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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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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에겐남? 나 테토녀!

‘에겐/테토 밈’은 어떻게 성공적 연애 마케팅이 되었나…정상 연애와 결혼 문법 균열의 틈새, 무해한 남성성을 찾아나서는 어떤 시도
등록 2025-07-24 22:49 수정 2025-07-26 15:29
코미디언 강유미는 유튜브에서 ‘에겐남’의 단점도 풍자한다. 강유미 유튜브 갈무리

코미디언 강유미는 유튜브에서 ‘에겐남’의 단점도 풍자한다. 강유미 유튜브 갈무리


 

“에겐남 특징” “테토녀랑 에겐남이랑 만나야 하는 이유”. 요즘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온라인 저잣거리와 오프라인 길거리, 인터넷방송과 지상파방송 할 것 없이 ‘에겐/테토 밈(meme·유행적 문화 현상)’이 화제다. 엠비티아이(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 이후로 이렇게까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성격 유형론’은 오랜만이다. 이른바 ‘성(性)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을 차용한 이 밈은 외모, 말투, 라이프스타일, 취향 등을 기준으로 성별 유형을 네 가지(테토녀/에겐녀/테토남/에겐남)로 나눈다.

 

블로거 이상수가 2021년 6월2일 블로그에 쓴 ‘연애 먹이사슬 호르몬 분석글’이 최근 다시 회자됐다. 이상수 블로그 갈무리

블로거 이상수가 2021년 6월2일 블로그에 쓴 ‘연애 먹이사슬 호르몬 분석글’이 최근 다시 회자됐다. 이상수 블로그 갈무리


 

‘잘 맞는 짝 찾기’의 새로운 트렌드?
요즘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와 같은 온라인 저잣거리와 오프라인 길거리, 인터넷방송과 지상파방송 할 것 없이 ‘에겐/테토 밈(meme·유행적 문화 현상)’이 화제다. 침착맨 유튜브 갈무리

요즘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와 같은 온라인 저잣거리와 오프라인 길거리, 인터넷방송과 지상파방송 할 것 없이 ‘에겐/테토 밈(meme·유행적 문화 현상)’이 화제다. 침착맨 유튜브 갈무리


무슨 뜻일까. ‘테토녀’는 ‘테스토스테론 여성’의 준말로 솔직하고 주도적인 성격이고 자유롭고 힙한 개성을 표현하는 옷차림을 즐기는 여성을 일컫고, ‘에겐녀’는 ‘에스트로겐 여성’의 준말로 본인이 앞에 나서기보다 상황과 분위기에 맞추며 페미닌(feminine·여성스러운) 한 스타일을 지닌 여성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에겐남’은 다정하고 섬세하며 감정에 민감한 성향으로 외모와 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남성으로, ‘테토남’은 리더십이 있고 직설적이며 취향도 단순한 남성이라고 설명된다.

초창기에는 에겐/테토로만 나뉘었던 것이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에테남(에겐남이면서 테토 기질), 테겐남(테토남이면서 에겐 기질)으로 심화되는 중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대중 놀이 문화에 불과하며, 실제 호르몬 수치를 측정한 결과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테토녀’와 ‘에겐남’이 성호르몬을 빌려 이름이 지어졌음에도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난 유형이라는 점이다. 이전에는 다소 부정적 뉘앙스를 담아 테토녀에 대해 ‘선머슴 같다’든가 에겐남에 대해 ‘게이 같다’고 표현됐을 ‘남성스러운 여자’와 ‘여성스러운 남자’는 어떻게 긍정적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부상하게 되었을까?

사실 ‘남성스러운 여자’나 ‘여성스러운 남자’에 대한 상향 평가는 새롭지 않다. 각각 ‘톰보이’(tomboy)나 ‘초식남’ ‘너드(nerd)남’처럼 기존의 여성다움이나 남성다움에서 벗어났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해 어떻게든 ‘틈새시장’에 자리 잡게 하려는 계보는 있었다. 하지만 에겐/테토 밈은 성역할에서 벗어난 유형이 일부가 아닌 보편이 되었고, 이들이 되레 규범에 들어맞는 ‘여성스러운 여자’ ‘남성스러운 남자’보다 더 주목받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에겐/테토 밈이 시스젠더(출생시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이성애 여자들의 연애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중심이 되어 확산한 콘텐츠임을 주목하자. 특히 이 밈의 시초로 알려진, 블로거 이상수가 2021년 6월2일 블로그에 쓴 ‘연애 먹이사슬 호르몬 분석글’을 보면, 에겐/테토 밈의 역할은 ‘잘 맞는 짝 찾기’임을 알 수 있다. 짝을 잘 찾기 위해 각자의 고유한 취향이나 선호, 혹은 특정한 조건도 아닌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등한 관계에 대한 열망

