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의미는 마치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두 마리 토끼 같아서 동시에 잡기 힘들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 또한 우리가 만들어낸 양자택일의 고정관념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박재범 작가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그런 짐작은 이내 확신으로 변모한다. 잔혹한 이탈리아 마피아가 국내 재벌과 법조계의 부정한 카르텔을 박살 내는 <빈센조>는 묘한 배덕감과 충격, 그리고 즐거움을 안긴다. 악으로 악을 벌하는 이야기 자체는 새로울 건 없지만 <빈센조>가 색다른 건 그 저변에 깔린 끈덕진 유머에 있다. <빈센조>는 절차와 시스템 바깥에 있는 부도덕한 자들을 더 큰 폭력으로 일망타진한다. 시원한 대리만족의 즐거움만큼이나 이 작품을 지탱하는 건 소나기처럼 퍼붓는 웃음 코드다. 때로는 화려한 몸으로, 때로는 촌철살인의 대사로, 대체로는 기상천외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난장판으로 웃음을 안기는 <빈센조>는 마치 버라이어티 쇼처럼 신난다. 동시에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그 주변에 깔린 끈적거리는 메시지가 우리 사회 어두운 곳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건 풍자와 해학을 넘어 장르적 일탈 행위라 불러 마땅한 파격적 결합이다.
박재범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당대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메시지와 냉철한 시선이 묻어난다. 그는 필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야기를 창조해왔다. 이런 경우 메시지와 주제에 먹혀 작품의 재미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박재범 작가의 드라마는 다르다. 그는 웃음이야말로 의미를 공감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법의학 미스터리에서 의학 드라마, 판타지에서 사회 드라마까지 박재범 작가의 스펙트럼은 종횡무진이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박재범스러운’ 톤을 유지하는 건 그 중심에 뿌리 깊게 세워진 단단한 기둥 때문이다. 그 기둥의 이름은 다름 아닌 ‘시대정신’이다. 그는 필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포장하는 작가다. 그리하여 재미는 의미가 되고, 의미는 다시 시대의 피로와 우울을 위로하는 쉼터가 된다. 마이너리티를 향한 박재범 작가의 관심은 사회를 향한 이야기, 사람을 향한 믿음과 어우러져 지금도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자아낸다. 2월20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바로 앞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박재범 작가를 만났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를 부전공하면서 연극 활동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작가의 길로 접어든 건가요.
“중학생 때부터 영화연출이 꿈이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포기 못하고 부전공으로 연극영화과를 선택했는데, 막상 가서는 연극에 더 빠져들었죠. 연출, 극작, 시나리오 공부를 하긴 했지만 당시엔 연극을 더 많이 했을 정도예요. 다만 연기라는 게 아무리 좋아한다 해도 재능 영역이 확실한 분야잖아요. 한참 즐겁게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결국 돌아갈 집은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00년 영화 <씨어터> 각본을 쓴 이후 영화 연출을 준비했는데 몇 차례 무산되고 나니 시간이 금방 갔어요. 뭐라도 해야만 했죠. KBS 극본 공모에 응모했는데 5명 뽑을 때 6등을 했어요. 보통은 그냥 넘어갈 기회였는데 아쉽다고 따로 연락이 와서 6개월 인턴을 할 수 있었어요. 그게 첫걸음이었고, 2002년 <드라마시티>에서 단막극으로 시작했어요.”
―2002년 <드라마시티>로 데뷔한 뒤 2010년 <신의 퀴즈>를 집필하기까지 꽤 긴 공백이 있었어요.
“드라마 극본을 쓰면서도 영화 연출 준비는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작품이 엎어지니까 6, 7년이 후딱 가버리더군요. 그렇다고 드라마 쪽으로 복귀하려니 마음이 동하지 않았는데, 때마침 OCN에서 새로 론칭하는 프로젝트가 있어 참여했어요. 그게 <신의 퀴즈>였습니다. CJ에서 기획하는 작품이라 아무래도 영화적 요소가 많아 이런 톤이면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렇게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온 겁니다. 물론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준비 중이고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각본도 쓰고 있어요. 최근에는 <비상선언> 각색 작업을 했죠.”
―드라마와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느낌이 많이 다른 편인가요.
