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과 시대의 관계는 퍽 복잡하다. 지식인은 때로 ‘시대정신’을 이끈 영웅으로 격상되기도 하지만 그저 시대의 거울, 잘해야 리트머스시험지 정도로 격하되기도 한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윤춘호가 쓴 <강준만의 투쟁>도 이 난제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한때 실명 비판과 안티조선 운동을 주도하며 한국 지식계를 뒤집어놓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논쟁의 최전선에서 내려온 혹은 물러난, 그런데도 지금까지 가히 공장과 같은 생산성으로 책을 찍어내는 현역 지식인 강준만을 어떻게 ‘역사화’할 것인가?
윤춘호의 전략은 독특하다. 그는 강준만이 시대를 이끌었던 그의 ‘전기’가 아니라 시대와 불화하고 끝내 밀려난 ‘이행기’와 ‘후기’에 주목함으로써, 지식인과 시대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마따나 강준만은 한국의 남성 지식인 중 최초로 ‘정체성의 정치’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언제나 대의나 민족이라는 ‘보편’에 기대 자신을 스스로 지워버리곤 하던 다른 남성 지식인들과 강준만은 달랐다. 그는 황해도 실향민의 아들, 호남 출신, 비서울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강준만의 이름을 알린 가차 없는 실명 비판은 이처럼 특수한 ‘나’의 입장에서 상대 역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논파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며 김대중 구하기에 투신하고, 노무현 지지를 선언했으며, <조선일보>와의 투쟁에 나섰던 강준만은, 어느 순간 과거의 자신과 결별한다. 계기는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과 새천년민주당 분당이었다.
이후 그는 진보 진영과 거리를 둔 채 소통 전도사를 자임하더니, 2011년 미국에서 1년 동안 교환교수를 지낸 뒤에는 자신이 ‘당파성’을 버렸다고 선언했다. 강준만이 ‘이행기’를 지나 ‘후기’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실명 비판에 거리낌이 없던 무자비한 논객에서 한국 사회의 ‘당파성’을 문제 삼는 소통 전도사가 된 강준만의 모습은 얼핏 변절이나 전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강준만 역시 한때 자신이 가차 없이 비판하던, 보편의 이름에 비겁하게 숨어버리는 그저 그런 지식인이 됐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강준만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자신이 존경하는 리영희를 준거 삼아 이념에 대한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오만이거나 습관적 중독일 수 있다”며 나름의 해명을 내놓는다.
이 책은 강준만 본인의 생각과도 달리 그가 ‘일관성’을 지켜왔다고 말한다. 그는 ‘전기’에도, ‘이행기’에도, ‘후기’에도 계속해서 주류에 날을 세웠고 대중과 불화했다. 달라진 건 지식인 강준만이 아닌 시대다. 이제 한국은 강준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그만큼 분열됐으며, 무엇보다 극단적인 증오감이 지배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한때 강준만과 함께했거나 그의 ‘키즈’를 자처하던 수많은 지식인은, 이제는 서로 상종조차 하지 않을 만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어쩌면 강준만은 모두가 달라지는 시대에 홀로 달라지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찬근 대학원생
*역사책 달리기: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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