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처음 사귄 친구가 페미니스트였다. 그 친구는 페미니스트 모드일 때 유독 극단적이고 분노와 냉소가 넘쳤다. 그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고 대학 시절 내내 붙어 다니면서도, 나는 결코 페미니스트는 될 수 없겠다 싶었다. 더 좋은 사회를 만들자고 사회를 등지고 싶지 않았다. 이후 미디어에서 괴랄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페미니스트를 접하며 그 단어가 내 안에서 시나브로 오염돼감을 느꼈다.
고운님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내 오랜 편견을 깨준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신의 핵심 정체성으로 소개하는 지인 중 가장 대중 속에 있다. 쉽게 풀어 말하고, 싸우지 않고, 불편할지언정 한사코 ‘일반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한다.
그리하여 초등학교 교사인 고운님은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를 6년째 운영 중이다. 동료 교사들과 함께 성평등한 교실을 만들기 위한 수업 방식을 연구해 직접 해보고, 검증된 수업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학생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를 교육한다. 말 안 듣는 요즘 아이들과 꽉 막힌 교직원을 피하지 않고 더 파고든다. “아이들은 투명해. 어른의 편견을 그대로 투영하는데, 또 이거 편견이다 얘기하면 놀랍게 바뀌어.” 강의 상류부터 황고운이라는 정화시설을 두면 생기는 일!
그런 고운님이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은 <큐플래닛>과 <씨리얼>이다. 여기에서도 균형이 보인다. <큐플래닛>은 시의성 있는 젠더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루는 채널이다❶. 패널 입담이 워낙 좋고 주제도 뾰족하게 잘 잡아 유익하고 흥미진진하다. 다만 재미와는 별개로 이 채널은 이 업계 전문가들의 놀이터인 듯했다. 정돈되지 않은 섬네일, 속기사가 실시간으로 받아 적은 자막이 최선인 편집, ‘트랜스젠더 혐오와 가짜뉴스, 어디에서 와서 어디까지 가나’처럼 건조한 제목 등 외부인이 이 채널을 발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큐플래닛>의 구독자 수는 6500명이다.)
한편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30만 유튜브 채널 <씨리얼>은 확실히 대중 지향이다❷. 브랜딩 디자인도 잘돼 있고, 유튜브 문법에도 빠삭하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주특기. 이를테면 영상 ‘수어(수화)로 하는 나쁜말 토크 대잔치’에서는 게걸스럽게 대화하는 농인들을 보여줘 우리가 장애를 미화하며 타자화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한다. “아이들과 수업자료로 볼 만큼 쉽고, 상반되기까지 한 여러 주체를 스피커로 올려 균형 잡혀 있어.” <큐플래닛>의 전문성과 <씨리얼>의 대중성을 섞으면 꼭 고운님이 된다.
솔직히 균형을 가져가기 쉽지 않은 삶이다. 모닝콜로 아주 그만이라며 보여준 페이스북 메시지에는 익명의 누군가가 보낸 욕설이 한가득이다. 젠더 교육한다는 게 이유. 없던 인류애도 증발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고운님은 사람들을 품고 간다. 희망의 단서를 예민하게 알아차리며 말이다.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지? 허허” 하며 제법 젠더 감수성을 깨친 부모님, 의외의 지점에서 고운님의 성장판을 무한 자극하는 아이들, 젠더 교육에 회의적인 교장선생님 앞에서 은근하게 힘을 실어주는 동료들. 귀엽다. 최근에는 고운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연인도 만나 희망회로가 더 견고해졌다.
“내 일이 사람을 편견 없이 보는 건데, 정작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보리라는 기대는 적었나봐. 그래서 나 요새 아주 충만해.”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인생은 살 만하다. 고운님이 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리고 고운님을 만난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❶트랜스젠더 혐오와 가짜뉴스, 어디에서 와서 어디까지 가나
https://www.youtube.com/watch?v=QSOcSh0746k
❷수어(수화)로 하는 나쁜말 토크 대잔치
https://www.youtube.com/watch?v=8Yyz4FvuuQo
김주은 IP 프로듀서(인스타 @alt.ctrl.shift)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주은 IP 프로듀서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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