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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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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칠 때까지 [손바닥문학상]

제15회 손바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등록 2023-12-15 18:14 수정 2023-12-23 14:20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한 달째 비가 내렸다.

이슬비로 시작한 비는 가랑비가 되더니 닷새 전부터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굵어진 빗줄기는 낮이건 새벽이건 때때로 세찬 소나기로 돌변했다. 소나기가 내릴 때면 양철 지붕에서는 어릿광대가 나무로 만든 채로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극의 절정에서 양철북을 세차게 내리치는 채.

사지촌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들으면 골목에서 춤추거나 눅진한 장판을 두들겼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세찬 빗줄기는 다시 얇아졌고 양철 지붕은 극의 전조로 되돌아갔다.

사지촌은 말 그대로 사지, 두 팔과 두 다리 중 어느 하나 혹은 그 이상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왜 여기에 이들이 모여 사는지 그 배경을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 사지촌에서 가장 오래 산 서씨에게 뭐 좀 아는 게 있냐고 물어보면 어디 없는 사람끼리 모여 있는 게 궁금할 거리가 되느냐는 면박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두 다리가 없는 서씨는 사지촌에서 유일하게 볕이 드는 1번 방에 살았다. 서씨가 언제부터 1번 방에서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는 눈을 감고 캄캄한 골목을 기어서 사지촌의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서른 개의 쪽방 위에 얹어진 양철 지붕에서 물이 새면 두 다리가 성한 김씨와 박씨는 제법 바빠졌다.

김씨와 박씨는 알루미늄 사다리를 한 손으로 잡고 올라갔다. 사다리를 올라갈 때는 무게중심이 가장 중요했다. 사다리 디딤대에서 한 손을 떼면 그 한 손이 위쪽 디딤대를 잽싸게 잡아야 했다. 무게중심이 흐트러지면 그대로 뒤로 넘어갈 수 있으므로 김씨와 박씨는 사다리를 비스듬히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를 살폈다. 한 명이 사다리에 몸을 기대 지붕을 수리하면 다른 한 명은 밑에서 사다리를 잡아줬다. 김씨는 왼팔이 없고 박씨는 오른팔이 없으므로 이들은 제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손을 쓰지 못했다.

김씨와 박씨 모두 오른손잡이여서 수리는 주로 김씨가 했다.

김씨는 빗발이 약해지면 사다리에 몸을 의지한 채 물이 새는 양철 지붕 조각을 들어냈다. 이어 녹슨 부위에 양철 조각이나 합판, 판자 아니면 방수포를 덧댔다. 김씨가 올라선 사다리를 잡은 박씨는 녹슨 양철을 받고 새 재료를 김씨에게 올려줬다. 김씨는 작업 벨트에서 꺼낸 공구를 입에 물고 한 손으로 박씨가 올려준 재료를 지붕에 얹었다. 그는 정수리로 새 재료를 눌러 고정하다가 입에 물고 있는 공구를 손으로 잡아빼 그 위치가 어긋나기 전에 고정했다.

둘의 호흡은 좋았고 일은 능숙했다. 사지촌 사람들은 이 둘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꼭 두 손으로 일하는 것 같다며 즐겁게 웃었다. 김씨와 박씨는 이 말이 싫지 않았다.

지붕에 덧대는 재료는 물이 새는 쪽방에 사는 사람이 구했다.

김씨의 옆방에 사는 조씨가 두꺼운 책을 그에게 들이밀며 구멍이 난 지붕을 수리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김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한 적색을 띤 플라스틱 양동이가 골목 공터에 있다고 조씨에게 알려줬다. 양동이가 곧 부족해질 거란 말까지 김씨는 덧붙였다. 그러자 조씨는 어디선가 벽돌을 구해 오더니 김씨에게 건넸다. 그 벽돌을 받아 든 김씨는 크게 웃었고 박씨와 조씨는 엉겁결에 따라 웃었다. 이날은 하늘이 화창했다.

