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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인데 왜 자꾸 ‘숙소’라고 해요…?

건축가 두 명이 쓴 다른 집에 대한 생각 <즐거운 남의 집>
등록 2024-03-01 16:38 수정 2024-03-05 09:32


회사 근처에 산다고 말했더니 “숙소에서 자취하니 밥도 잘 못 챙겨주겠네”라는 직장 동료의 말을 들은 윤석씨. 그런데 윤석씨는 요리도 잘하고 행복하다. “(집에 대한) 많은 이야기 중 내 얘기라고 느껴지는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한 1990년대생이자 건축가, 2020년대를 사는 생활인인 이윤석·김정민이 <즐거운 남의 집>(놀 펴냄)을 썼다.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남의 집이어도, 최소의 집에 살아도 다 그만큼의 삶이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인구의 50%라니, 절반의 삶이다.

윤석씨와 정민씨는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초대해준 사람들의 집을 방문한다. 자아씨는 여기에 텔레비전, 여기에 소파가 놓이는 집이 아닌 “이렇게 쓸 수 있겠다 싶은” ‘여지가 있는 집’을 찾고 있다. 은화·경수씨는 찬장과 큰 테이블을 넣고 문짝을 떼낸 방을 ‘고주망태의 이산화탄소 방’이라고 부른다. 다람씨는 집주인의 “집 팔려고 내놓았어”라는 말에 “아주머님, 잠깐, 이 집 제가 살게요”라고 하는 전세자로서 극대의 호탕함을 보여주었지만 투자는 ‘내 알 바임?’이었다. 글을 쓴 이윤석은 부동산 중개업체에 ‘좀 특이한 집 없을까요’라고 묻는다. 그가 발견한 마음에 드는 집은 가까운 종교시설 쪽으로 둥그런 창이 난 집과 가로로 긴 집이었다.

집이 고집스럽다면 거주자와 삐걱거릴 수도 있다. 집에 초대해놓고 집의 단점만 이야기하는 유식씨처럼 꼭 집을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윤석은 “나에게 집이란”이라는 질문에 대부분이 “집은 바로 나, 나를 담는 그릇”이라고 대답하는 데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집은 그릇치고 너무 비싸다. 그리고 나를 담기에는 너무 작다. 집은 내가 아니다.” “어디에 사는지가 당신이 누군지를 말”(브랜드 아파트 광고)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집은 집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정민은 집을 찾기 위해 까는 앱 속의 천편일률적인 카테고리 대신 동네를 검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집을 계속 힐끔거렸다. 집과 반려동물과 함께해온 ‘녹’. 옷장 안에 뜨개실 콘사를 놓을 수 있는 선반을 만들었고, 고양이를 키우며 부족하게 된 ‘식물’에 대한 갈증을 베란다에 샤워부스 문을 달아 고양이를 분리시킴으로써 해결했다. 독립한 뒤 처음 산 조립식 책장은 단종 뒤에는 ‘당근’을 통해 사서 덧붙이고 있다. 기르는 고양이는 언제나 뜨갯거리를 넣은 상자 안에서 잠을 잔다. 뜨개옷은 고양이 털과 털실이 번갈아가며 짜인다. 필자들은 이런 것을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당신도 한번 꼽아보시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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