요즘 세계적으로 젠더 수행, 특히 남성성이 문제다. 일부 ‘이대남’이 표상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극우 남성성, 폭주하는 남성성 등 유해한 남성성을 지적하는 담론이 넘쳐난다. 이 담론을 뒤집으면 ‘무해한 남성성’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시민으로서도, 친밀한 대상으로서도.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4B(4非, 비연애·비섹스·비혼·비출산) 운동의 흐름이 이어지며 연애나 결혼이 필수가 아니게 됐다. 연애와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최대한 리스크가 없는 완벽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골몰한다. 나만의 커리어와 주체성을 지키면서도 데이트폭력이나 감정 착취, 독박 육아 및 독박 가사 노동 같은 가부장제의 불평등을 겪지 않기 위해.

 

유튜버이자 댄서인 권또또와 그의 남편의 ‘수컷녀-에겐남’ 만남 스토리에서 사람들이 주목한 부분은 상대방의 부모에게도 ‘에겐남 스타일’이라는 점이었다. 권또또 유튜브 갈무리

유튜버이자 댄서인 권또또와 그의 남편의 ‘수컷녀-에겐남’ 만남 스토리에서 사람들이 주목한 부분은 상대방의 부모에게도 ‘에겐남 스타일’이라는 점이었다. 권또또 유튜브 갈무리


한 예로 유튜버이자 댄서인 권또또와 그의 남편은 ‘수컷녀-에겐남’의 만남 스토리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사람들이 주목하는 점은 부부 사이뿐 아니라 ‘장인 장모에게도 에겐남 스타일’이었다는 것이다.(권또또 유튜브 ‘너와 내 사이, 초고속 결혼한 사이’ 편 참조) 즉 사람들이 에겐남에게 투영하는 것은 여성만큼 돌봄에 능한, 평등한 관계에 대한 열망이다. 이 밈 이전에 유행한, (연애에 관심 자체가 적은 초식남과 달리) 매력적이지만 연애 경험이 적어 여성의 주도권에 대한 욕망을 투영할 수 있는 ‘너드남’이나 (과묵하고 권위 있는 아빠가 아닌) ‘친구 같은 아빠’ ‘딸바보’ 등이 각광 받은 흐름에도 이런 열망이 흐르고 있다.

이는 기존의 정상 연애와 결혼 문법의 균열을 반영한다. 물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보호하고 책임지는 능동적 남성성’과 ‘보조하는 역할의 취약한 수동적 여성성’이라는 문법 말이다.(물론 이 역할 분담은 어디까지나 ‘규범’이다. 현실에서는 아내가 다 먹여 살렸어도 사회적 인정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남성의 매력이란 (여성에 견줘) 경제적·사회적·지적 우위, 신체적 우위, 나이의 우위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제 그런 공식이 지속 불가능해졌다. ‘연상녀·연하남’ 초혼 부부 비중이 2024년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거나, 결혼정보회사가 내놓는 ‘여성도 남성의 외모를, 남성은 여성의 직업(재력)을 보기 시작했다’는 홍보성 글도 정상 연애 문법의 붕괴를 방증하는 현상의 일부다. 이미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가족임금에 기초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쇠퇴해가는 사회에서 젠더 질서가 새롭게 재편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에겐/테토 밈의 ‘정치적 버전’인 좌파/우파남 유형도 존재한다. 2025년 3월 엑스(X·옛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던 ‘운동권 시스젠더헤테로남성 꼬시기 대작전’ 글을 보면, ‘운동권 남성’의 장점으로 ‘(가치관이 비슷하며)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다’ ‘빻은 소리 할 때마다 성인지 감수성!! 하면 그래도 갓반인들보다 잘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것을 꼽는다. 이 글이 쓰인 시점을 고려하면 윤석열 퇴진 운동 국면을 지나며 ‘정치 신념’ 그리고 ‘성인지 감수성’이 관계를 맺는 중요한 가치로 부상한 맥락이 반영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종합하면 에겐/테토 밈에 결집된 문제의식은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기존의 정상 연애 문법이 무너지고 있다면, 서로는 어떻게 욕망할 것인가? 어떻게 욕망할 만한 존재로 거듭날 것인가?” 즉 이성애 비관주의와 이성애 긍정주의가 교차하고 연애의 규범이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현실 속에서, 각자가 놓일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 바로 에겐/테토 밈이며, 바로 그 점이 이 밈의 인기 요인이다.