“포맷이 다르니 당연히 차이가 있는데 요즘에는 점차 옅어지는 것 같아요. 원래부터 마이너한 쪽에 끌리는 편이라 큰 차이를 못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항상 안 해본 것, 낯선 것에서 이야기를 착안하는 편이에요. <신의 퀴즈>는 국내 최초 메디컬 수사극이라는 새 장르에 도전한 작품이었는데, 그걸 목표로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메디컬 수사극이란 장르로 좁혀진 경우죠. 나는 언제나 명확한 주제부터 시작하는 편이에요. 장르나 스타일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에 불과하죠. 지금 시대에, 우리 사회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의미 있을지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신의 퀴즈>에서 법의학을 다룰 때, <굿 닥터>에서 많은 전공 중 소아외과를 선택했을 때, 심지어 <빈센조>에서 이탈리아 마피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때도 결국 우리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했네요.
“맞아요. 장르는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에요. 이야기의 근본을 파내려가면 사회 드라마가 바닥에 흐른다고 볼 수 있겠네요. 중요한 건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러니까 당위예요.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적어도 작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거기서부터 막혀버리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으니까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데 평소 관련 이슈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편인가요.
“그건 그냥 숨 쉬는 거예요. 의식적으로 찾아볼 필요도 없어요. 보통 사람이 가지는 관심만큼 주변에 관심을 가지면 그걸로 충분하더라고요. 뉴스를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가끔 집회도 나가고. 오히려 정치적 이슈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으려고 의식합니다. 그냥 대한민국 국민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거리감을 유지하려 해요.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죠. 애초에 정치적 중립은 환상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어느 정도 편향성이 있는 게 자연스럽죠. 다만 작품에 묘사할 때는 그걸 최대한 티 나지 않게 그려나가는 게 중요해요.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잘못된 것, 상식선에서 부끄러운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생소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아내는 케이스 취재력이 돋보입니다.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A부터 Z까지 무식하게 다 쓸어담아 공부했죠. 농사짓는 감각이랄까요. 나중에는 그런 공부가 밑천이 되더라고요. <굿 닥터> 때는 상대적으로 도움을 받았죠. 그렇다고 소재에 갇혀 반복한 적은 없어요. 늘 안 해본 분야에 관심이 더 가는 편이라.”
―<신의 퀴즈>는 시즌제로 장기 방영하면서 국내에 없던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책임기획을 맡으셨고요.
“최초 시도라는 게 듣기엔 멋지지만 쉽지 않았어요. 국내에 없는 모델이라 의지 하나만 가지고 좌충우돌 부딪쳤죠. 시즌마다 어떻게 새로운 걸 보여줄지 고민이 많았어요. 지나고 보면 다 좋은 자산이 된 경험이었어요. 무엇보다 국내 제작 환경에 맞춰 진행해야 한다는 게 중요했거든요. 국내에서는 시즌1이 성공했다고 제작비가 두세 배 늘어나는 환경은 아니니까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기획자의 시선을 배웠던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보면 연출·기획·각본 겸업이라 할 수도 있는데, 미국 드라마 체제를 보면 당연한 시스템인데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니까요. 크리에이터는 작가이자 프로듀서의 개념이에요. 지금 우리 팀은 5개 정도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인데, 축구로 치면 감독처럼 넓은 시야가 필요합니다. 항상 배우는 중입니다.”
―<김과장>을 기점으로 독특하고 참신한 도전에서 공감의 영역으로 무게추가 옮겨간 것으로 보입니다.
“맞습니다. <블러드>까지는 의학, 미스터리에 기반을 둔 구도였는데 <김과장>부터 코미디가 강해지고 웃음에 많은 공을 들였죠. <블러드>가 끝나고 온갖 병이 다 몰려왔어요. 10년치 스트레스에 몸이 무너진 시기였죠. 수술하고 병원에서 2주 정도 쉬면서 할 일이 없어 대한민국 예능이란 예능은 다 봤어요. 지금도 글을 쓸 땐 보든 안 보든 항상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습니다. 요즘엔 <피지컬: 100>이 재미있더라고요. 아무튼 그때 확장성, 그러니까 대중적 이야기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한번은 쉬면서 전북 군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수다 떠는 두 아저씨를 만났어요. 한쪽이 다른 쪽에 채용을 부탁한 상황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성의 표시를 안 해서 섭섭하다는 말을 나누고 있었죠. ‘김 과장, 사람 그러는 거 아니야. 좋은 마음으로 해줬으니 나는 괜찮아. 근데 거기 식구들은 환영식도 해줘야 하고 돈이 필요할 거 아니야?’ 그 대화를 듣는 순간 차기작은 <김과장>으로 정해졌습니다.(웃음)”
―그야말로 운명처럼 다가온 이야기네요.
