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년여 전,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산부인과에서 태아 장애를 확인하는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 확인하기 위해 자궁에 주삿바늘을 찔러넣는 양수검사를 해보자는 얘길 꺼냈다.
“지금 양수검사를 받으면 유산 가능성이 있지 않나요? 지금은 양수검사를 하는 시기가 아니라고 들은 거 같은데….”
“시기가 비슷해서 그렇게 위험하진 않아요. 또 장애가 있으면 어차피 뭐….”
어차피 뭐… 그 뒤에 어떤 말이 생략됐을까.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손이 떨렸다. 분노를 내색하지 않고 억누르면서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의사가 실망스러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가슴 한구석에서 고민했던, 나 자신에 대한 환멸이 투영된 것이었다.
제1469호 표지이야기는 최의택 작가와의 인터뷰였다. 그는 에스에프(과학소설)를 쓰고, 근육병이 있어 휠체어를 탄다. 대화 중 그는 내게 <우리에 관하여: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란 책을 추천해줬다. <뉴욕타임스>에 장애 당사자들이 장애에 대해 쓴 글을 묶은 것인데,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그 책 서문에 윤리학자 조지프 플레처가 1968년 쓴 글이 나온다.
“다운증후군 아기를 치우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다. 진정한 죄책감은 사람에게 범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생겨나는데, 다운증후군을 가진 존재는 사람이 아니다.”
태어난 아이에게 장애는 없었지만, 나는 임신 과정에서 또 다른 세상을 봤다. 인터넷에는 많은 여성들이 장애가 있는 태아를 지우고 죄책감 속에 쓴 글들이 있었다. 낙태 권리와는 무관하게, 장애가 없었으면 ‘축복’이었을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지워진 데 대한 슬픔이었다. 혹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로부터 느낀 냉혹함, 제도적 미비, 아픔을 나누는 글도 많았다.
최 작가는 소설 <슈뢰딩거의 아이들>에서 학교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에 대해 썼다. 작가 자신에겐 근육병이 있지만, 소설 속에는 자폐아를 등장시켰다. 쓰이지 않은 이야기는 회자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다. 작가에게 감사하다. 그가 장애인 학생의 이야기를 써줘서, 문윤성 SF 문학상을 받아줘서, 그 책이 몇몇 학교와 도서관의 추천도서가 돼줘서, 그간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 몇은, 드디어 보일 수 있게 됐을 것이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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