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종교적 의식에서 비롯돼 다양하게 발전… 반흔·색깔 문신에 글자와 무늬 등 새겨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동네 목욕탕에 갔다.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그리 즐거운 어린 시절의 경험은 아니었지만 목욕탕에서 목격하는 어른의 몸은 경이로웠다. 무엇보다 볼펜으로 새겼을, 심장 모양에 화살이 꽂혀 있는 문신을 한 어른을 보았을 때는 조악함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징표처럼 생각되었다. 문신다운 문신을 본 것은 다 커서 도쿄에서 공부하던 시절, 동네 목욕탕에서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야쿠자 문신을 바로 옆에서 본 것이다. 나는 그날 밤 화사한 용이 내 몸 전체를 감싸는 환몽에 빠졌다.
신분확인 수단·치료술 등으로도 활용
1991년 10월, 유럽 알프스 산중에서 5천년 전에 살았던 남자로 추정하는 주검이 발견됐다. 차갑게 얼어버린 주검에는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었다. 왼쪽 무릎과 발목 주위에 새긴 십자 모양과 선 모양의 문신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문신을 한 것은 분명하나 사람의 살은 쉽게 썩기 때문에 남아 있기가 힘들다. 기원전 2000년 즈음으로 추정하는 이집트 미라의 팔과 가슴에는 신을 상징하는 문신이 있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팔다리에 동물 무늬의 문신을 새긴 미라가 발견되었다. 유럽의 구석기시대 유적지에서는 문신을 새기는 도구가 발견되었다. 이 도구는 뼈를 갈아 날카롭게 만든 바늘과 진흙으로 만든 접시였다. 접시는 색깔을 만드는 일종의 팔레트 구실을 했고 뾰족한 바늘은 피부를 찔러 문신을 새기는 데 쓰였다.
고대의 문신은 태양 숭배 같은 종교와 관련된 무늬가 대부분이지만 러시아 고고학자 루덴코가 시베리아에서 발견한 문신은 조금 특이하다. 어느 부족의 족장으로 추정하는 이 주검에는 등의 척추를 따라 작은 원형 무늬의 문신이 새겨졌는데, 이는 침술과 비슷한 치료 목적으로 판단된다. 요즈음에도 시베리아에서는 허리가 아픈 이들을 위한 문신 시술을 행한다.
더욱 구체적인 문신에 대한 역사 기록은 로마시대에 죄수나 노예에게 문신을 했고, 여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문신을 했다는 것이다. 노예나 죄수에게 문신을 하여 낙인을 찍은 것은 그들이 도망갔을 때 신원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로마 병사들도 문신을 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 목적이었다. 이 밖에 유럽 고대의 여러 부족, 곧 갈리아·브리튼·게르만 사람들도 문신을 했다.
문신을 하는 풍습은 기독교가 유럽에 널리 퍼짐에 따라 사라졌는데 기독교에서는 “너희 몸에 먹물로 글자를 새기지 말라”(구약성서 레위기 19장 28절)는 성경 구절에서 보듯 문신을 금기시하였다. 그렇지만 유럽에서 문신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 기독교를 처음으로 인정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도 검투사와 탄광 인부의 손과 다리에 문신을 새기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얼굴에는 금했는데 얼굴은 신이 인간에 새긴 문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칼로 흠집내고 불로 지져 색깔 입히기도
문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색을 사용하는 문신과, 색을 쓰지 않고 살갗에 칼로 흠집을 내거나 불로 지져서 흉터를 내어 여러 무늬를 새기는 ‘반흔 문신’이다. 피부색이 연한 인종은 ‘색채 문신’을 주로 하며, 피부색이 진한 인종은 ‘반흔 문신’을 한다. ‘반흔 문신’은 아프리카에서 주로 성행한다. 살갗을 끄집어올려서 칼집을 낸 다음 숯·재·모래 등을 비벼 넣어 흠집을 부풀게 해 멋진 부조 모양의 문신을 만든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원주민들은 불로 달군 막대기나 숯으로 살갗을 지져 상처를 내기도 한다. 또한 솔로몬 제도에서는 박쥐 발톱으로 얼굴을 긁어 반흔을 넣는다.
화사하게 채색돼 마치 몸에 꽃이 한 다발 핀 것인 양 착각하게 하는 ‘색채 문신’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생선 뼈, 조개 껍데기, 식물 가시, 뾰족하게 다듬은 나뭇조각 같은 자연물과, 무늬를 새긴 나무 도장과 바늘을 문신 도구로 이용하며, 여기에 염료를 묻혀 색이 살갗에 배게 한다. 이 밖에 물감을 묻힌 실을 바늘에 꿰어, 살갗을 꿰매어 무늬를 그리는 기법도 사용한다. 검정을 비롯해 빨강·파랑·녹색 등의 색소를 사용한다.
영어로 문신을 뜻하는 ‘타투’가 타이티 말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지역은 고대부터 문신이 성행했다.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1500년 무렵부터 만들어진 토기가 여럿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기하학적인 능삼 무늬와 바다생물을 상징하는 무늬를 새겼다. 그런데 고대의 토기 무늬와 남아 있는 문신 무늬가 비슷해,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사람의 몸을 토기처럼 여겨 장식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은밀한 곳의 문신으로 성적 매력 표현
사모아 섬의 젊은이에게 문신은 어른이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문신을 하지 않은 젊은이는 미성년자로 취급했고 혼인도 할 수 없었다. 문신을 새기는 작업은 엄격한 의식에 따라 진행했다. 무늬의 부분마다 이름이 있었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무늬를 조심스럽게 새겼다. 먼저 손목에서 시작해 무릎까지 내려갔다. 뼈로 만든 톱니 모양의 기구로 살갗을 자르고, 나무 열매를 태워서 만든 재로 곡괭이처럼 생긴 또 다른 도구의 끝에 묻혀 살갗에 대고 나무 망치로 두드린다.
가장 어렵고 힘이 드는 작업은 남자 생식기에 새기는 문신이었다. 이 마지막 과정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많은 젊은이들은 주저했고, 문신을 새기지 못한 젊은이는 여자들과 사회 구성원들의 조롱을 한몸에 받았다. 인류학자들은 몸의 은밀한 곳에 문신을 하는 까닭에 대해서는 성에 관해 눈뜨기 시작할 나이에 다른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참고자료:
Steve Gilbert,
Henk Schiffmacher, , Taschen, 2001.
김장호/ 도상학연구가 alha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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