골목 공터 위의 누더기 지붕에는 사람 머리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조각이 기워져 있었다. 김씨는 그 양철 조각을 걷어내고 목만 쏙 뺀 채 구름이 걷힌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했다. 구름 사이를 뚫고 나온 햇살에 눈을 찌푸리면 어둡고 좁은 사지촌 골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뿐이지만, 그 잠시는 김씨가 일의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물론 사람들의 감사 인사도 김씨와 박씨가 지붕 수리를 하는 이유였다. 그들이 사다리에서 내려오면 사지촌 사람들은 두 사람 주변에 모여들었다. ‘위는 어떤가요’ ‘지붕은 괜찮은 건가요’ ‘비는 언제까지 오는 건가요’같은 질문을 사람들은 김씨와 박씨에게 쏟아냈다.

사지촌 사람들은 김씨와 박씨의 주머니에 감자나 빵, 캔 음료수 같은 것들을 넣었다. 아주 가끔은 돈으로 사례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럼 김씨와 박씨는 정확히 반으로 나눠 가졌다. 돈을 받는 일은 드물었기에 김씨는 이에 대한 기대보다는 질문을 받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는 하나뿐인 손을 허리에 얹고 비는 곧 그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김씨의 예상과 달리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보통의 빗줄기는 일상이고 녹슨 양철 지붕을 무너뜨릴 심산인 국지성 호우가 잦아졌다. 사지촌 가까이에서 천둥이 우지끈 소리를 내면 사람들은 자다가도 일어나 흔들리는 천장을 바라봤다. 이들은 지붕이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그럴 조짐은 없는지 가만 쳐다보고는 들 수 없는 잠을 다시 청했다.

비가 그치지 않자 김씨와 박씨가 할 일은 줄었다. 천장이 너무 높거나 골목이 너무 좁아 사다리를 댈 수 없는 장소에서 비가 샜다.

김씨의 손이 닿는 곳은 이미 한 번 이상 보수했다. 비가 거칠어질수록 작업할 틈이 나지 않았으므로 재보수는 어려웠다. 부족한 양동이는 더 귀해졌다. 양동이에서 잠시 눈을 떼면 이 적색 플라스틱은 누군가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물줄기가 그 자리를 세차게 때렸다.

김씨는 15번 방에 살았고 박씨는 20번 방에 살았다. 그런데 정작 지붕 수리를 하는 이들의 방 천장은 비가 새도 고칠 수가 없었다.

사지촌은 좁은 골목이 둥그스름한 모양의 서쪽과 동쪽을 잇는 구조다. 근데 이 골목과 맞붙어 있는 서쪽의 15번 방과 동쪽의 20번 방은 다른 방에 비해 더 좁다. 더욱이 이 방은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진다. 이 방에서는 사람이 날지 않는 한 천장에 닿을 수 없다.

박씨의 방에서 새는 비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15번 방은 달랐다. 김씨는 새벽에 물벼락을 맞았다. 화들짝 놀란 김씨는 잠시간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비벼 물을 훔치고 눈을 떴다. 이불은 흠뻑 젖었고 전기장판은 물을 먹었다. 김씨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지붕에 구멍이 뚫려 있지는 않았다. 어딘가에서 고인 물이 일정 부피가 넘으면 15번 방으로 쏟아지는 거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김씨는 전화를 시도한 지 사흘 만에 구청 직원과 통화했다. 구청 직원은 그 건물은 사유지라며 집주인이 수리해야지 구청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구청 직원은 김씨와 통화하는 와중에도 주변에서 묻는 말에 대답하고 다른 데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둘 간의 대화는 끊기고 또 끊겼지만 김씨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한번 와보실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박씨와 조씨는 김씨의 통화를 옆에서 함께 들었다. 구멍에 벽돌을 얹어놓은 조씨의 방에서도 비가 샜다.

구청 직원은 대답하는 데 뜸을 들였다. 키보드를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알겠습니다.”

“네?”

“알겠다고요.”

구청 직원의 목소리는 컸지만 그렇다고 짜증이 배어 있지는 않았다.

“호우대응팀에서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살펴보고요. 요새 너무 바쁜데 암튼 일정 낼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예상외의 답변이긴 했으나 이들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 해 전 여름 사지촌 서쪽에 있는 납골당이 침수되자 김씨는 구청에 연락했다. 중장비가 올라오더니 납골당 앞에 수로를 새로 팠다. 수로는 납골당 앞에만 만들어졌다. 중장비는 사지촌을 스쳐 지나갔다. 구청에서는 비가 오는 동안 사지촌을 찾지 않았다.

