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캣츠아이. 하이브∙게펜 레코드 제공
우리는 지난가을에도, 올가을에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로제의 ‘아파트’(APT.)에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아파트’는 미국의 3대 음악상 중 하나인 제68회 그래미상 후보에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지명됐다. 명단이 발표될 무렵 이 곡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21억 회를 돌파했고, 이 외에도 ‘최초’와 ‘최장’의 기록이 연일 경신 중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이름이 의외의 자리에서 등장했다.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의 합작 걸그룹 ‘캣츠아이’가 신인상에 해당하는 베스트 뉴아티스트 부문뿐 아니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까지 이름을 올리며 로제와 경쟁 구도에 선 것이다. 2024년 데뷔한 캣츠아이는 미국인 세 명과 한국인 한 명, 필리핀-미국 복수국적자 한 명, 스위스-이탈리아 복수국적자 한 명으로 구성된 걸그룹이다. 최종 멤버들은 고강도의 케이팝식 트레이닝 과정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거쳐 선발됐다.
캣츠아이의 결성 과정을 담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스타 아카데미: 캣츠아이’를 보면, 연습생들의 기량을 끌어올려야 하는 스태프 한 명은 “사업적인 측면에서 더 큰 가능성과 더 큰 목표를 생각하되, 이 어린 아티스트들이 꿈을 좇게 만들어야 하죠”라고 말한다. 엔터테인먼트업계 종사자들이 도달해야 할 미묘한 균형에 대한 난감함이 담겨 있는 말이다. 다만 흔들리는 시소의 한 축은 미래의 걸그룹이 될 연습생이 투자해볼 만한 자원이라는 점도 보여준다.
지난여름 공개된 의류 브랜드 ‘갭’의 ‘베터 인 데님’(Better in Denim) 캠페인은 캣츠아이라는 자원을 활용한 결정체였다. 캠페인 영상 속에서 캣츠아이는 댄서 30여 명과 함께 갭의 데님을 입고 춤을 춘다. 수십 명의 움직임이 시작부터 시각적 쾌감을 선사하는데, 이 영상의 진짜 목적은 인물들이 착장한 청재킷과 청바지의 색상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조금 더 영상을 보다보면 댄서들이 다인종으로 구성됐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데님은 인디고라고도 불리는 청색 염료로 염색한 실로 제조됐지만, 청색은 화학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그렇다면 살색에 관해서도 얘기해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도덕책이 아닌 광고를 통해 이 시대를 구성하는 다양성을 학습한다.
비슷한 시기에 ‘갭’의 경쟁사 ‘아메리칸이글’이 단 한 명의 모델만을 내세운 캠페인을 선보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카메라는 미국 출신의 백인 배우 ‘시드니 스위니’의 푸른 눈을 근접 촬영하고, 모델은 이렇게 말한다.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전달되며 머리 색깔, 성격, 심지어 눈 색깔과 같은 특성을 결정하죠. 내 청바지는 파란색입니다.” ‘유전자’(genes)와 ‘청바지’(jeans)의 언어유희를 동원하며 파란 눈을 가진 백인의 우월성을 암시한 이 광고는 공개 즉시 우생학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후 아메리칸이글 쪽은 “우리는 모든 사람이 아메리칸이글 청바지를 자신감 있게 입는 방식을 계속해서 기념할 것이다”라고 밝혔지만 일부 대중은 등을 돌렸다.
캣츠아이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그래미상 수상 여부와 무관하게 긴 여정이 될 것이다. 빈약한 인종적 상상력을 향해, 음악으로, 또 존재 그 자체로 그들은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서해인 콘텐츠로그 발행인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케이팝을 듣습니다. 케이팝이 만들어낼 ‘더 나은 세계’를 제안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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