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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프’ 시대의 메인보컬 놀이

유튜브 ‘가짜 김효연’이 쏘아 올린 소녀시대의 새로운 조합
등록 2026-05-07 21:33 수정 2026-05-13 14:08
가수 효연의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 갈무리

가수 효연의 유튜브 채널 ‘효연의 레벨업’ 갈무리


소녀시대의 효연은 원래 웃겼다. ‘전현무’를 ‘임채무’로, ‘아오이 유우’를 ‘아에이오우'로 혼동하는 등 고유명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잦은 말실수 때문에 일찍이 그에겐 ‘우주 천재 작명소’라는 별명이 붙었다. 3세대 아이돌 활동기까지만 해도, 다인원 그룹에 속한 멤버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개그캐’를 자처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단골 출연하곤 했다. 2025년 효연은 개인 유튜브에서 자신의 이런 캐릭터를 녹여 페이크 다큐멘터리 시리즈 ‘가짜 김효연’을 선보였다.

시리즈의 포문은 효연이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 것으로 열었다. 그룹 시절에는 주로 댄스와 랩을 담당했고, 현재는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그는 보컬이 주무기는 아니지만, 갑자기 소녀시대 메인보컬 자리를 ‘침범’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한다. 그렇게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의 장진영 전속 보컬 트레이너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같은 팀 멤버인 티파니로부터 스파르타식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단번에 명창이 될 수는 없다.

이후 소녀시대 유리와 수영이 합류한 ‘효리수(효연·유리·수영) 보컬 전쟁’ 편이 300만 조회수를 넘어서면서 일이 점점 커진다. 이들은 각자 메인보컬로서의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소녀시대의 대표 유닛 태티서(태연·티파니·서현)의 노래 ‘할라’(Holler)를 선택한다. 효리수는 과거 그룹 활동 초반에 상대적으로 짧은 파트를 배정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발표된 ‘지’(Gee)에서 효연에게는 약 8초, 유리와 수영에게는 약 5초의 파트만이 주어졌다.

티파니는 “(셋 중) 누가 첫 소절을 불러도 상관없을 정도의 기세의 보컬이 돼야 해”라는 팁을 주지만, 효연에게 중요한 건 어떤 가사를 부르든 꼭 끝에 “예스, 아이 윌!”(Yes, I will!)이라는 추임새를 넣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보컬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메인보컬 자리를 빌미로 공동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효리수는 케이팝 팬덤에게는 익숙한 포맷인 ‘메인보컬 포지션 평가 영상’을 끌어온다. 일찍이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은 동일한 구간의 노래와 춤을 숙지한 참가자들의 영상을 온라인 플랫폼에 공개해 조회수와 댓글을 해당 참가자에 대한 투표수로 환산했다. ‘국프’(국민 프로듀서)의 영상 평가란, 누가 더 길게 노래를 부르고, 누가 무대의 중심에 서고, 그래서 누가 더 오래 카메라 원숏을 받아 많은 사람에게 각인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핵심 장치였다. 소수의 심사위원만이 참가자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없다는 점에서, 국프들의 ‘내 최애를 데뷔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곧 만성 스트레스의 근원이 됐다.

효리수는 이 지점을 정확히 겨냥한다. 본래 아이돌 지망생의 데뷔와 탈락을 가르던 치열한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대중의 지지에 힘입어 메인보컬로 선발되는 것이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모두가 믿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세 멤버의 평가 영상은 각자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도 끝까지 웃음을 놓치지 않는다. ‘가짜 김효연’이 보여준 효리수의 저력은 진짜와 가짜 사이를 오가는 그 모호한 지점에 있다.

 

서해인 콘텐츠로그 발행인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케이팝을 듣습니다. 케이팝이 만들어낼 ‘더 나은 세계’를 제안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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