김씨는 물이 언제 폭포수처럼 떨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물에 빠진 방에 들어가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입으로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물에서는 쇠 맛이 났다.

김씨가 천장을 쳐다보는 와중에 사지촌 동쪽 끝에 있는 22번 방부터 30번 방이 물에 잠겼다. 이 방들은 물이 발목 높이까지 차올랐다. 이른 아침에 느닷없이 물이 들어와 막을 겨를이 없었다고 동쪽 사람들은 말했다. 방문턱을 넘은 물줄기는 눅진한 장판과 요와 옷상자를 축축이 적셨다.

사지촌은 서에서 동으로 완만한 내리막이다. 납골당 앞에 새로 만들어진 수로를 흐르는 물이 사지촌에 접어들면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그중 하나 혹은 두 개 이상의 물길이 사지촌으로 들어왔다.

천장에서는 비가 새고 땅에서는 물이 흘렀다. 골목에 놓인 양동이에는 물이 넘쳤다. 방울방울 모인 물은 사람 한두 명 너비의 골목을 따라 동쪽으로 흘렀다. 동쪽에 만들어진 웅덩이는 빠르게 차올라 곧 무릎이 잠길 것 같았다.

조씨는 자신의 방에서 삽을 들고 왔다. 왼쪽 다리가 없는 조씨는 상체가 남달리 두꺼웠다. 그의 팔뚝은 마른 사람의 허리 두께와 비슷했으며 어깨는 갈라졌고 등세모근은 귀밑까지 올라왔다. 언젠가 박씨가 이런 상체를 가진 사람이 어쩌다 다리를 잃었냐고 조씨에게 물었다가 굳은살이 가득한 손에 목이 잡혀 캑캑거린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박씨의 몸이 살짝 공중으로 들렸다고 했다. 사지촌에서는 사지 중 일부를 어쩌다 잃었냐고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란 걸 박씨가 모를 때였다.

조씨는 휠체어에 앉아 동쪽 골목 끝을 팠다. 정강이 중간까지 차오른 물 위로 시멘트 가루가 떠올랐다. 조씨는 오른손을 하늘 위로 치켜든 뒤 온 힘을 다해 삽을 땅에 꽂았다. 조씨의 등이 갈라지면서 민소매 옷이 찢어졌다. 휠체어는 물 위에서 흔들렸다. 김씨는 가슴을 방문에 붙인 채 휠체어의 한쪽 손잡이를 잡았다. 박씨는 김씨와 같은 자세로 휠체어의 다른 쪽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물은 흙탕물로 변했다. 물속은 볼 수 없지만 조씨는 자신에 찬 몸짓으로 삽을 땅에 꽂고 또 꽂았다. 흙탕물이 되는 걸 보니 땅이 파이는 거 같긴 했다. 김씨와 박씨 뒤로 사지촌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그들의 눈빛으로 골목이 환해졌다.

조씨의 등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그는 삽을 치켜든 채 잠시 동작을 멈췄다. 조씨는 삽을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더니 오른손 손가락을 폈다가 다시 접었다. 삽은 물속으로 던져졌다. 덜컥 소리가 나더니 무릎까지 차오른 물이 벽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골목에 고인 물은 사람들의 발목을 훑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바닥을 바라보며 와, 하는 낮고 긴 탄식 같은 환호를 내뱉었다.

“됐네요.”

조씨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쪽만 미관을 위해 벽돌을 썼거든요.”

활짝 열린 조씨의 입은 그의 우람한 상체와 어울리지 않았다.

김씨는 삽을 쥐고 웃는 조씨를 보며 웃음이 나오는 걸 참지 못했다. 박씨도 마찬가지였다. 이 둘 그리고 이들 뒤에 일렬로 서 있는 사지촌 사람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 양철 지붕 밑에서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비가 양철을 때리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이들은 서로의 표정만으로 충분히 웃음을 전달받고 전파할 수 있었다. 웃음이 사지촌 서쪽에 이르자 사람들은 왜 웃는지 알지 못한 채 웃었다.

조씨의 어색한 표정과 골목에 튀는 침방울을 보며 김씨는 구청 사람들을 마냥 기다릴 순 없다는 생각을 퍼뜩 떠올렸다.