“이거다, 하는 순간이 있어요. 내가 지친 상태이다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코미디를 하고 싶었어요. 안 해본 방향이었지만 어렵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일단 뭐를 좋아할지 모르니 좋아할 만한 걸 다 넣었죠. (웃음)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A부터 Z까지 다 건드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에요. 코미디는 유치함과의 싸움입니다. 병맛부터 슬랩스틱까지 웃음의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게 가져가고 싶었어요.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1편을 다 본 것처럼 버라이어티하게 가는 거죠. 사실 다 넣는다는 게 말은 쉽지만 전체적인 리듬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어요.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생각하는 겁니다. 주인공이라는 마에스트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연들이 파트마다 개성 있는 색깔을 선보이는 게 중요했어요. 그러다보니 전체적으로 조연 수도 많아졌고, 조연마다 각자가 주인공이 되는 파트가 있어요. 장르물이라지만 실은 버라이어티 캐릭터물인 셈이죠.”
―의학 기반의 초기작들과 마찬가지로 <김과장> 이후 <열혈사제> <빈센조>의 코미디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한층 강화됐습니다. 음식으로 치면 단짠 단짠이라고 할까요.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게 목표예요. 메시지만 있으면 그저 프로파간다(선전)에 불과하고, 재미만 있으면 의미 없는 공허한 오락에 불과하죠. 웃음에는 시선을 모으고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바닥을 찍을 때도 다시 튕겨 오를 수 있게 해주는 게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코미디가 매력적이죠. 제대로 잘 웃기려면 공감할 수 있는 단단한 내용물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과장> 속 김 과장은 마냥 의인이 아니라서 좋아해요. 이기적·이타적 행동을 나누는 사이 진짜 중요한 걸 놓치지 않았는지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김 과장은 적당히 계산적이고 속물인데, 최후의 선은 지키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인물이죠. 마냥 정의롭기만 한 건 피곤하니까요. 과정이 매번 정당할 수만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현실에서 하기 힘든 부분을 시원하게 건드려주고 싶었습니다.”
―사회 비판과 풍자의 또 다른 맛은 수많은 명대사에 있습니다. <김과장>에서 “우리 목표는 1번 버티기, 2번 더 버티기, 3번 죽어도 버티기”라는 대사는 각박한 세상에서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대신 읊어주는 동시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자조가 묻어납니다.
“감사합니다. 시청자 마음의 소리를 대신 꺼내주고 싶었어요. 대사는 매일 일상에서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두는 편입니다. 특정 테마에 꽂히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모두 그 방향으로 출력되거든요. 아이디어의 원천이 있다면 대체로 잡념에 가까워요.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을 다듬고 정제하는 작업이 글 쓰는 일의 8할인 것 같아요. 아침에는 잠깐 책을 보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회의합니다. 5시 이후부터가 온전한 내 시간인데, 나이 들수록 체력이 달려서 오래 쓰진 못해요. (웃음) 그래서 일상 속에서 모아둔 아이디어나 대사, 말들이 더 소중합니다.”
―글이 막힐 때 돌파하는 요령이 있을까요.
“(단호하게) 안 써야 해요. 일단 멈추고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글이 안 써진다는 건 지금 구조적으로 뭔가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니까요. 하나에 몰두하다보면 전체 구조가 안 보일 때가 있어요. 중요한 건 전체적인 설계예요. 부실 공사인데 끝까지 몰아붙인다면 결국 균열이 가게 돼 있습니다. 캐스팅이 엉망이라서, 재미가 없어서 등등 드라마가 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초기 설계와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22년이 딱 데뷔 20주년이었는데 되돌아보니 이제껏 마감할 수 있었던 동력은 상상력인 것 같습니다. 작품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마감 이후의 시간에 대한 상상력 말이에요. 글이 막힐 땐 우선 마감일에 맞춰 호텔 예약을 해놓습니다. 마감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도 언제 하는지는 알 수 있다고 하잖아요. 탈고한 뒤 상황을 상상하면서 버티는 거죠. 한번은 동료 작가들과 ‘우리는 언제쯤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진지하게 토론했는데, 결론은 이 일을 관두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어차피 해결할 수 없다면 친해질 수밖에 없는 이 친구를 잘 다독이면서 가야죠.”