 

서로를 어떻게 욕망할 것인가

그렇다고 기존의 전통적 성역할 규범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 남자다움에 대한 선호가 강력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알파메일(사회집단에서 우두머리 지위를 가진 수컷)처럼 강력한 우위를 가졌거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남자 주인공 양관식처럼 기사도적이고 헌신적인 낭만성을 가졌거나. 여성들 스스로도 모순적으로 이런 특성들을 조합해 희구하기도 한다. ‘낮에밤테’라는 표현처럼 낮에는 에겐남처럼 다정하고 배려심 넘치지만 밤에는 테토남처럼 리드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일부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알파메일이 돼야 한다며 유해한 남성성을 더욱 강화하거나, 다정한 남성성에 대해 ‘스윗 한남’(여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남성이나 남성 페미니스트를 비꼬는 표현) 또는 ‘퐁퐁남’이라고 멸칭을 붙이거나 조롱하고, ‘도태남’이라고 스스로의 위치를 비관하거나 아예 정체성으로 삼기도 한다. 혹은 과거의 ‘김치녀’ 같은 호칭처럼 깨진 아이폰을 쓰거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워킹홀리데이를 가거나, 네일아트를 받은 여성처럼 여성들의 특징을 세분화해 비난하면서 어떻게든 가부장제 아래 영향력을 지켜내려 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여성들이 그런 남성들과의 관계를 기피하는데도 말이다.

 

과학으로 보는 테토남과 에겐남. 에겐/테토 밈을 다른 분야와 결합해 설명하려는 콘텐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키텔 유튜브 갈무리

과학으로 보는 테토남과 에겐남. 에겐/테토 밈을 다른 분야와 결합해 설명하려는 콘텐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키텔 유튜브 갈무리


이런 남녀의 간극이 에겐/테토 밈이 연애 상담의 ‘성공적 비즈니스 모델 혹은 도구’로 자리하게 하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 특히 ‘INFP-회피형-에겐남’이란 조합은 여성들 사이에서 관계에 무능한 남성들에 대한 유사 심리학 설명 체계로 자리 잡으며, 연애에 대한 위로나 대처 방안을 소비하게 한다. 에겐/테토 밈을 콘텐츠로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들은 연애 상담 비용으로 몇십만원을 제시하기도 한다. 인류학자 김현미가 2021년 말한 “오늘날 여성들의 사적이면서 사회적인 고통을 사주·타로·점성술 같은 ‘치유 비즈니스’가 포섭하고 있다”는 통찰이 2025년의 오늘에 적용되는 현장이다. 에겐/테토 밈 역시 사주·타로·점성술처럼 연애 상담 및 코칭 산업의 주요 마케팅 용어로 등장한 것이다.

 

사주로 보는 에겐녀와 테토녀. 에겐/테토 밈이 과거의 사주·타로·점성술처럼 연애 상담 및 코칭 산업의 주요 마케팅 용어로 등장하고 있다. 마인드 명리 유튜브 갈무리

사주로 보는 에겐녀와 테토녀. 에겐/테토 밈이 과거의 사주·타로·점성술처럼 연애 상담 및 코칭 산업의 주요 마케팅 용어로 등장하고 있다. 마인드 명리 유튜브 갈무리


 

‘남성성 마케팅’ 시효는 언제까지일까

전통적인 가족 그리고 여성(아내)다움, 남성(남편)다움의 위기는 친밀성 관련 의례를 만들어왔다. 사회학자 권오헌은 2000년대에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 ‘데이 마케팅’이 유행한 데는 낭만적 사랑과 연애혼의 위기 속에서 ‘사랑 자체’가 애써 추구해야 하는 기획이 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에겐/테토 밈 역시 왜곡된 남성성의 부흥에 따른 정상 연애의 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사랑에 대한 욕망’을 정당화하는 기획 아닐까. 그러니까 에겐/테토 밈은 어디까지나 놀이지만, 시스젠더 이성애자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든 실현하고, 어떻게든 언어를 주려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이미 여성들은 에겐남이라고 해서 마냥 무해하지 않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유미 유튜브 ‘에겐남에게 끌리는 이유’ 편을 보면, 에겐남은 섬세하다 못해 심약하고 자신의 이미지에 과하게 신경 쓰며 여성에게도 ‘외모 평가’를 더 촘촘하게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데이 마케팅’이 지금은 촌스러워진 것처럼, 여성들이 남성성에 더는 아무 기대도 품지 않게 된다면, 그 기대를 스스로 만들어낸 ‘남성성 마케팅’조차 서서히 멈추게 될지 모른다.

 

도우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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