김씨는 사람들을 헤집으며 골목을 지나갔다. 그는 사다리를 들고 자신의 방 옆 골목에 있는 공터로 갔다. 이 공터 위 누더기 지붕에는 김씨가 머리를 내놓기 좋아하는 양철 조각이 기워져 있었다.

김씨가 사다리를 세우려 하자 박씨가 김씨의 어깨를 잡았다. 박씨는 어느새 김씨를 쫓고 있었다.

“뭐 해요?”

박씨가 물었다.

“오르려고요.”

“지금요?”

지붕은 뜯겨나갈 듯 덜컹거렸다. 아직 양철판이 바람에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소리만 들으면 지붕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김씨는 어깨 위에 있는 박씨 손을 치웠다.

“물벼락이 또 칠 거예요.”

“이 소리 안 들리세요?”

박씨는 검지로 자신의 왼쪽 귀를 가리켰다. 골목의 좌우를 꽉 채운 방문들이 덜컹거렸다. 휠체어를 굴리며 온 조씨는 오른손으로 사다리 지지대를 움켜쥐었다. 김씨는 사다리를 조씨의 손에서 빼낼 수 없다.

천장에 오르지 못한 김씨는 우산을 펴고 방에 앉았다. 빗방울이 우산에 후드득 떨어졌다. 이 정도면 밖과 안이 다를 바 없다고 김씨는 생각했다. 그는 우산을 뒤로 젖혔다. 벽에 붙은 선풍기 주변으로는 검푸른 곰팡이가 영역을 확장했다. 전원이 꺼진 냉장고는 문을 닫아놔도 반찬 썩은 내가 스멀스멀 고무 패킹을 뚫고 나왔다.

빨간색 목욕탕 의자에 앉은 김씨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등을 벽에 기대면 물기가 살갗으로 스며들었다. 살갗으로 스며든 물기는 뼈에 냉기를 전했다. 그는 등을 벽에서 떼고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김씨는 이렇게 졸다가 우산을 놓쳤다. 그는 우산을 집으려다 목욕탕 의자 다리 한쪽이 휘어지면서 바닥에 넘어졌다. 물이 몸 전체로 스며들었다. 김씨는 녹색 줄로 발목에 묶어둔 양동이를 붙잡고 일어섰다. 양동이에 담긴 물이 넘쳤다. 곰팡이는 벽에 검푸른 색 글씨를 쓰고 있었다.

당장 나가.

김씨는 방에서 나와 사다리를 만지작거렸다. 새벽의 사지촌은 낮에 비해 고요했다. 세찬 바람은 여전히 불고 비는 내렸지만, 골목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기침 소리가 빗소리를 뚫을 때만이 사람이 잠을 청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 김씨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안고 있던 양동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도대체 왜 비가 그치지 않는지 김씨는 봐야 했다. 얼마 동안 비가 내리고 있는지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비는 사지촌을 덮었다.

김씨는 사다리를 골목 벽에 기댔다. 그는 오른손으로 눈높이에 있는 디딤대를 잡고 왼발을 가장 밑에 있는 디딤대에 올렸다. 골목은 어두웠지만 김씨는 사다리와 그 주변을 분간할 수 있었다. 주변에 김씨를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김씨는 왼발과 오른발을 디딤대에 차례로 올렸다.

그가 사다리를 절반쯤 오르자, 가로세로 길이 모두 35㎝ 정도 되는 양철 조각이 마구 떨렸다. 조각과 지붕이 부딪치는 음향이 김씨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는 눈을 찌푸리고는 나사를 하나씩 풀었다. 나사가 풀려나갈 때마다 마찰음은 날카로워졌다. 김씨는 마지막 나사를 돌리기 전에 자신이 조각에 달아놓은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입에 문 드라이버로 마지막 나사의 마지막 한 바퀴를 돌렸다.

분명 김씨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양철 조각은 안에서 덧댔기 때문에 지붕의 구멍보다 좌우 길이가 더 길었다. 하지만 이 조각은 단숨에 지붕 밖으로 날아갔다. 양철은 밖으로 빨려 나가면서 종이 쪼가리처럼 구겨졌다.

손잡이를 놓친 김씨의 몸이 휘청였다. 그는 사다리 지지대를 간신히 붙잡아 무게중심을 회복했다.

