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조금씩 흩뿌리는 고속도로였다. 차 안 동승석에 앉은 나는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큰 소리를 내며 옆 차선으로 지나가는 트럭이 보이는가 싶더니 짧은 순간 닭과 눈이 마주쳤다. 반사적으로 창문을 열었다.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굉음과 함께 차가운 빗물이 얼굴을 때렸다.
트럭은 닭들을 싣고 달렸다. 노란색 플라스틱 상자가 트럭 위에서 10층 넘게 위태로이 쌓여 흔들렸다. 높게 쌓인 상자들 안에는 닭이 가득 차 있었다. 날개와 목이 상자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닭 털이 바람에 나부끼며 어지럽게 펄럭였다. 시속 100㎞ 이상으로 달리는 트럭 전체에 깃털 장식을 해놓은 것 같았다.
닭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친 것은 찰나였다. 나와 눈을 맞춘 닭은 목과 얼굴만 밖으로 나와 움직이지 못했다. 얼굴의 짧은 깃털이 바람 때문에 사방으로 흔들렸고 그 짧은 깃털 사이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닭은 좌우 측면으로 얼굴을 반복해서 돌려 하늘을 바라보려 애썼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와 깊숙하게 꽂혔다. 그 닭은 나와 함께 사는 앵무새가 하늘 위를 바라보려 할 때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트럭 안의 닭이 내 반려조와 다르지 않은 생명체라는 것을 단숨에 알았다. 나와 함께 사는 새는 온기가 있는 생명체다. 저 닭도 그런 생명체다. 고통을 느끼고 있다. 명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맹금류를 제외한 새들 대부분은 위를 쳐다볼 때 머리를 좌우 측면으로 움직이고 한쪽 눈만 사용해 하늘을 본다. 천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들의 눈은 머리 측면에 있고 덕분에 넓은 시야를 갖는다. 하지만 눈을 움직이는 근육 발달이 덜 돼 머리 위의 상황을 파악하려면 눈이 아닌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야 한다. 내 반려조 역시 자기보다 높은 곳을 쳐다볼 때 트럭 위의 닭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늘을 본다. 앵무새를 입양하고 처음 이 행동을 봤을 때 신비로운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개나 고양이가 목을 뒤로 젖혀 두 눈을 사용해 머리 위를 보는 것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날개로 날 수 있으면서도 두 다리로 땅을 딛는 새에 대해 수의과대학에 다닐 때부터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매끄러운 깃털로 덮인 날렵한 몸체는 아름다웠고, 특별한 소리를 내는 그들의 의사소통에 대해 더 배우고 싶었다. 새는 사람보다 우주의 비밀을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속도로에서 닭을 봤을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앵무새는 지금 따뜻한 집에서 해바라기 씨앗을 부리로 딱딱 까먹고 있거나 횃대 위에서 좋아하는 나무 조각 장난감을 씹고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 고속도로 트럭 위에서 닭들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과 바람, 얼음처럼 차가운 빗방울을 버티고 있었다. 이런 수송 방식은 고문이고 학대다. 어차피 곧 도축될 닭이기에 눈감아도 되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는 내면의 소리가 계속 마음에 울렸다.
수의대 학생 때 여름방학 실습을 한 병원에서 처음 만났던 유기조를 입양한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잔병치레가 많은 예민한 앵무새의 건강 상태를 늘 살피는 것이 이제는 익숙하다. 녀석을 새장 밖으로 꺼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때 확인한다. 밤새 바닥에 싸놓은 똥오줌 상태는 어떤지, 어제 자기 전에 떠놓은 물과 먹을 것은 얼마나 줄었는지, 새장을 열면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지 아니면 구석에서 나오지 않고 깃을 부풀리는지를 본다. 겨울철이면 감기에 걸리는 일도 잦아서 코 주변 깃털이 콧물로 젖었는지, 재채기하는지도 살핀다. 눈 주변 피부의 주름 정도, 눈의 크기, 깃털을 세운 정도, 날갯짓하거나 걷는 모양과 속도 등 이 모든 것이 새의 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고기가 되기 전, 닭이라는 생명체목소리 톤과 억양은 녀석의 마음을 읽는 데 가장 많은 힌트를 준다. “껙껙!” 짧은 소리는 지금 상태가 불편하니 빨리 개선해달라는 것, “꾸우우” 부드러운 소리는 지금이 만족스럽다는 뜻, “까악” 장난기 담긴 짧은 음절은 같이 놀자는 것이다. 나만 앵무새를 보는 것은 아니다. 앵무새도 나를 본다. 우울감이 밀려와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그런 밤이 있다. 그럴 때면 녀석은 내 손가락 위에 올라가서 손톱을 부드럽게 정리해주고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정성껏 부리로 쓸어준다. 긴장됐던 몸과 마음이 천천히 이완된다. 그런 날은 평소와 달리 나에게 별다른 요구도 하지 않는다. 새와 하는 교감은 참 특별하다. 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좌우로 얼굴을 돌려 하늘을 보려 애쓰던 닭이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는 걸 나는 바로 알았다. 태어나서 처음 본 하늘이었을지 모른다. 그 닭에게는 하늘이란 것이 회색 먹구름과 찬 빗방울, 광풍과 굉음으로 기억되겠지. 그렇게 흰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을 한 번도 본 적 없이 도축될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이 굉음이 무엇인지 이 고통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 닭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늘을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치맥’(치킨과 맥주)을 좋아했고 치킨너깃도 자주 먹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닭고기를 보면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부드럽다거나 바삭하다는 식의 맛과 관련된 표현이 생각났다면, 지금은 치킨이 되기 전의 닭을 생각한다. 고기가 되어 정육 코너로 오기 전에 이 닭도 트럭 위에서 처음 하늘을 봤을지, 그런 생지옥을 경험했을지 궁금해졌다.
닭과 관련된 일반적 이미지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치킨 광고였다. 바삭하다, 바비큐 맛이다, 마늘 맛이다, 순살이다 등등. 모두 고기 맛에 대한 표현이었다. 고기가 되기 전 살아 있는 닭과 관련해서는 생각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퇴근 뒤 뉴스를 보려고 채널을 돌릴 때면 한 시간 안에 치킨 광고를 적어도 네다섯 편을 볼 수 있었다. 기름에 튀기는 장면, 바삭한 튀김옷을 씹는 소리, 멋진 연예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 모든 장면이 바로 휴대전화를 들어 치킨을 주문하도록 유혹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닭에 대한 정보 대부분이 닭고기에 대한 것인 상황에서 고기 이전의 닭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날의 만남은 나에게 고기가 되기 전의 닭이라는 생명체를 보여줬다. 튀김옷을 입고 소스를 뒤집어쓰기 전에, 닭은 고속도로에서 날개가 꺾인 채 하늘을 보려 애쓰던 새였다. 수의사이기 때문에 동물의 감정을 읽는 게 습관이 되어 닭에게도 쉽게 공감했을 것이다. 한집에 사는 앵무새도 닭과 치킨 사이의 틈을 보게 도와줬다.
갑작스러운 비일상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그 순간 이후 더는 일상이 편안하지 않았다. 치킨 광고를 보는데 자꾸 닭이라는 새가 떠올랐다.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치킨집 간판에서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닭의 캐릭터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닭은 치킨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치킨도 마음이 있었다. 행복한 상태를 좋아하고, 고통과 통증에 괴로워하는 마음. 내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 마음 말이다.
허은주 수의사
*시골 수의사의 동물일기: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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