―<김과장> 때는 “힘들어도 사람답게 살면서 버티자”였다면 <열혈사제> 때는 “왜 여러분은 성당에 와서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요? 자신들이 잘못한 사람들한테 가서 용서부터 받고 오세요”라며 강한 어조로 세상을 질타합니다. 급기야 <빈센조>에서는 “악마가 악마를 괴롭힌다”는 기조로 타락한 것들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어요. 주인공의 행동이 통쾌할수록 점점 비관적으로 보이는 건 착각일까요.
“결국 글은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한 화답입니다.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으니 내 리액션도 거기에 맞춰 커진 거죠. <김과장> 때는 그래도 일말의 낙관이 있었다면 <빈센조>를 쓸 때쯤엔 회의적이랄까, 비관론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 됐어요. 계기를 고백한다면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셨을 때 크게 바뀐 것 같아요. 마피아라는 일종의 장르적 판타지를 택한 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죠. ‘과정의 올바름을 믿다가 놓쳐버린 것이 너무 많아. 이제 너희를 응원하지 않을 거야’라는 나름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제 햄릿 형의 성장형 주인공은 더는 그리고 싶지 않아요. 답답하니까요. 어쩌면 <빈센조>의 과격한 판타지는 작가로서 내가 느낀 낙담의 끝이기도 합니다. 나쁜 놈들은 너무 강하고 이제는 웬만큼 성장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거든요. 그 절망의 끝자락에 빈센조라는 마지막 답변이 나왔습니다.
<빈센조>를 마치고 난 뒤 더 강한 저항이 가능할지, 의미가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그래서 준비 중인 차기작은 (<열혈사제2>를 제외하고) 에스에프(SF)예요. 현재에서는 더는 해결이 안 나니 할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준비하는 작품은 2058년이 배경인데, 미래에 민주주의·법치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상상해보는 중입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어느 쪽이든 지금 현실의 그림자가 투영될 건 분명합니다. 지금 현실에 필요한 이야기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하고 싶어서 택한 SF니까요.”
글 송경원 <씨네21> 기자, 사진 최성열 <씨네21> 기자박재범 작가의 작품은 쉽고 재미있다. 긴 인터뷰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재미있는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단단한 시선과 오랜 고민, 묵직한 깊이가 필요하다는 진실 말이다. 인터뷰 말미에 좋은 이야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투박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많은 사람이 이해하는 극본”이라고 명확한 답을 내놓았다.
“이야기는 식빵에 잼을 골고루 바르는 작업이다. 어디를 먹어도 그 잼을 먹을 수 있게 잘 펴바르는 게 상업예술이라면, 순수예술은 특정 부위에 발라서 사람들이 그 부위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우열의 문제는 아니지만 나는 누가 봐도 즐겁고 재미난 글을 쓰고 싶다.”
즐거움과 대중성에 대한 박재범 작가의 확고한 태도는 역설적으로 그가 누구보다 단단한 주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다시,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정의 내리긴 쉽지 않다. 다만 분명한 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야기는 예외 없이 시대와 호흡한다는 사실이다. 박재범 작가의 작품이 그렇다. “시대의 가려운 곳을 확실히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유난히 미더운 이유다.
드라마
<빈센조>(tvN, 2021년): 박재범 작가 특유의 풍자와 웃음, 캐릭터 쇼의 결정판. 조직의 배신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가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린다.
<열혈사제>(SBS, 2019년): 죄를 짓고도 반성하지 않는 악인들을 향해 펀치를 날리는 다혈질 가톨릭 사제가 있다. 각양각색의 캐릭터와 쉴 틈 없는 웃음으로 통쾌한 쾌감을 안긴다.
<김과장>(KBS, 2017년): 돈 냄새 맡는 데 탁월한 삥땅 전문 경리과장이 부정과 불합리에 맞서는 오피스 코미디. 배우 남궁민의 탁월한 캐릭터 해석이 돋보인다.
<블러드>(KBS, 2015년): 뱀파이어 의사의 활약상을 그린 판타지 메디컬 드라마. 독특한 소재와 장르 결합으로 화제를 모았다.
<굿 닥터>(KBS, 2013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한 서번트증후군 의사의 성장기. 소아외과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가운데 치료를 넘어 마음을 구해내는 이야기로 사랑받았다. 미국 드라마로 리메이크됐다.
<신의 퀴즈> 시즌1~3(OCN, 2010~2012년): OCN 자체 제작 오리지널 시리즈이자 대한민국 최초 메디컬 수사 드라마. 법의관들의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로 시즌3까지 박재범 작가가 각본을 맡았고, 시즌4는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영화
<비상선언>(각색, 2022년)
<여곡성>(각본, 2018년)
<씨어터>(각본,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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