김씨가 작은 구멍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까맸다. 바람 때문에 비는 옆으로 내렸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지붕 모서리에 찢겼다. 포효인 것 같기도 하고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한 괴이한 음향이 하늘을 채웠다.

김씨는 머리를 구멍 바깥으로 천천히 빼냈다. 강풍에 섞인 비와 잎사귀가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김씨의 머리카락은 벗겨질 거 같았다.

그는 실눈을 뜨고 자신의 방 지붕을 바라봤다. 처마 위쪽에는 돌이 떨어져 있었다. 그 돌 주변에 물이 고였다. 고인 물은 바람에 철렁거렸다. 저 물이 돌의 팔 부 능선을 넘어가면 처마 쪽으로 내려가면서 자신의 방에 물벼락을 뿌리는 거 같았다.

김씨는 얼굴을 내리고 대신 손을 밖으로 빼냈다. 어깨가 삐뚤빼뚤한 양철 지붕 모서리에 걸렸다. 오른손을 돌 쪽으로 쭉 뻗었다. 손톱이 돌 끝에 닿았다. 조금만 더 뻗으면 돌을 밑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거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김씨는 얼마나 더 뻗으면 돌을 떨어뜨릴 수 있을지 보려고 했으나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때 딱딱한 것이 김씨의 이마를 가격했다. 김씨의 목덜미가 우둘투둘한 양철 지붕 모서리에 박혔다. 흔들거리는 사다리에 무언가 쿵 부딪혔다. 사다리가 기우뚱했다. 김씨는 발을 버둥댔지만, 사다리를 잡을 수 없었다. 사다리는 아주 천천히 골목으로 쓰러졌다. 김씨의 두 발은 공중에 떴고 목은 양철 지붕에 걸렸다. 그는 오른손을 목이 낀 구멍 사이로 넣으려 했다. 그때 방금보다 더 큰 돌멩이가 날아와 김씨의 얼굴에 부딪혔다. 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지붕 모서리는 김씨의 목을 파고들었다. 돌풍이 불자 끝이 고르지 않은 양철 지붕이 김씨의 목을 으드득 뜯어냈다.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하늘로 솟구쳤다.

김씨의 얼굴은 난생처음 사지촌 지붕을 하늘에서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은 수많은 조각을 덧댄 조롱박 모양의 지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침에 머리와 왼팔이 없는 몸을 본 사지촌 동쪽 사람은 새 거주자가 온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팔다리가 아니라 목 위가 없는 사람도 받아주는 거냐고 이 사람은 투덜거렸다. 그는 김씨의 허벅지를 툭 찼다. 그러면서 골목에 계속 누워 있으면 입 돌아가니, 아니 어딘가 돌아갈 수 있으니 어서 일어나라고 꾸짖었다. 비는 여전히 옆으로 내렸고 구멍에서는 구슬픈 울음소리가 났다.

사지촌 사람들은 골목에 누운 얼굴 없는 몸뚱이가 김씨란 건 박씨가 오고 나서야 알았다. 박씨는 김씨의 뒷덜미 아래쪽 상의를 잡고 끌었다. 얼굴이 없어서 상의가 자꾸 벗겨지려 했다. 박씨는 김씨를 15번 방문에 기대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공터로 가 넘어진 사다리를 세웠다. 박씨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어느새 옆에 온 조씨가 두 손으로 사다리를 잡았다.

박씨는 하늘에서 구름층이 얇아지는 걸 봤다. 박씨는 구멍을 막으려다 말았다. 옆으로 내리던 비는 가랑비가 되고 있었다. 걷히지 않을 것 같던 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왔다. 그 얇은 햇살이 구멍을 통과해 박씨의 눈에 닿았다. 박씨는 눈을 찌푸렸다.

양철 지붕 모서리에 있는 핏자국은 진했다. 김씨의 살점과 뼛조각은 지붕 안팎에 붙어 있었다. 박씨는 햇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정확히는 떠 있는 해가 구름 사이사이를 통과했다. 얇고 굵은 여러 가닥의 빛줄기가 사지촌 지붕과 저 멀리 납골당 대리석을 비췄다. 박씨는 빛줄기를 넋 놓고 바라봤다.

사다리가 흔들렸다. 박씨는 잽싸게 얼굴을 구멍 밑으로 뺐다. 조씨가 그만 내려오라고 흔든 거였다.

