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어릴 적 보물 찾던 그곳, 청계천 헌책방거리

한때 200곳에서 현재 13곳만 남아 명맥 유지… ‘서울미래유산’ 이름에 값하는 정책 아쉬워
등록 2026-09-10 22:01수정 2026-09-15 16:33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밍키서림을 운영하는 채오식씨가 2026년 9월2일 책으로 가득한 서점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밍키서림을 운영하는 채오식씨가 2026년 9월2일 책으로 가득한 서점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다.


다 읽은 책을 보고 싶은 다른 책으로 바꿔 보던 때가 있었다. 교과서도 물려 보고, 비싼 참고서는 과목별로 수소문해 물려받았다. 주변에서 구할 수 없으면 헌책방을 돌았다. 다 본 책들을 들고 나가 판 돈으로 필요한 책을 샀다. 찾는 책을 손쉽게 구하자니 헌책방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간다. 이렇게 찾아간 곳이 서울 중구 을지로6가 ‘청계천 헌책방거리’다.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과 피란민들이 청계천 일대에 자리를 잡고 노점을 차렸다. 청계천5가에서 동대문 전차종점에 이르는 판자촌엔 ‘꼬방책방’이라 부르던 고서점이 줄지어 생겨났다. 일제강점기의 소설과 잡지류를 비롯해 희귀 고서와 헌 교과서가 전국에서 몰려들어 새 학기를 앞둔 학생과 학자, 지식인을 불러들였다.

1960년대 청계천으로 흘러 들어오는 대학천과 청계천이 복개되고 평화시장 상가가 지어졌다. 대학천 상가에는 도매유통업을 하는 서점과 출판사들이 자리를 잡았고, 헌책을 사고파는 중고서점은 평화시장 상가 1층에 대거 입주해 헌책방거리를 이루었다.

한때 200곳 넘는 헌책방이 자리했던 헌책방거리에는 현재 13곳만 문을 열고 있다. 온라인서점 확대 등 독서문화 변화와 함께 청계천 일대에 호텔과 쇼핑몰이 세워지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 높아진 임대료가 헌책방을 내몰았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밍키서림을 운영하는 채오식씨는 “1990년대 인터넷이 나오면서 새 책을 파는 서점과 헌책방 모두 급격하게 손님이 줄었다”며 “온라인 판매도 하지만 일일이 재고 정리를 하기가 힘들어 그 비중이 아주 작다”고 말한다. 2.5평 남짓한 그의 책방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통로와 천장에 달린 지름 10여㎝ 냉난방 배관, 그리고 형광등을 빼고는 1만여 권의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에서 팔리는 책 가격은 몇백원부터 수십만원까지 천차만별”이라는 그는 “헌책도 유행을 탄다. 요즘 ‘오디세이’란 영화가 흥행한 뒤 그리스 신화 관련 책을 찾는 이가 많다”고 귀띔한다.

1989년부터 헌책방을 지키며 팔순을 한 해 앞둔 기독성문서적 대표 현만수씨는 유명 출판사의 영업사원을 하다가 서점 운영에 뛰어들었다. “아이엠에프(IMF) 때는 사람들이 한 푼이라도 싼 가격에 책을 사려고 전국에서 찾아와 오히려 영업이 더 잘됐다”는 현 대표는 “코로나 때부터 적자를 보기 시작해 그 전에 벌어놓은 거로 버티고 있다”고 한다. 기독교 관련 서적을 주로 취급하다보니, 신도 50명 이하의 작은 교회들이 숱하게 문을 닫고 대형 교회들도 대면 예배를 못 보면서 매출이 뚝 끊겼다. 이곳 서점들이 연대한 서점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그래도 헌책방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어 버텨왔다”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연세대 학생 동아리 ‘책잇아웃(it out)’을 떠올리며 웃었다.

‘헌책방 활성화를 위한 특화거리 조성’에 나선 박 전 시장은 2013년 서울도서관을 앞세워 청계천 헌책방 상인과 소규모 영세 출판사가 참여하는 ‘한 평 시민 책시장’ 장터를 서울광장에 열었다. 2014년에는 서울시가 네이버와 함께 청계천 헌책방의 간판을 한글로 교체하는 사업을 벌인 뒤 오간수교 아래 청계천 둔치에서 헌책방 상인들과 축제를 열었다. 헌책방 장터가 열릴 때마다 상인들을 돕는 책잇아웃 학생들도 축제에 참여했고, 책을 파는 자동판매기 ‘설렘자판기’를 곳곳에 세워 균일가 5천원의 책값 중 상당 부분을 헌책방 상인들 몫으로 돌렸다.

“오세훈 시장이 시정을 맡은 뒤 이런 사업들이 모두 사라졌다”며 아쉬움을 내비친 현 대표는 “올해는 유난히 더워서 그런지 책방을 찾는 사람이 더 줄었다. 젊은 세대는 헌책방거리가 있는 것조차 모르는 듯한데, 여기 오면 다 본 책을 팔 수도 있고 귀한 책을 싼값에 구할 수 있다는 걸 꼭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서울시 산하 서울도서관은 2026년 9월4일부터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그리고 모전교 아래 청계천 둔치에 ‘서울 야외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책 읽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곳에 헌책방거리 상인들이 함께하는 ‘헌책 장터’를 마련해 헌책을 사고파는 문화를 되살리고, 잊혀가는 헌책방거리를 시민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서울시가 미래 세대에게 전하겠다며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 헌책방거리를 지키고 있는 13곳마저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기독성문서적을 운영하는 현만수 대표가 자신의 서점 앞에 섰다.

청계천 헌책방거리에서 기독성문서적을 운영하는 현만수 대표가 자신의 서점 앞에 섰다.


 

고서적이 거리에 쌓여 있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한 시민이 스마트폰을 보며 지나고 있다.

고서적이 거리에 쌓여 있는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한 시민이 스마트폰을 보며 지나고 있다.


 

서울시가 야외도서관으로 운영하는 청계천 모전교 아래 ‘책읽는 맑은냇가'에서 9월4일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서울시가 야외도서관으로 운영하는 청계천 모전교 아래 ‘책읽는 맑은냇가'에서 9월4일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