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앞에 트럭이 섰다.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갑 낀 손으로 상자를 들었는데 온몸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장갑과 상자에는 진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상자 안에 있는 고양이는 미동 없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상자를 여니 흙이 잔뜩 묻은 털이 보였다. 몸통은 새하얀 털로 덮여 있었고 얼굴과 등에 갈색 무늬가 섞여 있었다. 털 사이로 불안한 눈동자가 잠깐 반짝였다. 진료 접수를 위해 고양이의 이름과 간단한 정보를 물었다.
“이름은 없어요. 동네 몇 집에서 같이 챙겨주는 고양이인데 사흘간 안 보이다가 오늘 돌아왔네요. 근데 걷지를 못합니다.”
악취가 진동했다. 이미 한동안 괴사가 진행된 냄새. 이 생명체의 어디선가 피부와 근육이 썩어가고 있었다. 왼쪽 뒷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진흙과 피가 엉겨 붙은 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털과 함께 피부조직이 뚝뚝 떨어져나와 하얀 인대와 뼈가 드러났다. 털을 다 밀어내고 발목 관절 밑 피부를 만져보니 차가웠다. 회색과 보라색으로 얼룩덜룩한 피부를 세게 꼬집어도 고양이는 전혀 아파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것에 발목 관절이 오랫동안 조여 있었던 듯하다. 발목 관절 아래는 살릴 수 없었다.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괴사 부위가 금세 퍼져나갈 것이다. 보호자에게 빠른 절단 수술을 권했다.
남자는 고양이의 머리를 쓸어줬고, 고양이는 남자의 손가락을 핥아줬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다보면 때로는 아픈 동물보다 동물을 데려온 사람의 표정을 더 살피게 된다. 동물은 제 발로 병원에 올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의 생사는 그 동물을 데려온 사람에게 달려 있다. 아무리 치료가 시급해도 보호자가 원하지 않으면 치료를 못한다.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치료한다 해도 키우지 못하는 상황이어서요.”
남자는 고양이 다리를 붕대로 감아달라고 했다. 붕대로 감아도 괴사 부위는 더 커질 것이다. 그래도 붕대만 감고 고양이를 데려갈 건지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여 상자 안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는 남자의 손바닥에 얼굴을 베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살아 있는 동안 제가 따뜻하게 해주고 끝까지 밥 줄게요.”
그렇게 고양이는 차가워진 뒷다리에 붕대를 감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나도 퇴근했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켰다. 저녁 뉴스가 끝나가고 오늘의 날씨가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텔레비전을 끄고 소파에 누워 우리 집 강아지들의 목덜미를 쓸어줬다. 반려조 앵무새의 부리 장난도 받아줬다.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순간 예전에 누군가와 했던 대화가 머리를 스쳤다.
“아무도 입양 안 하는 장애묘가 있으면 제가 데려와서 키우고 싶어요.”
고양이를 여럿 키워서 종종 병원에 오는 보호자 J의 말이었다. 몇 달 전 진료 중 지나가듯 한 말이지만 확실히 기억났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30분이었다. 늦은 시간이지만 J에게 전화해 고양이의 상황을 설명했다. 다리 절단 수술을 하면 바깥 생활이 힘드니 입양처가 필요했다. 혹시 지금도 장애묘를 입양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 병원에서 수술해보겠다고 말했다.
“네, 제가 데려갈게요. 언제 데리러 가면 될까요?”
믿기지 않는, 빠른 대답이었다. 감동할 시간이 없다. 지금도 그 고양이의 다리가 괴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빨리 수술해야 했다. J에게는 짧은 감사 인사만 전하고 고양이 보호자에게 전화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다행히 보호자는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아침, 보호자는 병원으로 고양이를 데려다줬다. 그렇게 고양이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J는 새 가족이 된 고양이 소식을 사진과 함께 종종 알렸다. 세 다리로 사는 생활에 곧 익숙해진 녀석은 가벼운 점프도 할 수 있었다. 창틀 위에 앉아 햇볕을 쬐는 녀석의 사진을 보니 웃음이 났다.
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줘서 감사하다는 내 말에 J는 이렇게 말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제 옆에 딱 붙어 있어요. 제가 잘 때 그루밍(털 손질)도 해주고 꾹꾹이(앞발을 교차로 내디디며 사람이나 사물을 누르는 행동)도 해줍니다.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이렇게 예쁜 아이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J의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 걸린 빗장이 툭 풀렸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해 자주 마음의 빗장을 걸어둔다. 말을 그대로 믿으면 결국 상처받으리라는 불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 말과 행동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꾸며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결국 혼자 남겨지리라는 두려움. 참 피곤한 일이다. 나 자신을 믿지 않으니 상대가 하는 말도 우선 의심한다. 상대의 따뜻한 위로도 착한 마음도 위선일 거라고 짐작해버린다. 그러면 상처받을 일이 없을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지는 J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 말이 온전한 진심임을 나는 곧 알았다. 사람들의 선한 말은 위선이라는 내 생각은 틀렸던 것 같다. 아무도 입양하지 않을 장애묘를 가족으로 들이고 싶다는 말, 고양이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J의 말은 진짜였다. 상대의 말을 그대로 듣고 그 선의에 온전히 감동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J는 나에게 알려줬다. 그게 더 행복에 가까워지는 삶임을 알았다. J는 나에게 용기를 줬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세상과 소통해도 괜찮다는 용기 말이다. 상처받을지라도 진심이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자. 뚜벅뚜벅 세상 속으로 걸어가자.
허은주 수의사
*시골 수의사의 동물일기: 시골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람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동물의 우정에 사람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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