조씨는 박씨에게 김씨의 얼굴이 왜 사라졌는지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를 모르던 사람은 그가 새 입주자인 줄 알았다. 조씨와 박씨는 김씨를 들어 그의 방에 누였다.

이들이 김씨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을 때 골목에 있는 쪽문이 열렸다. 비가 내리는 동안 열리지 않던 문이었다. 그 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사람들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김씨가 누구죠?”

문 앞에는 하얀색 셔츠에 자주색 넥타이를 매고 녹색 잠바를 입은 남자 세 명이 서 있었다.

“김씨가 누구냐고요.”

제일 앞에 있는 키 큰 남자가 말했다.

“저 방에 있습니다.”

어느새 1번 방에서 기어 온 서씨가 손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구청 사람들은 기어가는 서씨의 뒤를 따랐다.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군요.”

세 명 중 가운데 있는 덩치 큰 남자가 김씨를 보며 말했다. 이 남자는 손으로 코를 막았다.

“또 무슨 일이 있나요?”

키 큰 남자가 서씨를 보며 물었다.

“동쪽에서 아홉 명이 물에 잠겼습니다.”

서씨가 말했다. 조씨와 박씨는 눈을 크게 떴다. 물에 잠긴 사람이 있다는 건 서씨를 통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여기가 뭐 하던 곳이라 했지?”

덩치 큰 남자가 같이 온 두 명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나머지 두 명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납골당 확장지였는데요. 지반 침수 사고를 해결하지 못해서요. 지금 이렇게….”

녹색 잠바의 소맷부리가 손등을 가린 남자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덩치 큰 남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납골당은?”

“거긴 괜찮습니다.”

덩치 큰 남자가 물었고 키 큰 남자가 대답했다.

“이 사람은?”

덩치 큰 남자가 서씨를 보며 말했다.

“지반 침수 사고 때 일했던 분입니다.”

키 큰 남자가 답했다.

덩치 큰 남자는 필요한 질문을 마치자 같이 온 두 명에게 손짓했다. 이 두 명은 덩치 큰 남자의 입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곧이어 키 큰 남자가 동쪽으로 뛰었다. 그는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만으로 골목을 누볐다. 덩치 큰 남자와 손등이 보이지 않는 남자는 방문을 등지고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사지촌의 동쪽에 다녀온 키 큰 남자는 쪽문으로 다가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보고 덩치 큰 남자가 손등이 보이지 않는 남자에게 귓속말했다. 두꺼운 입술이 움직이면서 볼이 씰룩였다.

양철 지붕은 시끄럽지 않았고 바람은 잠잠했다. 비가 그친 것인지, 아니면 잠시 멈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지촌 사람들은 방문을 활짝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이들의 동공은 잔뜩 움츠러져 있었다.

손등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서씨를 바라봤다.

“이렇게 하시죠.”

손등이 보이지 않는 남자는 키 큰 남자를 보며 엄지와 중지를 튕겼다.

“김씨랑 물에 잠긴 아홉 명은 원래 본인이 있던 방에 그대로 넣어두시고요. 저희가 가져온 물품은 놓고 가겠습니다. 양동이 있으시죠?”

서씨는 자신이 안고 있는 양동이를 키 큰 남자에게 내밀었다. 포개진 양동이를 하나씩 빼니 모두 네 개였다. 그중에는 녹색 줄이 달린 양동이도 있었다. 양동이를 들고 있는 몇몇 사람이 서씨 뒤로 줄을 섰다.

키 큰 남자는 플라스틱 물병과 핫팩을 양동이에 쏟았다. 양동이가 없는 사람들은 구청에서 나눠주는 물품을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쥐었다.

박씨는 그 광경을 바라만 봤다. 조씨가 박씨의 팔뚝을 꽉 붙잡고 나서야 그는 정신을 차리고 뒤로 뛰어가서 줄을 섰다. 박씨는 물병 세 개와 핫팩 두 개를 손에 쥐었다. 반면 조씨는 허벅지 위에 놓은 양동이에 물병과 핫팩을 넣을 수 있을 만큼 넣었다.

줄은 동과 서 두 방향으로 늘어섰다. 줄의 끝에 이르자 물품이 동났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사람들은 커진 눈으로 그저 구청 사람들을 쳐다봤다.

