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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론’에 빠진 한덕수의 무책임한 ‘대권놀음’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서 ‘방위비 재협상’ 가능성 시사… 글로벌 경제위기에 ‘국익’ 들러리 세우고 ‘저홀로’ 행보
등록 2025-04-24 22:41 수정 2025-04-26 17:12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2025년 4월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2025년 4월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제공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4월22일(현지시각) 발표에서 세계 경제가 중대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했다. 피에르올리비에 구랭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리셋’(Reset)이란 단어를 썼다. 세계 경제가 수십 년간 지속돼온 질서의 변화를 겪고 있으며, 그것은 제도 및 규범이라는 맥락에서 적응과 대응을 요구하는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IMF는 이러한 진단과 함께 2025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낮춰 잡았다. 지난 1월 전망치보다 0.5%포인트 낮춘 수치다.

‘리셋’으로 향하는 미국 지배 세력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은 이러한 변화의 방아쇠를 당긴 상징적 사건이다. 이 사건의 동기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변덕과 망상에서 온 걸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것을 만들어낸 정치적 에너지는 구조적 모순이 촉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점에서 웃어넘길 문제가 아니다. ‘리셋’의 이행 주체가 트럼프여서 착시가 있을 뿐, ‘리셋’이라는 욕망 혹은 계획 자체가 애초에 없지 않았다는 거다.

‘리셋’으로 향하는 미국의 지배-엘리트 일부의 의도를 보여주는 단서 중 하나는 이른바 ‘미란 보고서’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2024년 11월 작성해 보고했다고 알려진 이 보고서는 미국이 직면한 근본적 문제가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에서 온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강제된 달러화 강세는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이게 ‘러스트벨트’에서의 중산층 몰락으로 이어졌다는 게 보고서의 진단이다. 동맹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달러 중심 금융 질서에 더해 안보 우산이라는 은덕에 무임승차를 해왔다. 그러나 기축통화와 안전보장을 공공재처럼 활용하도록 두는 이러한 체제는 더는 유지되기 어렵고, 이제는 세계 각국이 미국에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미국 내 제조업 투자, 초장기 국채 매입, 인위적 환율 절상, 안보 비용 부담 등으로 이뤄질 수 있다. 관세는 이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이 잘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동맹국 정상을 마러라고 리조트로 불러 뭔가 새로운 질서에 대한 합의를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을 상대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미란 보고서’는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실제 거의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전쟁에 돌입한 이후, 일종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이 보고서는 새삼 다시 회자되고 있다. 아무리 무리한 내용이더라도 초강대국 지배계층의 세계관을 떠받치고 있다면 거기엔 얼마든지 힘이 실릴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보고서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면 한국, 일본, 인도,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국가가 첫 ‘협의’의 대상이 된 이유도 쉽게 추론이 가능하다. 이 나라들은 미국 입장에선 합의를 강제하기 상대적으로 쉬운 나라다. 특히 경제와 안보 양쪽을 묶기 쉬운 한국과 일본은 앞서 ‘미란 보고서’의 구상으로 볼 때 목표 달성이 가장 용이한 국가로 간주될 수 있다.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간의 각료급 협상에 갑자기 트럼프 대통령이 난입해 안보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리도록 한 것은 이런 인식을 반영한 움직임일 것이다.

경제·안보 분리하고 ‘시간 끌기’ 작전 필요한데…

상대의 판단이 그러하리라는 게 충분히 예측된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적어도 단기적 위기는 어떻게든 넘기고 전열을 정비한 뒤에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 대응해야 한다. 거의 모든 전문가가 경제와 안보의 분리를 고수한 채로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은 관세전쟁을 감당하지 못하는 미국의 국내 정치와 경제 상황이다. 일정 시간이 흐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은 급속도로 고갈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조기 대선이 예정된 시기라 권한대행 체제로 협상에 임하기 곤란하다는 논리가 좋은 핑계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한 인터뷰에서 정반대 방향의 답변을 했다. “권한대행과 선출된 대통령 간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에 차이가 없다”고 했고 방위비 재협상 가능성 역시 시사했다. 과거 미국의 도움 덕에 한국이 발전해왔다는 식의 언급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관으로 보면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에 안성맞춤의 메시지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이런 입장은 심지어 일단 미국의 입장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안보 문제와는 분리한다는 정부의 기본 협상 방침과도 맞지 않는다. 한덕수 권한대행의 메시지에 세상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대단한 전략적 고려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한덕수 권한대행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 대해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와 메시지 및 일정 조율을 한 바도 없다고 한다.

결국 본인의 대권 행보를 위해 국익을 들러리 세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도 한덕수 권한대행은 대선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언론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출마 명분을 찾고 있다는 주변의 발언을 인용한다. 파면당한 대통령이 이끈 정권의 2인자 출신으로, 공정한 대선 관리라는 직분을 내던지고 심판에서 선수로 직행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를 대지 않고는 설명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결과를 ‘성과’로 포장하고, 이를 토대로 최대한 인기를 끌어올린 다음 이를 근거로 출마를 강행해보겠다는 심사 아니냐는 게 여의도 호사가들의 추측이다. 그러나 앞서도 논했듯 지금 섣부르게 움직이는 것은 성과가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을 출마 명분으로 활용해보려는 생각은 기회주의적 처신을 모색하는 것에 불과하다.

IMF, 한국 경제성장률 1% 전망

IMF는 한국의 2025년 경제성장률을 1.0%로 전망했다. 지난 1월과 비교하면 1%포인트를 낮춘 것인데, 주요 국가 중에서는 조정 폭이 가장 크다. 대권놀음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불법적 계엄 선포는 그 자체로 반민주적 폭거였지만 한국 지배계층의 무책임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지도자가 어떤 의미로든지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고자 하는 욕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덕수 대망론은 그 무책임이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줬다고 볼 수 있다.

지배층이 무책임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손으로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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