠 더 캣’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고,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작가 크럼은 도리어 이 사실을 혐오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거만해지고 속물이 된 주인공이 살해되는 장면을 집어넣어 시리즈를 끝장냈다(1972년 작 에서). 이는 미키마우스를 만화 속에서 자살하게 한 것과 같은데, 저작권법에 ‘미키마우스 법’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디즈니의 끈질긴 공작으로 보호기간이 점점 늘어나 얼마 전에 연방대법원에서 최장 95년까지 보장받았다. 순수성을 위해 자본의 종속을 거부하는 언더그라운드 만화는 내용과 형식뿐 아니라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까지 남다를 것을 요구한다.

(1977년 작)라는 작품은 언더그라운드 정신에 대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을 엿보게 한다. 기자의 입을 빌려 자신에게 묻는다. “60년대 후반 우리 모두 치열했던 시절, 당신의 훌륭했던 작품에 비해 최근 것들은 비전이 없어 보이지 않는가 한때의 폼이었나 권위와 권력에 반기를 든 당신이 요즘은 권위적이고 권력지향적이지 않는가 꼴리는 대로 창작하는 데에 어떤 사회적 가치가 있고, 그것을 보는 수만명의 독자들은 염두에 두지 않는가 한순간의 반짝거리던 발상을 여태껏 우려먹고 있지 않는가 저항문화의 기수라고 칭송받던 당신, 그런데 정말 저항정신이 있었나 아니면 지금은 다 소진하고 말았나”

나이든 언더그라운드, 크럼에게 배우는 것

예전의 언더그라운드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로 빠르게 편입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새 대통령의 주변에 운동권 경력과 그로 인한 구속전력이 있는 이들이 많은 것을 들어 “청와대가 별들의 전당”이냐고 비아냥거린다. 게다가 새 문화부 장관은 캐주얼한 옷차림과 승용차로 등장해 관료들을 경악하게 했다. 한때 자신이 정치적 언더그라운드이던 사실을 훈장처럼 달고 재빠르게 변신해 실망감만 던져준 몇몇 현실 정치인들과는 차별된 모습을 본다.

지상으로 나와 절대자가 된 언더그라운드란, 당사자나 그것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참 낯설고 당혹하게 한다. 미국문화의 주류로 자의반 타의반 편입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초청받아, 어제와 오늘의 적들과 더불어 귀빈석을 지킨 크럼의 경우도 그랬다. 이때 느낀 자괴감을 이란 작품으로 1991년에 발표했다. 결국 크럼의 작품세계에서 읽히는 것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반성하고 비판해야만이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 안에 또 다른 언더그라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이든 언더그라운드 로버트 크럼은 말한다.

김장호 ㅣ도상학연구가 alhaji@hanmail.net

참고자료: Robert Crumb, <robert crumb anthology>, 1999.</ro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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