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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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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엔딩 멘트, 열 노래 안 부럽다

[케이팝을 스트리밍]아이돌이 마지막에 남긴 ‘그 말’에 팬들 열광… 성실성·진정성 평가 딜레마의 한 대안
등록 2025-12-04 23:06 수정 2025-12-08 10:49
2025년 11월22일 대만 가오슝 국립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연 트와이스.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년 11월22일 대만 가오슝 국립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연 트와이스.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 제공


제이와이피(JYP) 신인 아이돌 킥플립의 계훈은 소통을 쉬지 않는다. 그는 “내 얼굴은 몰라도 내 버블은 알아”라는 메타인지가 되어 있다. 케이(K)-로맨틱코미디 드라마 주인공이 말할 듯한 대사를 자기 입말에 맞게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계훈은 ‘버블계 김은숙 작가’로 불리는 중이다. 10년 가까운 연습생 생활 끝에 데뷔했지만, 먼저 사람들에게 말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뒤 음악을 듣게 만든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자회사 디어유가 운영하는 ‘버블’, 하이브 자회사 위버스컴퍼니가 운영하는 위버스 내 ‘위버스 디엠(DM)’ 등 유료 소통 서비스 산업에는 성실성과 진정성의 척도로 팬이 아이돌을 평가하는 딜레마로 이어지는 해묵은 과제가 있다. 2024년 4분기 기준, 가입자 20만 명을 넘어선 위버스 디엠의 월매출은 9억원으로 추산될 정도다. 포털사이트에서 위버스를 검색하면 그 옆에 ‘해지’ ‘갱신’ ‘환불’ 같은 자본주의적 언어가 따라붙는다.

팬은 어떤 소통을 원하는가. 아이돌은 얼마나 자주, 어디까지 깊이 소통해야 하는가. 그 답의 일부를 공연 ‘엔딩 멘트’에서 찾을 수 있다. 2025년 11월22~23일, 트와이스가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 가오슝 국립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 ‘디스 이즈 포’(THIS IS FOR)를 열었다.(사진) 가오슝 출신 트와이스 쯔위(周子瑜·저우쯔위)의 금의환향이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 무대를 마친 뒤, 쯔위는 엔딩 멘트 시간에 혼자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던 시절 마음속에 생겨났던 희망의 불씨가 어느새 사그라지는 순간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소감은 “언젠가 다시 마음속 불씨가 활활 타오르게 만들 거예요”라는 힘찬 말로 마무리됐다.

얼마 전 르세라핌 사쿠라의 엔딩 멘트 또한 화제가 됐다. 11월18~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이지 크레이지 핫’(EASY CRAZY HOT) 앙코르 콘서트를 마친 뒤 사쿠라는 이렇게 말했다. “14년간 아이돌을 하면서 많은 꿈을 이루었지만, 정말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런데도 그 시간을 견뎌내고 난 후에 오늘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면, 다시 태어나도 분명 아이돌의 길을 또 선택할 겁니다.” 2011년 일본 걸그룹 HKT48로 데뷔한 뒤, 2018년 한국에서 걸그룹 아이즈원으로, 2022년 르세라핌으로 재데뷔한 사쿠라의 여정이 가지는 의미가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엔딩 멘트는 많게는 수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팬과 아티스트 간 커뮤니케이션이다. 준비된 무대를 모두 보여준 끝에, 아티스트가 소회를 말할 때 관객은 단순히 말을 듣지 않는다. 말과 말 사이의 호흡, 눈물을 참는 순간, 결국 단단하게 정리된 생각을 꺼내는 그의 표정까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함께 접한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 마음을 전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은 때로 무대만큼이나 인상적이다.

2025년 11월, 2026년 상반기 케이스포(KSPO)돔(올림픽체조경기장) 대관 정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출되는 일이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체육산업개발은 대외비 유출을 사유로 해당 커뮤니티에 게시 중단을 요청했지만, 이미 공연장 대관이 확정된 케이팝 그룹 목록이 담긴 포스팅의 조회수는 11만 회에 이르렀다. 이 아이러니한 소동은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하나, 앞으로도 아이돌은 공연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둘, 팬들은 아이돌의 엔딩 멘트를 경청하며 그들을 응원할 이유를 또다시 찾을 것이다.

 

서해인 콘텐츠로그 발행인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케이팝을 듣습니다. 케이팝이 만들어낼 ‘더 나은 세계’를 제안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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