키 큰 남자는 가져온 물품이 떨어지자 두 손바닥을 펴고 흔들었다. 이 남자는 뒤로 걸으면서 오후에 호우경보가 해제될 거라고 말하며 웃었다. 사지촌 사람들은 이 남자의 말을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쪽문에서 들어오는 빛의 세기가 점차 약해졌다. 문은 닫혔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양동이 네 개를 두 어깨와 두 허벅지에 묶은 서씨는 1번 방을 향해 빠르게 기어갔다. 서씨의 뒷모습은 조씨와 박씨의 시야에서 금세 사라졌다. 그가 여기에 왔다가 간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서씨의 움직임은 빠르고 또 흔적이 없었다.

김씨의 손톱과 발톱은 푸른색이었다. 물에 잠긴 사람들의 입술과 귓불에서도 푸른빛이 났다. 김씨의 얼굴빛 역시 하늘색이나 푸른색으로 변했을 거라고 박씨는 생각했다. 박씨는 물병 하나와 핫팩 하나를 김씨의 얼굴이 있던 자리에 놓고는 방문을 닫았다.

오후가 되자 다시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랑비는 보통 굵기 비로 변했다. 저녁이 되자 어릿광대가 채로 지붕을 두드렸다. 사지촌 사람들은 장판을 두들겼다. 동쪽에서 시작된 장판 두드리기는 점차 서쪽으로 번졌다. 장판 표면에 잔물결이 일었다.

날이 어두워진 뒤에는 세찬 비가 양철 지붕에 내리쳤다. 누군가 골목에서 아주 느리게, 쏟아지는 비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의 몸짓으로 춤췄다. 춤추는 자의 한쪽 소매가 팔랑거렸다.

박씨는 공터에 쪼그리고 앉아 아직 메우지 않은 천장의 구멍을 쳐다봤다. 구멍에서는 물이 폭포수처럼 흘러 들어왔다. 골목 바닥에 세차게 튀는 물은 동쪽으로 흘렀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비는 조씨가 벽에 뚫어놓은 구멍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이었다.

동쪽부터 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조씨는 두 팔로 벽의 좌우를 짚으며 위로 올라갔다. 그는 정수리로 벽돌을 밀어냈다. 구멍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났다.

검은색 실루엣이 골목에 어른거렸다. 동쪽으로 미끄러져 가는 실루엣은 어느새 다시 공터를 지나 서쪽으로 갔다. 서쪽으로 사라진 이 물체는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공터에 있었다.

박씨는 어둠을 응시하며 동공이 확장되기를 기다렸다. 동공이 커지자 보였다. 서씨는 소금쟁이 같은 몸짓으로 사지촌을 누볐다. 서씨의 손바닥과 허벅지가 물 위를 떠다녔다. 재빠르게 움직이던 서씨가 김씨 방 앞에서 멈췄다.

소매를 팔랑이며 느릿하게 춤추는 자는 머리가 없었다.

최이아

최이아 / 김진수 선임기자

최이아 / 김진수 선임기자

<수상소감> 이 비가 그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이 글을 쓸 때 비가 왔다.
오전부터 하늘이 우중충하더니 늦은 오후부터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렸다. 빗방울이 투둑투둑 창밖의 주차장을 적셨다. 그러다 하늘에서 콰르릉 천둥이 울렸다. 고개를 내밀어 올려다봤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간이건만 사방이 밤중처럼 어두웠다. 손을 뻗어 창틀에 달린 물방울을 만졌다. 그러자 전신에 오한이 흘렀다. 이날 날씨는 별로 춥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오한을 느꼈을까? 그러다 깨달았다. 몸이 오슬오슬 떨리는 건 이 비가 그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가 계속 내리면 제일 낮은 지하부터 물이 들어찬다. 마지막 숨을 들이쉰 입술은 물속에 잠긴다. 사람은 강뿐 아니라 도로에서도 물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산은 무너진다. 도로와 전기는 끊기고 고립은 일상이 된다.
이 재난을 목격한 한쪽에서는 익사한 주검을 보며 다른 곳을 가리키고, 무너진 산을 보며 웃고, 잔잔해진 강을 살피며 모면을 생각한다. 손바닥문학상에 당선된 건 너무 기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심사위원들께서 내 심정을 문학적으로 공감해준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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